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간으로 소비하는 아・아 : 카페 입장료
가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꼭 필요할 때가 있다. 몸이 아니라 마음에. 커피가 마시고 싶다기보다는, 어디론가 들어가고 싶은 기분. 적당히 무드 있는 음악이 흐르고, 누군가의 대화가 배경음이 되는 그런 공간. 그곳에 앉기 위해 필요한 건 4,500원짜리 입장권, ‘아아’ 한 잔이다.
내 앞에 놓인 커피의 맛은 중요하지 않다. 그 공간에 있는 것을 ‘허락’ 받는 수단에 불과하다. 쇼트 케이스에 가지런히 진열된 디저트, 천장에 매달린 조명, 가게 한 켠에 자리한 오브제, 테이블 위에 올려진 누군가의 노트북. 그리고 내가 점유하고 있는 의자와 테이블 하나. 그렇게 한 잔을 들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잠깐 세상의 속도에서 벗어난 기분이 든다. 커피잔 위에 잠시 나를 내려놓고 온전한 휴식을 취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멍하니 쳐다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여기엔 나처럼 아아 입장권을 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커피를 마시려고 들어온 건지, 들어오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건지. 어쨌든 그날의 나는 4,500원어치의 평화를 조용히 들이켰다.
2. 남의 돈으로 소비하는 아・아 : 달지 않은 호의
카페에 가서 김이 새는 경우가 있다. 아니, 맥이 빠진다고 해야 하나? 지인과 밥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메뉴를 고르는 타이밍에 누군가 '오늘은 내가 살게'를 외치는 순간이 그렇다. 평소에는 주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가끔 '비싸고 달달한 음료'가 땡기는 날이 있다. 비싸고 달달한 음료가 땡기는 그런 날, 하필 누군가 선심을 쓰겠다고 나서면 그 비싸고 달달한 음료를 먹으려 했던 기대감이 확 꺾이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냥 마시려고 했던 거 이야기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매번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누군가 사준다고 비싸고 달달한 음료를 골라버리는 모양새는 영 찝찝해서 내키지가 않는다. 나는 누가 사주니까 이때다! 싶어 비싼거 고르는 사람은 아니니까.
주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아이스를 고르는 데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회 초년생 때, 회사 선배가 커피를 사준다길래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 아메리카노를 고르니 그 선배는 날 보고 푸악 하고 웃더니 그랬다.
뭐야. 사준다고 제일 싼거 먹는 거야? 비싼 거 골라 비싼 거!!
마음이 가는 회사 후배에게 거하게 쓰고 싶었던 선배의 아량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무언가를 먹고 싶지 않은 타이밍에 거절할 수 없어 고른 아메리카노에 '제일 싸다'는 타이틀을 붙이다니. 사주는 사람 눈치를 보다가 제일 싼 거 고른 사람이 되어버린 그 상황이 그렇게 민망하고 겸연쩍게 느껴질 수 없었다. 나는 그 후로 누가 커피를 산다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르기로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아메리카노보다는 보통 500원 정도 비싸니까, 가장 싸지는 않고 내가 평소 먹는 메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사준다고 비싼 거 먹는 얌체 이미지도 피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정도면 제일 낫겠다 싶은 게 내 결론이랄까.
아무튼, 누가 사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누가 사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나는 그냥 더치페이가 편하다. 비싸고 달달한 음료 먹고 싶은 타이밍을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3. 한국에서 소비하는 아・아 : 아・아의 민족
나는 신혼여행을 스페인으로 다녀왔다. 내가 알아본 11월의 스페인 날씨는 분명 선선하다고 했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더위에 약한 나에겐 아직 뜨겁고 열정적인 나라였다. 운치 있는 유럽 풍경 한가운데에 나는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열이 오를 때면, 얼음으로 가득 채워진 ‘아아’ 한 잔이 무조건 반사처럼 떠오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찾아 들어간 카페엔 아아가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 아이스 커피를 주문해도 에스프레소와 얼음잔이 나왔다. 온도는 미지근하고, 얼음은 금세 녹아 사라지며, 커피는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무언가가 된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당연하게 여겼던 ‘아아’가 사실 그렇게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원래 아메리카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진한 에스프레소에 익숙하지 않았던 미군 병사들이 물을 타서 연하게 마시며 생겨났다는 썰이 가장 유력하다. 그래서 ‘아메리카(노)’다. 거기에 얼음을 넣은 것이 지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단순한 변형이지만, 한국에서는 이 ‘얼음 든 쓴 물’이 거의 종교처럼 사랑받고 있다. 얼죽아 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한국에서 커피의 기본값은 아아다.
“아아 하나요.”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선택의 부담을 줄이고 ‘무난함’을 좇는 소비 심리가 낳은 마법의 주문. 서늘한 컵, 바스락거리는 얼음, 무표정한 쓴맛. 그 안에는 감정도, 취향도, 심지어 날씨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신기한 음료가 들어있다.
스페인의 햇살 아래, 식은 커피를 홀짝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국인이구나.
4. 눈치껏 소비하는 아・아 : 보리차가 되지 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남편은 카페인에 취약하다. 카페인을 먹으면 심장이 빨리 뛰고 잠을 못잔다. 한마디로 카페인이 안받는 몸이다. 나와 카페를 갈 때는 주로 초코나 스무디류를 마시는데, 배가 불러 단 음료가 부담스러울 때는 '디카페인' 원두를 찾는다. 디카페인 원두가 없을 때 남편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은 물을 마시는 것이지만, 1인 1메뉴가 필수인 카페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마실거리를 찾느라 티(tea) 종류까지 훑어보지만, 차에는 흥미가 없는 남편으로서는 카페인이 없다는 캐모마일이나 루이보스도 영 마땅치가 않다. 남편은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고심하다 이렇게 주문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원 샷으로 주세요."
희어멀건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남편은 '딱 좋다'는 표현을 쓴다. 얼음이 녹아 커피의 색이 점점 흐려질수록, 남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남편은 좀처럼 따뜻한 커피에는 적응을 못한다. 아무리 원샷이어도 따뜻한 커피는 '보리차' 같은 느낌이 안난다나. 하긴, 커피를 좀 마시는 나로서도 식어버린 커피에는 손이 잘 안가는데. 커피 안 먹는 남편은 오죽하겠나 싶기도 하다. 얼음이 거의 다 녹아 물방울이 잔뜩 맺힌 유리컵. 그 안에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어쩐지 커피라기보다 '커피향'에 가깝게 느껴진다.
남편이 회사를 옮기고부터 차에는 커피가 남은 테이크아웃 잔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커피의 색으로 짐작해 보건데, 커피는 채 다 마시지 못하고 얼음이 녹아버려 반 이상을 채운 듯했다. '여기는 점심 먹으면 꼭 커피를 마시러 가네.' 며칠 전 남편이 저녁을 먹으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에 묻어 있던 곤란함이 차 홀더에 꽂혀있는 테이크아웃 잔에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아내인 나는 안다. 다같이 점심을 먹고 으레 카페로 향하는 코스에서 회사를 갓 옮긴 직원이 이탈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고, 남자만 있는 회사에서 모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칠 때 '저는 요거트 스무디요'나 '아이스 초코요'를 외치는 건 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거기서 '아 그럼 저는 원 샷으로 해주세요'는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닐게 분명했고. 그래서 결국 '네 저도 같은 걸로 하겠습니다'의 결과물이 이 테이크 아웃잔임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테이크 아웃잔을 꺼내 커피를 버리며 괜히 짠한 마음이 든다. 차에 있는 이 테이크 아웃잔에 커피 말고 스무디가 남아있는 날에는, 이 기분이 조금 나아지려나.
5. 이달의 소비1 : 기꺼이 번거로운 맛
여름밤, 시원한 커피 한 잔이 간절해진다. 얼음을 꺼내고 커피 캡슐을 고르다 문득, 몇 시간 뒤 침대에서 뒤척일 내 모습이 떠오른다. 요즘 부쩍 카페인에 예민해진 탓이다. 커피를 포기하고 찬장을 열어 마실 거리를 찾는다. 언젠가 직장 동료에세 선물 받은 A.C. 퍼치스 티백 세트가 눈에 띈다. 가물가물한 기억 속 상자를 열어 허브차 하나를 꺼낸다. 찻잔에 담긴 티백은 오로라처럼 번지며 물을 갈색으로 물들인다. 오랜만에 소서도 꺼낸다. 티백을 건져둘 용도다.
무언가를 마시는 일에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집에서도 커피를 마셔보겠다고 핸드드립 용품과 에스프레소 머신을 샀지만, 커피 가루와 설거지에 질려 결국 캡슐 머신에 정착했다. 뒤처리가 깔끔한데에는 캡슐커피만 한 게 없었다. 설거지도 내가 마신 컵 하나만 닦으면 끝이었으니. 티백이 오랫동안 찬장에 머물렀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차를 마시려면 티백을 건져둘 소서나 차를 우려낼 저그가 필요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티백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도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찻잎이 아니라 티백이라 해도 나에게는 핸드드립 커피만큼 손이 가는 일이었다. 아주 단순하게 즐기기에는 여러모로 캡슐커피만 한 게 없었으므로, 줄곧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카페인 탓에 선택한 차선책이었지만 차는 기대 이상으로 상쾌하다. 커피에 익숙한 후각에 화사한 향이 스민다. 오래전 여름 휴가로 떠난 템플스테이가 떠오른다. 에어컨 없이 창을 열고 앉아 산바람을 맞으며 마신 차 한 잔. 스님은 물을 끓이고 다관을 예열하고, 적절한 온도가 될 때까지 물을 식힌 뒤, 차를 우려내서 찻잔에 천천히 차를 따랐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차를 마시는 행위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맑게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한 모금씩 차를 넘길 때마다 마음은 고요해졌고, 정신은 천천히 깨어났다. 내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더 마신다. 곁의 소서에는 물기 머금은 티백이 놓여 있다. 차를 마시면서 겨우 소서 하나 꺼내는 일을 번거롭다고 여겼다니, 머쓱한 기분을 숨길 수가 없다. 여행은 짐을 싸는 것부터 시작이라던 말처럼, 좋아한다고 여겼던 커피조차 나는 그저 '간편하게 소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미 처분한 커피용품들을 다시 들일 순 없고, 차는 조금 더 정석대로 즐겨볼까. 마음에 새로운 결심이 선다. 티백이 아닌 찻잎으로 즐기는 한밤의 티타임을 생각하면서, 에디션 덴마크 홈페이지에 접속해 찻잎 종류를 살핀다. 어떤 것이 좋을지 한참을 고민하다, 카페인이 없는 루이보스 바닐라를 고른다. 하늘색의 틴케이스는 여름의 색을 담은 것만 같다.
6. 이달의 소비2 : 모카포트와의 짧은 동행
내 소비 패턴에서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충동구매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눈길이 느닷없이 고정되고, 이름도 잘 모르던 물건이 갑자기 내 인생에 필요해진다. 그날의 나는 모카포트를 마주쳤다. 작고 묵직한 금속 덩어리. 묘하게 클래식한 생김새. 이탈리아에선 집집마다 저마다의 때 탄 모카포트가 있다는 설명. 그 물건에선 ‘감성’이 폭발하고 있었다.
‘이걸로 주말마다 커피를 내리면 얼마나 맛있을까?’
커피 맛을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도, 주말에 커피를 내리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헤리티지. 근본. 시간과 손의 흔적. 이런 건 정말 피해 갈 수가 없다. 근본 있는 소비자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모카포트와 알맞게 분쇄된 콩을 홀린 듯이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꽤 빨리 발생했다. 주말은 왔지만, 커피를 내릴 여유는 오지 않았다. 모카포트를 개시하기엔 여유가 없어 다음을 기약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개시 못 한 모카포트는 찬장 한 구석에서 반짝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역시 캡슐커피 머신을 눌렀다.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현실이 내려온다. 감성을 대체한 효율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내가 진짜 원했던 건, 그 커피였을까? 아니면 모카포트를 가진 나 자신이었을까? 근본을 원한 게 아니라 그냥 근본 있어 보이고 싶었던 걸까? 에스프레스 머신으로 불경한 ‘아아’를 만들 생각을 해서 벌받은 건 아닐까? 요란한 소비가 낳은 부산물은 늘 고민거리를 가득 안겨다 준다. 금속광택을 띠고 있는 모카포트는 그렇게 찬장에서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있다.
거울아 거울아, 다음 근본력을 채워줄 아이템을 보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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