사흘동안 '범죄도시' 시리즈를 몰아봤다. 통쾌한 폭력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폭력은 나쁘지만, 권선징악의 폭력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모든 수단은 옳고 그름이 있고, 명암이 있다. 폭력은 나쁘지만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똑같은 칼이라도 주방장이 쓰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범죄자가 쓰면 흉기가 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범죄를 응징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경찰은 '국가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다. 경찰은 범죄자와 맞서 범죄자를 응징하는 수단으로 폭력을 쓴다. 마석도 형사는 사법의 물적 존재의 현현이다. 우리가 말하는 '법'은 문자로 구현되어 있지만,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띨 때, 범죄자와 경찰의 형태로 상징된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나타나면, '법'은 경찰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범죄자를 체포, 구금하고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 법이 규정한 바에 따라 벌금, 구금 등 제재를 당한다. 현대사회에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서 법의 빈틈을 노린 범죄자들은 교묘하게 탈법, 불법을 저지르면 이윤을 확대한다.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범죄자들과 형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진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몸으로 부딪치며 범죄를 저지르고, 형사들도 역시 몸으로 부딪치며 범죄자와 싸우는데, '범죄도시4'에서는 해외 불법 도박 조직을 섬멸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고, 코인을 온라인 시장에 유통하려는 지능 범죄를 추적하는 것처럼, 범죄는 '법'보다 늘 한 발 앞서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럼에도 모든 사건의 해결은 마석도 형사가 가장 극악한 범죄자를 주먹으로 때려잡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마석도 형사와 범죄자가 맞붙어 싸우는 장면은 법과 범죄가 사람의 모습으로 구현된 상징적 장면이다. 관객은 '법'의 통쾌함을 문자로는 느낄 수 없으므로 마석도 형사의 강력한 주먹에서 '법'의 정의가 구현되는 느낌을 받으며 통쾌한 감정을 느낀다.
범죄도시
영화에서 배우와 캐릭터가 잘 어울리면 보는 즐거움이 있다. 마동석은 수많은 영화에서 주연급 조연이거나 비중이 있는 조연을 맡아 왔다. 조연으로 부담 없는 연기를 할 때와는 다르게 이 영화에서는 당당히 주연으로 등장하는데, 주인공의 캐릭터와 배우 마동석이 마치 같은 인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잘 어울린다. 앞으로 마동석은 액션 영화에서 괴물 형사로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영화 자체는 그동안 만들어진 많은 한국 액션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2시간 10분 동안 지루하지 않게 호흡을 잘 조절하고, 긴장감을 유지한 점은 높이 살만하다. 감독이 처음 듣는 이름인데, 직접 시나리오를 썼고, 형사와 조폭 두목들의 캐릭터를 조금은 코믹하게 그린 것은 이 영화를 '신세계'처럼 심각한 분위기로만 끌고 가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최근의 한국 액션영화에서 가리봉동 일대의 조선족 밀집지역이 자주 등장하고, 조선족을 폭력조직으로 나쁘게 그리고 있다는 주장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 영화는 조선족 밀집 지역에서 벌어지는 조직폭력배들과 경찰의 대결을 보여주고 있지만 조선족을 비하하거나 폄훼할 의도는 없어 보인다.
조선족 조직폭력배 장첸은 기존의 조선족 밀집지역에 자리잡은 폭력배들을 압도하는 강력한 폭력을 휘두른다. 장첸의 폭력은 영화 '황해'에서 면가가 휘두르는 폭력만큼이나 잔혹하다. 영화에서 비교해도 '신세계'를 비롯해 한국의 조폭들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한국의 조폭들의 폭력성과 조선족 폭력단의 폭력성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많다. 조선족 즉 중국의 폭력단이 더 흉포한 이유는 그들의 조직들이 더 격렬하게 경쟁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폭끼리의 경쟁과 다툼이 심할수록 폭력성은 강해진다. 그들이 딱히 잔인한 민족성을 가졌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도시에는 여러 민족의 조직폭력배들이 한 도시에서 활동하는데, 백인은 흑인에게 밀리고, 흑인은 멕시칸에게 밀리고, 멕시칸은 중국에게 밀리고, 중국은 베트남에게 밀린다고 한다. 즉 베트남 조폭들이 가장 잔혹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들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함이 클수록 잔인해지는 것이다.
한국경찰 가운데 마석도 형사같은 강력반 형사들이 좀 많아지면 좋겠다. 폭력배들을 압도하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저돌적인 태도, 범죄를 용납하지 않는 정의로움...하지만 현실에서 마석도 형사 역시 지역의 조폭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사실성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매달 돈을 뜯기는 상인의 입장에서는 지역에 조직폭력배들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고, 경찰이라면 작은 범죄를 저지른 자들-그들이 조직폭력배들이라면 당연히-이라도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영화는 심각한 사건과 폭력 사이에 재미있는 대사를 애드립처럼 넣어서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도 사람들은 웃기는 이야기도 하고, 농담도 한다. 마석도 형사의 캐릭터는 그동안 봤던 배우 마동석의 실제 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농담 덕분이 아닐까 한다. 영화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기대보다 재미있었다.
범죄도시 2
'범죄도시'를 보고 리뷰를 쓴 것이 2017년이었으니 벌써 5년이 지났다. 배우 마동석의 캐릭터를 뚜렷하게 각인한 영화로, 조선족 범죄자 '장첸'의 이미지도 기존 한국 범죄영화의 악역 배우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캐릭터 영화'였다.
'범죄도시'는 '마동석 장르'가 탄생한 영화여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배우 마동석이 2004년 단역으로 데뷔한 이후 2017년 '범죄도시'로 확고한 주연의 위치, 자기 캐릭터의 완성, 장르로서의 마동석으로 탄생하기까지 약 40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고, 이 영화 가운데 몇 편에서 주연도 했지만, '범죄도시'의 강력한 캐릭터와 비슷하게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는 '비스티 보이즈'와 '부산행', '성난 황소' 등이 있었다.
'범죄도시'는 개봉하고 약 7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는데, 영화관에서도 흥행에 성공했지만 이후 OTT 서비스에서도 인기 많은 영화로 손꼽힌다.
마동석은 '범죄도시' 이후 2019년 '악인전'에서 '마동석 캐릭터'를 한번 더 진하게 각인한다. 범죄집단의 우두머리면서 싸이코패스에게 죽을 뻔한 인물로, 형사와 함께 싸이코패스를 체포하는 악당이면서 악당 잡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범죄도시'와 '악인전'에서 마동석이 보여준 강한 캐릭터는 그동안 한국영화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신선한 캐릭터였다. 외국영화에서는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드웨인 존슨 같은 배우가 있었는데, 우연이지만 이 배우들 모두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가졌다.
마동석 캐릭터가 관객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한국의 시대상황과 맞물려 있어서다. 문명이 발달한 국가에서는 '사적 복수'를 법으로 금지한다. 대신 국가는 '공권력'으로 이름하는 '국가 폭력'으로 개인의 복수를 대신하는데, 이것을 '사법체계'라고 부른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는 그런 '사적 복수'를 다룬 영화다. 학생 때 입을 가볍게 놀린 죄로 30대의 오대수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 동안 사설 감옥에서 만두만 먹으며 죽지도 못하고 살아남는다. '친절한 금자씨'도 사적 복수에 관한 영화다. 자기 아이를 납치한 백선생의 협박으로 대신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갔던 금자는 오로지 복수만 생각하며 산다. 결국 그는 백선생을 납치해 다른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백선생을 살해하는데, 이건 현재의 국가 사법체계에서 보면 명백한 범죄다.
미국영화 '모범시민'에서 클라이드는 국가의 사법체계가 범죄자를 올바로 징벌하지 못한다는 걸 확인하고는 자기가 직접 정의를 구현한다. 법을 주무르는 판사, 검사, 범죄자의 변호사 등을 모두 살해하고, 자기 가족을 살해한 범죄자를 납치해 잔혹하게 고문하고 살해한다.
국가는 범죄자에게 희생당한 사람과 그 가족을 위해 범인을 체포하고, 재판해서 구금한다. 때로 사형도 하지만, 사형제도 자체가 '국가폭력에 의한 살해'라는 주장에 따라 사형제도를 없애거나, 사형제도가 있어도 유명무실한 국가들이 많다.
국가가 아무리 피해자와 그 가족을 위해 대리 복수를 한다 해도 '사법체계'는 엄연히 그 사회의 구조적 차별과 부조리로 인해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죄를 짓고도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한국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상식이 될 정도다.
'범죄도시'에서 형사 마동석은 공무원 신분으로 피해자들을 대신해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인물이다. 그것도 점잖게 서류를 꾸미는 방식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닥쳐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고, 그 폭력이 나쁜놈, 가해자, 범죄자를 향하고 있으므로 관객은 폭력의 부당성이라는 당위에서 벗어나 마음 편하게 마동석의 폭력을 지켜보며 대리만족한다.
거대한 몸집과 코뿔소 갑옷 같은 근육으로 뒤덮인 형사 마석도가 조직폭력배, 깡패, 양아치들을 주먹 한 방으로 제압할 때, 강력한 펀치, 시원한 따귀, 폭력과 폭력이 부딪치는 통렬한 타격감, 나뒹구는 범죄자들의 몸뚱아리를 보며 소시민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평범한 소시민은 폭력에 노출될 기회도 적지만, 폭력 앞에서 늘 당하기만 하는 나약한 존재다. 법과 경찰이 없는 세상, 공권력과 국가 사법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면, 약육강식, 원시의 무법천지라는 걸 잘 알기에, 국민은 기꺼이 세금을 내고, 치안과 개인의 안전을 국가가 지켜주는 계약을 한다.
'범죄도시 2'에서 마석도와 반장이 베트남에서 한국에서 도망친 흉악범을 추적하자, 영사관 형사가 베트남 법을 따라야 한다며 말린다. 이때 마석도는 '나쁜 놈 잡는데 이유가 어디 있나, 나쁜 놈이니까 잡는 거지'라며 일갈한다.
나같은 서민이 바라는 경찰의 모습은 범죄자에게는 흉포하지만, 시민에게는 다정한 마석도 같은 형사다. 정의로운 정신을 가졌지만 육체는 괴물처럼 파괴적이고, 범죄자와 맞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폭력을 휘둘러 범죄자를 제압하는 강한 공권력, 강력한 정의를 보고 싶은 마음이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 살인마 조규환을 잡는 강동경찰서 강력계 강철중 형사나 영화 '베테랑'에서 재벌2세 범죄자 조태오를 잡는 광역수사대 강력계 서도철 반장 같은 인물도 마석도와 같은 계열의 경찰이다. 이들은 상대가 누구인가를 계산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른 놈이라면 반드시 잡아서 형법이 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사회가 썩어간다고 느끼는 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올바르게 하지 않고, 대상에 따라 정치적 계산을 하는 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며, 이들이 돈과 권력의 편에서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순간, 상식과 정의는 무너지고 불법과 편법 즉 범죄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형사 마석도는 단순한 인물이지만 자신의 역할, 의무에 관해서 누구보다 철저한 사람이다. 형사는 범죄자를 잡는 것이 의무이고, 그 과정에서 범죄자와 맞붙었을 때, 범죄자의 폭력보다 훨씬 강한 폭력으로 범죄자를 압도하는 형사 마석도를 보면서 관객은 환호한다.
'범죄도시'에서 가리봉동 일대의 조직폭력배를 싹 쓸어 잡아들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특히 연변에서 온 극악한 살인마 장첸 일당을 체포하는 과정이 백미였다. 이 영화에서 형사 마석도의 존재는 다른 모든 캐릭터를 압도했으며, 가리봉 일대 조직폭력배를 한순간 잔인한 폭력으로 제압하고, 그들에게 두려운 존재로 떠오른 장첸마져도 우습게 여기며 일대 일로 싸워 범죄자를 반쯤 죽여 놓는 그의 폭력은 한국사회에서 사라진 '정의'를 떠올리며 관객의 박수를 받는다.
'범죄도시 2'는 전편보다 더 잔인하고 악랄한 범죄자가 등장한다. 범죄자가 악행을 극악하게 저지를수록 형사 마동석이 휘두르는 폭력의 통쾌함이 비례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범죄도시' 시리즈는 등장하는 악당의 범죄 행위가 상상을 뛰어넘을 걸로 예상한다.
이 영화는 전편 '범죄도시'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에피소드가 곳곳에 깨알같이 박혀 있어서, 전편을 본 사람이라면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배우들의 애드립도 자주 보이는데, 영화 소재로만 보면 끔찍한 범죄를 다루고 있어 무겁고 심각한 내용이고, 액션도 몸과 몸이 직접 부딪쳐 만드는 강렬한 타격감으로 사실감을 살리고 있어 가벼운 내용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배우들의 대사나 덜 심각한 상황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전편과는 달리 '15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다. 전편이 '18세 이상 관람가'로 무려 688만 명이 봤으니, '15세 이상 관람가'라면 1천만 명에 가까운 성과를 낸 것으로 봐도 좋겠다. 이 영화도 폭력 수위가 상당히 높은데, '15세 이상 관람가'를 받은 걸 보면 작품의 내용이 권선징악이고, 곳곳에 웃음을 터뜨리는 코믹한 장면이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캐릭터 영화는 서사보다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품을 말하는데, 여기서 형사 마동석은 절대 강자로 등장한다. 이런 인물은 서양 특히 미국에서 보여주는 '수퍼 히어로'의 한국형 버전으로, 고대 설화에 등장하는 '영웅'의 현대적 해석이다.
미국의 마블이나 DC코믹스에 등장하는 수퍼 히어로들은 최근까지 인간과는 거리가 먼 초월적 존재로서 인간 위에 군림했지만, 최근에는 수퍼 히어로도 인간적 고뇌와 물리적, 심리적 한계를 느끼는 약한 고리를 만들고 있다. 이처럼 과거 그리스, 로마의 '신'을 비롯해 '수퍼 히어로', 고대 신화의 '영웅'들이 현대에서는 인간처럼 고뇌하고, 심신의 한계를 느끼는 '인간형 영웅'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형사 마동석은 인간의 외모를 하고 있으나 그는 설화 속 영웅의 현현이다. 그는 인간을 대신해 악마와 싸우며, 인간이 악마에게 당한 수모와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악마에게 그대로 되갚는, 나약한 인간이 간절하게 소망하고 갈망하던 '강한 인간'의 상상이 현실로 소환된 아바타다.
사회에서 힘없는 사람에게 연민을 갖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게 폭력으로 응징하고, 집단(사회)가 약속한 윤리와 정의의 기준에 따라 질서를 바로 잡는 영웅의 존재는 역사 이래 민중이 꿈꾸던 이상 사회의 영웅이자 신의 모습이다. 민중은 이상화한 상상의 존재를 영웅 또는 신으로 만들었고, 부도덕한 사회, 권력을 남용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들에게 경고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예술작품들이 '권선징악'을 말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사회진화론에서도 인류가 생존하는 최선의 방식은 악행보다는 선행이 사회를 지배해야 한다는 걸 본능과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사회는 집단을 이루고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집단이 유지되려면 구성원들이 서로 배려하고, 돕고, 선행을 베풀어야 하는 걸 인류는 배웠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집단이 커지고, 집단 내부에서 이기적이고 폭력성이 강한 존재들이 나타나면서 집단의 결속이 흔들리는 경우, 그 극소수의 반란자를 처치하는 것이 전체 집단의 생존에 유리하다는 건 당연한 결론이다. 생존 방식으로 체득한 권선징악과 소수자 처벌은 근현대로 들어오면서, 권력을 가진 자(집단)가 경쟁자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쓰이면서 폭력은 이중성을 드러낸다.
범죄자의 등장, 사적 폭력의 금지, 공권력(국가폭력)의 정당성 등은 오늘날 다시 해석해야 할 여지가 많은 주제들이다.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 플라톤이 말하는 엘리트가 경영하는 정치, 왕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왕권시대를 거쳐 절대 다수인 민중이 권력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민주주의'에서도 대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하고 빈틈이 많으면 악의적으로 훼손될 수 있는가를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실감한다.
이렇게 대의 민주주가 망가지고, 권력이 특정 소수 집단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권력을 가진 자(집단)가 권력으로 사사로운 이익과 욕망을 추구하는 부조리한 세상으로 타락하면서, 온몸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마동석의 존재는 시민의 영웅으로 등장한다. 관객이 형사 마동석을 응원하는건, 타락한 사회에서 희망을 보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강한 물리적 힘을 바탕으로, 합법적 국가권력의 대행자이며 악한 자에게는 무자비하고, 사회가 만든 정의의 기준을 수호하려는 인물, 궁극으로 국민의 안녕과 사회 안전을 지키는 것은 그 시대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귀결하지만, 시민 개개인의 입장에서 형사 마동석은 '공공의 적'을 처치하는 영웅이자, 친하게 지내고픈 동네 형이자, 내 말을 들어줄 것 같은 든든한 빽이다.
범죄도시 3
영화제작자나 감독이 처음 영화를 만들 때 기대했던 결과와 사뭇 다른 결과가 나타날 때가 있다. 대개는 흥행에 성공할 거라 예상한 영화가 참담하게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거두며 후속 영화를 만드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분노의 질주'는 벌써 열번째 작품을 개봉하고 열한번째 작품을 준비할 정도로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시리즈 영화의 특징은 첫 영화가 적은 예산으로, 소박하게 만들되 흥행에 도움이 되는 오락성과 관객이 흥미롭게 반응하는 소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분노의 질주'는 3천800만 달러를 들여 2억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니 대단한 성공이었다. '범죄도시'는 제작비 70억 원으로 영화관 매출만 56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렇게 놀라운 성과를 올리면, 후속편을 만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흥행 성공은 관객이 이런 종류의 영화를 선택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범죄도시 3'의 경우, 제작비 135억 원을 투입했는데, 손익분기점은 관객 180만 명이었다. 놀랍게도 단 사흘만에 제작비의 손익분기점을 넘어섰으니, '범죄도시'를 보러 오는 관객이 영화에 관한 기대감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다.
'범죄도시'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몇 가지가 있다. '범죄 영화', '실화 영화', '형사 캐릭터 영화'라는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개성과 함께, 무엇보다 시나리오와 연출이 깔끔해서 영화의 수준이 평균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범죄도시'는 경찰이 범죄자를 때려잡는 내용이면서, 정의를 지키는 형사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 범죄자들을 통쾌하게 무너뜨리는 장면에서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단순하지만 명쾌한 서사와 통쾌한 액션이 관객의 마음을 끌어 들였다.
'범죄도시'에서 마석도 형사는 대중이 바라는 이상적인 경찰이며, 현실에서 나올 법하고, 나오길 바라는 '영웅'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기에 관객은 영화를 통해 현실에서 발생하는 각종 불법과 정의롭지 못한 사회 현실을 통쾌하게 해결하는 대리자를 보고 싶어한다.
마석도는 이상화한 경찰 아이콘이며, 관객이 바라는 영웅이다. 그는 만화 캐릭터처럼 유머러스하면서 악당을 제압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졌기에 관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안심하고 마석도의 행동을 지켜볼 수 있다. 시민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정의와 질서를 바로 잡는 경찰이 마석도라면, 이 영화에는 마석도와 반대되는 경찰도 등장한다.
주성철은 범죄자를 잡는 경찰이면서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로 흑화한 인물이다. 경찰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는 현실에서도 많고, 영화에서도 자주 보이는 현상이다. 경찰은 누구보다 범죄자와 가까이 있기에, 범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들도 세속의 물욕 앞에 유혹을 받는 건 당연하다.
다만, 경찰 또는 공무원은 평범한 시민보다 좀 더 높은 수준의 윤리와 도덕성을 요구받는 자리에 있으며, 경찰이 단지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사회의 기본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중요한 사회적 임무를 띄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정부는 그런 경찰 공무원이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격려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경찰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범죄도시'와 비교할 만한 영화로 'LA컨피덴셜'이 있다. 하드보일드 스릴러인 이 영화에서는 어설픈 유머가 통하지 않는다. 세 명의 형사는 반장 더들리 스미스가 범죄 조직의 지분을 차지하려는 음모를 알지 못한 채 동료를 잃는다. 경찰이 자기 범죄를 감추려들면 그걸 밝히는 과정이 매우 어렵다.
부패한 경찰을 잡는 건 결국 경찰이고, 사회를 더럽히는 범죄자를 잡는 것도 경찰이다. '범죄도시'에서 마석도 형사가 '옳은 일'을 하는 건 시민이 정부에게 맡긴 권력의 일부를 행사하는 것이다. 정부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물리적 폭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갖추었고, 합리적 판단에 따라 경찰은 '공권력'이라는 명분으로 폭력을 사용한다.
그런데, 경찰이 범죄자를 잡거나, 경찰 내부의 범죄를 해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경찰이 죄 없는 시민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를 때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평화 집회와 시위를 하는 시민을 향해 최루탄을 쏘거나, 곤봉을 휘둘러 시민을 다치게 하는 경찰의 폭력을 볼 때마다, 경찰의 존재 의미에 관해 생각한다.
엊그제 농성하던 노동자를 경찰들이 곤봉으로 머리를 수십 번 내리쳐 그 노동자의 머리가 깨져 피가 줄줄 흐르는 영상이 퍼졌다. 그 노동자가 반사회적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닌데, 경찰은 그를 범죄자처럼 다뤘으며, 카메라가 보고 있어도 폭력을 휘둘렀다.
경찰은 공무원으로 특수한 지위에 있지만, 임금을 받는다는 점에서 '노동자'다. 경찰이 노동자라고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외국에서는 경찰이 파업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경찰이 노동자를 때려잡는건, 자기정체성을 올바르게 알지 못한다는 증거다.
'범죄도시'는 영화이므로 창작과 상상의 영역이되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즘을 표방한다. 경찰이 범죄를 저지르는건 매우 심각하지만, 영화에서는 극적 장치의 하나로 쓰인다. 모든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영화는 특히 그렇다. SF영화, 판타지영화, 공포영화도 모두 다르게 해석할 뿐, 현실을 반영한다.
창작과 상상의 세계인 영화와 현실이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았다면, 그건 영화보다는 현실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들은 범인을 조작한다. 죄 없는 시민을 체포해 폭행과 고문으로 자백을 받지만, 결국 그 시민은 죽임을 당한다.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김영호는 군인으로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경찰이 되어 대학생을 고문한다. 영화에서 경찰이 죄 없는 시민, 학생을 폭행하고 고문하는 장면은 수 없이 많지만, 그건 단지 '상상'이 아니라, 한국현대사에서 실재했던 사건들의 단편을 묘사했을 뿐이다.
현실에서는 영화보다 경찰(공권력)이 시민을 향해 훨씬 더 많은 폭행과 폭력을 저지른다. 영화는 관객이 선택해, 안전한 장소에서 영상을 통해 '이미지'를 소비하는 형태로 보기 때문에 감정의 흔들림이 덜 하지만, 80년대 거리에서 벌어지는 경찰의 폭력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영화 속에서 보이는 경찰의 폭력은 오히려 순화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다.
엊그제, 경찰은 노동자 한 명을 때려잡았다. 많은 기자와 시민이 지켜보고 있어도, 경찰은 노동자 한 명을 개 때려잡듯 참혹하게 폭행했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말할 수 없이 소름 끼치고, 분노가 치밀었다. 경찰이 마석도 같은 사람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80년대 경찰이 다시 본색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정권에 따라 경찰의 폭력성이 시민을 향해 드러나느냐, 아니냐를 알 수 있다. 80년대 폭력 경찰의 대명사인 '백골단'이 부활할 거라는 의심과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은 흔히 '개'로 표현하는데, 그건 주인이 어떻게 훈련시키느냐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즉, 좋은 주인은 개에게 어떤 폭력도 사용할 수 없다고 훈련시킨다. 하지만, 공원에서 대형견의 목줄을 풀어 놓는 주인처럼, 시민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대형견을 방치하는 건 개주인의 무개념을 떠나 명백한 범죄이듯, 경찰의 폭력성을 방치하는 정권은 시민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
시민은 마석도 같은 경찰을 환영하고, 응원한다. 범죄자, 범죄조직을 박살낼 정도로 힘과 의지가 있는 경찰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준다. 반면 시민(노동자)을 폭행하고, 군림하려는 경찰은 증오한다. 시민이 분노하는 경찰은 주성철처럼 범죄를 저지르는 경찰보다, 시민을 폭행하는 경찰이다.
마석도는 범죄자를 때려잡는 당연한 일을 하면서 칭찬받지만, '진짜 경찰'이라면, 죄 없는 시민을 때려잡는 범죄자화 한 경찰을 때려잡는 게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말단 경찰이 대낮에 시민을 마치 개돼지를 때려잡는 것처럼 폭행해 온몸에 피칠갑을 하게 만들 정도라면, 지휘라인에서 그런 행위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즉, 경찰의 고위 간부들이 거슬러 올라가면서 '시민을 때려잡아도 좋다'는 승인을 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일수록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는 사건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경찰은 범죄자도 함부로 폭행하지 않는다. 경찰의 행동을 보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 척도를 잴 수 있고, 정권의 속성을 알 수 있다. 마석도가 범죄자를 때려잡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 속 장면이고, 나(관객)는 제3자로 멀리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다.
현실에서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는 장면을 보게 되면, 그건 더 이상 제3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와 관련이 있는 사건이 된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경찰의 폭행과 폭력은 시민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주고, 분노를 일으킨다. 지금 한국에서는 마석도 같은 경찰이 필요하지만, [박하사탕]의 김영호 같은 자들이 날뛰는 건 아닌지 몹시 걱정이다.
범죄도시 4
네 번째 영화라서 기본 서사, 캐릭터 분석, 액션 등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분석이 많이 되었다. 권선징악을 구현하는 액션 활극. 많이 알려진 내용이니 줄거리는 생략하고, 조금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보자.
1편은 서울의 조선족 범죄조직을 소탕, 2편은 베트남에서 납치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 3편은 한국과 일본의 마약 범죄 조직 소탕, 4편은 필리핀에서 사기 도박을 벌이는 범죄 조직 일망타진이다. 류승완 감독 영화 '베테랑'에서도 '서울 광역수사대'가 등장하는데, 서도철(황정민) 형사는 재벌 3세의 범죄를 끝까지 추적한다. '부당거래'에서도 최철기(황정민) 형사는 범인 조작을 하고, 권력과 거래한다.
같은 경찰 영화라도 류승완 감독의 작품이 진지하고 무거운 느와르 장르라면, '범죄도시' 시리즈는 액션에 중심을 둔 가볍고 통쾌한 형식이다. 앞으로 나올 '범죄도시'가 지금처럼 조직 범죄나 강력 범죄만 다룰지, 권력 범죄, 자본 범죄 같은 한국 사회의 본질적 범죄에 대해서도 다룰지 매우 궁금하다.
'범죄도시'의 마석도 형사가 권력 범죄, 자본 범죄를 때려 잡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잡을까. 지금까지 마석도 형사가 상대한 범죄자들은 머리보다는 몸을 쓰는 자들이었다. 막강한 피지컬을 가진 마석도 형사는 범죄자와 일대일로 맞짱 뜰 때 그의 특기와 장점이 살아난다.
마석도가 범죄를 저지른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의 낯짝에 그 묵직한 펀치를 날릴 수 있을까. '범죄도시' 시리즈가 지금처럼 계속 액션 활극 오락 영화를 유지한다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처럼 동네를 무대로 하다 어느 순간 우주로 날아가는 것처럼, 영화 소재와 액션이 에스컬레이트하면서 지금과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아니면, 앞으로 영화 제작과 관련해 모두 여덟 편을 만든다고 했으니, 네 편이 남았고, 네 편 모두 지금과 같은 흐름을 유지하면서 악당 캐릭터에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걸로 본다.
'범죄도시'는 시리즈로 나오지만,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은 모두 다르다. 강윤성, 이상용, 허명행 감독인데, 이상용 감독이 2편, 3편을 연출했다. 감독이 다르면 영화 스타일도 달라진다. 4편의 경우, 허명행 감독은 '신세계', '악마를 보았다', '헌트' 등에서 무술 감독으로 활약했던 경험 많은 감독이다.
지난 시리즈에서도 마동석의 액션은 시원하고 통쾌했지만, 4편에서는 이전과 다른 독특한 특징이 있다. 마석도 형사가 범죄자들과 타격전을 벌일 때, 발을 전혀 쓰지 않고, 오로지 두 팔로만 상대를 때려눕힌다. 즉, 강력한 펀치가 마석도의 무기인데, 마석도 뿐 아니라 악당 백창기(김무열)의 직속 부하도 따로 무기를 들지 않고 복싱으로 마석도와 맞붙는다.
마석도의 체격은 헤비급에 해당한다.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178cm), 몸무게는 헤비급에 해당하는 120kg이어서 그 몸에서 나오는 펀치의 타격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마석도 역을 하는 마동석 배우는 실제로도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어 영화에서 범죄자들과 싸울 때, 복싱 자세가 정확하게 나온다. 마석도 형사가 딱 한 번, 주먹 이외의 신체 부위로 타격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감독이 의도한 걸로 보인다.
헤비급 복싱 선수의 펀치는 1톤짜리 해머를 맞는 것과 같은 충격이라고 한다. 마석도의 주먹은 그만큼 강력하고 파괴력이 큰 무기이며, 어지간한 범죄자들이 마석도의 펀치 한 방으로 기절하는 건 당연하다.
4편에서 악당은 백창기(김무열)다. 그는 특수부대 용병 출신으로 나온다. 그는 말도 거의 없고, 표정도 무표정에 가깝다. 그는 지난 시리즈에 나왔던 악당들인 장첸, 강해상, 주성철을 뛰어 넘는 격투 실력을 가진 인물이다. 감정의 변화가 거의 없고, 심리적으로 늘 냉정을 유지하며, 머리까지 좋은 인물이어서 그의 잔인함은 평범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다.
또한 특수부대 군인 출신으로, 체계적으로 실전 훈련을 받은 만큼, 길거리 폭력배들과는 차원이 다른 몸놀림을 보인다. 시리즈의 모든 악당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졌는데, '아저씨'의 주인공 태식(원빈)이 보여주는 액션과 매우 비슷하다. 이건 백창기와 태식이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행동이 절제되어 있고, 가장 효율적으로 상대에게 치명적 피해를 주려는 행동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다.
다만, 백창기라는 캐릭터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단점이 있다. 최강의 살인 기술을 가진 인물이면서 과묵하고,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사설 도박장 전체를 운영하는 운영자의 능력까지 가진 인물인데,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싸이코패스처럼 보인다. 퍼트리셔 하이스미스의 작품 '리플리'에 나오는 주인공 리플리의 행동과 비교하면 매우 비슷하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리플리 같은 인간이 있긴 하겠지만, 감정과 감성이 사라진 인간에게 공감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백창기는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악당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악행이나 평소의 행동에서 악행의 서사가 쌓이지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즉, 백창기가 왜 이렇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의 내면이 어떻게 파괴되었고, 피폐해졌는지 보여주는 과정이 전혀 없이 현재의 모습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개인의 서사가 쌓이지 않아서 관객이 몰입하기 어렵다.
지난 모든 작품에서 악당들은 자기 서사가 없다.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악당에게는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원칙이 작동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이때 악당의 서사는 악당이 지금 저지르는 행위를 합리화 하는 방어기제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있다.
'조커'에서 조커가 저지르는 온갖 악행이 그의 어린 시절과 관련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관객은 조커의 어린 시절을 보며 인간적인 연민의 감정을 갖는다. 조커가 아버지에게 당한 참혹한 폭행 피해는 육체, 정신 모두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고통의 깊이 만큼 그가 저지르는 악행의 크기가 크다는 걸 관객은 이해한다.
따라서 악당에게 서사를 부여할 수도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서사를 드러내는가는 중요하다. 영화의 주제에 따라 악당이라도 서사를 부여할 수 있고, '범죄도시'처럼 액션 활극일 때는 악당과 개인의 서사가 핍진할 이유는 사라진다.
'범죄도시 4'는 이전 작품들보다 코미디 요소를 더 많이, 자주 넣어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백창기가 보여주는 잔혹함과 장이수가 보여주는 웃기는 장면은 한 작품에서 같이 보이는 게 어색할 정도로 괴리감이 있다. 영화의 톤 앤 매너가 어느 정도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야 자연스러운데, 백창기의 잔혹함과 장이수의 코믹함은 극과 극의 대척점에 서 있어 관객에게 인지부조화의 감정을 일으킨다.
느와르 영화들이 사뭇 심각하고 진지하며 어두운 분위기를 띄는 건, '느와르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분위기 때문이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작품 '인생은 아름다워'는 나찌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 귀도가 아들 조수아를 위해 죽음의 상황에서도 늘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비극과 희극의 상황을 교직하며 관객의 감정을 흔드는 연출을 보였다.
잔혹극 속에서도 웃음과 코믹한 상황은 있을테니 그게 시비거리는 아니고, '범죄도시'는 액션 활극 영화라는 특징을 최대한 잘 살리고 있다. 중요한 건, 이런 장치들이 거의 기계적으로 배치되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공업적 웃음'을 유발한다는 데 있다.
웃음을 만들어 내는 방식에서 '범죄도시'와 '극한 직업'을 비교할 수 있다. 같은 경찰이 등장하고, 악당을 일망타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관객을 위한 웃음 포인트를 곳곳에 배치한 것도 같다. '범죄도시'에서는 장이수가 감초 역할을 맡아 웃음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극한 직업'에서는 상황 자체가 웃긴다. 인물이 만드는 웃음보다는 상황이 만드는 웃음이 훨씬 재미있는 건 당연하다.
'극한 직업'에서 잠복 수사를 위해 치킨집을 인수해 영업하기로 결정하고, 형사 가운데 한 사람이 닭을 튀겼는데, 장사가 너무 잘 되어 정작 본업인 '형사'의 임무에서 멀어지면서, '왜 맛있는데'라는 불평이 튀어나올 정도가 되면, 그런 상황은 저절로 웃음이 터진다. 말보다는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아이러니할수록 코미디는 빛을 낸다.
영화의 내용말고, 이 영화를 둘러싸고 극장 배급의 문제가 있다. 전체 극장의 약 80%를 차지하면서 독점으로 인한 폐해가 있고, 영화의 다양성을 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영화 예술이 대기업의 이윤 추구에 집중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
'범죄도시'는 기존 작품들이 크게 성공했기에, 기본 흥행은 보장되어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마동석 배우의 타격감 넘치는 액션과 최고 악당의 등장에 대한 궁금증이 관객을 끌어모으는 기본 전략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내용처럼, 앞으로도 '그냥 나쁜 놈'만 때려 잡을 건지, '진짜 나쁜 놈'을 때려 잡을 건지가 궁금하다.
산업 측면에서 보면, '범죄도시' 시리즈는 투자자들에게 좋은 상품이다. 이미 세 번의 영화가 모두 크게 성공했고, 투자자(기업)들은 막대한 배당금을 가져갔으니,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가능한 적은 비용을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욕심이 발동할 걸로 본다.
관객이 식상해서 극장을 찾지 않을 때까지 작품의 내용에 변화가 없다면, '범죄도시' 역시 자본주의의 영화 상품 가운데 하나로 그렇게 거품이 커졌다 사라지는 모양이 될 확률이 높다. 그 자체로도 의미는 있겠지만, 한국영화에서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보면, 단순히 상업 영화로써 성공을 거둔 건 물론, 세계영화사에서 오래도록 남을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모든 영화가 '예술 영화'일 수도 없고, 그런 가능성과 실력도 없다는 건 분명하지만, 이미 앞선 영화로 많은 돈을 벌었다면, 앞으로 나올 작품에서는 뭔가 기존과 다른 작품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다크 나이트'는 미국의 '영웅' 영화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면서, 단지 오락 영화가 아닌, 탁월한 예술 영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배트맨'이라는 영웅 만화의 주인공이 권선징악을 실행한다는 점에서 '범죄도시'의 마동석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울버린' 시리즈에서도 '로건'은 영웅의 몰락을 진지하고 무겁게 그리며, 죽음을 선택하는 로건의 심리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범죄도시'에서 마석도 형사와 악당 사이에 오로지 난투극만 보여줄 것인지, 그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인식하고,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깊이 있게 드러낼 지,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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