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낭만을 소비하는 드라이브: 낭만에 대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주변 친구들은 마치 으레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너도나도 운전면허를 땄다. ‘지금 따놔야 편하다’라는 말에 나도 운전면허 따기 대열에 합류했고, 면허증을 손에 쥐었지만, 당시 나에게 운전면허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지, 바로 운전을 해보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은 운전면허를 땄으므로 직접 차를 몰아보겠다는 의지로 불탔다. 본인 차는 없고, 엄마 아빠에게 겨우 허락을 받고 조심하라는 당부를 몇 번이나 받은 후에 쥘 수 있던 운전대는 청소년과 어른의 경계에 모호하게 서 있던 그 시기에 꽤 설레고 흥미로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여느 날과 같이 저녁을 먹고 밤늦게까지 하릴없이 티비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날, 제법 친하게 지내던 같은 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한테 허락을 받아서 드라이브 갈 건데 너도 같이 가자는 것. 30분이면 도착한다는 게 전화의 내용이었다. 운전면허를 딴지 얼마 안 된 친구였고, 나는 불신이 가득 찬 목소리로 ‘네가?’를 반복해 물었지만,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한밤중에 드라이브 간다는 것은 지루한 일상에 찾아온 신선한 즐거움이긴 했다.
찬바람이 매섭던 겨울밤, 추리닝 바지에 패딩점퍼를 대충 걸치고 나와 친구가 모는 차에 올라탔다. 차에는 이미 나 말고 다른 친구가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둘은 신나게 흥이 오른 상태였다.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차에서는 원더걸스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텔미 텔미-를 따라 하며 우리는 동네를 빠져나갔다. 노래가 너무 시끄러운 거 아니냐고 타박했지만 들뜬 기분은 숨길 수가 없었다. 동네를 빠져나가 자유로를 타면서부터 운전대를 쥔 친구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고, 자유로를 지나 강변북로를 달리며 우리는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막연하게 불안하던 시기,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해방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한강 부근에 차를 세워놓고 라면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 기억은 어쩐지 희미해서 남아있지 않다. 오가는 차 안에서 의미 없는 농담을 던지고, 웃고, 소리 질렀던 기억만 또렷이 남아있다. 차가 거의 없던 강변북로, 일정한 간격의 가로등 불이 차의 속도만큼 차례대로 내 옆을 스쳐 지나갔던 풍경,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절 우리가 모를 리 없었던 유행가. 이런 것들이 오랜 시간 머릿속에 남아있다. 낭만이라 부르기엔 거창한가 싶지만, 그날의 기억을 붙잡을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튼, 낭만적인 밤이었다.
2. 드라이브로 소비하는 하루 : 딱 좋은 하루
결혼 전엔 자는 곳이 어디든 상관없었다. 낯선 호텔의 흰 침구, 다른 도시의 밤공기, 아무 계획 없이 시작한 하루. 그런 게 좋았다.
그런데 결혼 후, 언젠가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밖에서 자는 것보다 집에서 자는 게 더 좋아졌다. 와이프도 비슷한 말투로 동의해줬다. “숙소 잡고 짐 풀고 하는 것도 귀찮고… 집 침대가 제일 편해.”
그래서 요즘은 당일치기를 선호한다. 너무 멀리 가지 않고, 딱 하루만 기분 내고 돌아올 수 있는 거리.
주유는 꽉 채우고, 간식은 적당히 사두고, 음악은 전날 밤에 골라둔다. 계획이랄 것도 없는, 가볍고 느슨한 출발이다. 도착지는 매번 다르다. 바다일 때도 있고, 산일 때도 있고, 그냥 근교 쇼핑몰일 때도 있다. 어떤 날은 맛집 하나에 하루를 쓰고, 어떤 날은 예쁜 카페 하나에 목적지를 걸기도 한다.
당일치기의 가장 큰 장점은 떠날 때와 돌아올 때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다. 오전에 나섰던 우리 둘이, 저녁엔 다시 같은 집으로 돌아온다. 짐 정리는 거의 없고, 피로는 하루치만 쌓인다. 샤워를 마치고 익숙한 침대에 누우면, ‘그래도 오늘 잘 나갔다’ 싶은 기분이 든다.
돌아오는 길에 “다음엔 어디 갈까?”를 말하는 걸 보면, 우리에게 이 하루는 꽤 괜찮은 소비였던 것 같다.
하루치 바람, 하루치 드라이브, 하루치 커피. 우린 오늘 하루를 적당히 써버리고, 기분 좋게 돌아왔다.
3. 드라이브로 소비하는 음악: mmr. drive playlist
부쩍 울적한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차 키를 집어 들고 시동을 건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어 버겁다고 느낄 때, 그래도 이 차 하나만큼은 내 의지대로 움직여준다는 게 위안을 준다. 내가 밟는 대로, 내가 핸들을 트는대로 움직이는 차. 그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세상에 하나도 없는 건 아니구나, 마음을 달랜다. 자정 무렵, 도로에 차가 거의 없는 시간.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운전대를 잡는다. 달리는 속도대로 머릿속에 있던 복잡한 상념이 흩어진다. 한 밤의 드라이브, 그 시간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한다.
4. 드라이브를 가장한 소비: 방향과 목적
주말 오후, 나는 기분 전환 삼아 드라이브를 가자고 말한다. 와이프는 “어디로?”라고 묻지만, 나는 대답을 흐린다. “그냥 바람이나 쐬자”라거나, “일단 나가볼까?” 같은 말로. 하지만 이상하게도, 도로에 오르면 차는 매번 비슷한 목적지로 향한다.
내가 산책이나 외출을 좋아하는 걸 와이프도 잘 알기에 늘 맞춰 준다. 차 안에서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거나, 가끔은 서로 아무 말 없이 바깥 풍경을 본다. 사실 이대로 돌아가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지만, 차는 늘 비슷한 곳에서 멈춘다.
쇼핑몰. 편집샵. 아울렛.
나는 아무 의도 없이 나온 김에 아쉬우니 왔다고 말하지만, 와이프는 웃으며 말한다. “또 시작이네.”
맞다. 드라이브를 나온 우리는 오늘도 또 뭔가를 사고 말았다. 이유는 대단하지 않다. 지난번엔 사이즈가 없었는데 이번엔 재입고가 됐고, 생각보다 할인이 많이 들어갔고, 그냥 만져보니까 예뻐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와이프가 고개를 끄덕여 줬기 때문에.
계획에 없던 티셔츠 하나, LP 한 장, 컵 하나쯤은 그렇게 손에 들린다. 뭔가 대단한 소비를 한 것도 아닌데, 기분은 꽤 괜찮다. “운전하느라 수고했으니까”라는 핑계로 커피도 한 잔 사 마신다. 오늘 하루를 잠깐 정리하듯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일어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뒷자리엔 쇼핑백이 함께 타고 있다. 어쩌면 오늘도 또 '드라이브를 가장한 소비'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 우리가 함께 나와서, 함께 웃고 즐기다, 함께 돌아가는 이 루틴이 꽤 마음에 든다. 목적지는 대충 정했지만, 방향은 정확했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꽤나 괜찮은 드라이브를 했다.
5. 이달의 소비1: 드라이빙 슈즈 박스 박스 박스
난 운전 연수를 아버지께 받았다. 면허를 따고 도로에 처음 나갔을 때, 아버지가 가장 먼저 하신 말이 있다.
“슬리퍼 신고 운전하면 안 된다.”
슬리퍼로는 페달 감각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던가, 미끄러지면 페달 사이에 끼어버린다던가 하신 말들이 그땐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아도 긴장하지 않는 시기가 되었을 때쯤부터, 크록스를 신고 운전하는 날이 잦아졌다. 구두를 자주 신어서 운전할 때는 갈아 신었다. 갈아 신는 날이 아니더라도, 편해서, 가볍게 나간다는 이유로, 크록스의 페달 점유율이 점차 높아졌다. 그러다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슬리퍼는 안 된다.’ 슬리퍼와 신발의 경계에 있는 크록스가 갑자기 위태로워 보였다. 불현듯 위험해진 크록스가 날 그곳으로 이끌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박스 하나가 들려 있었다. 바로 토즈의 드라이빙 슈즈.
드라이빙 슈즈는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탄생하였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엔 부의 상징이었고, 레이싱 드라이버들에겐 정교한 페달 조작을 위한 도구였다. 그래서 구두나 운동화보다 얇고 유연하다. 토즈의 아이코닉한 제품인 고미노는 1970년대 말에 등장했다. 실용성과 멋을 동시에 챙긴 고미노는 지금의 토즈의 기반을 만들어줬다.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의 조언 때문만은 아니다. 발등을 덮는 스웨이드의 질감과 바닥에 콕콕 박힌 133개의 고무 페블이 언젠가부터 자꾸 눈에 밟혔다. 토즈 팩토리 장인들이 만들어낸 그 신발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상자 열리는 소리, 가죽 냄새, 신고 밟아보는 페달감. ‘안전’을 위한 투자로 둔갑시키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렇게 크록스는 현관 구석으로 밀려났고, 내 드라이브는 조금 더 단정한 자세가 되었다.
이탈리아산 드라이빙 슈즈를 신으니 이탈리아산 차도 필요할 것 같다.
6. 이달의 소비2 : 그때는 없고, 지금은 있는
스물 여섯, 내 생애 첫 차를 사고 처음으로 친구와 장거리 여행을 떠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여행이라니.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드라마에서 보던 드라이브 장면을 실현할 거라는 설렘이 있었다. 오픈카를 타고 선글라스를 쓴 채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달리는 그 장면. 비록 오픈카는 아니지만 내 차로 하는 첫 여행에 선글라스 정도는 갖춰야하지 않겠냐고, 나는 아울렛에 가서 선글라스를 샀다. 지금의 나라면 사지 않았을, 사각형의 큰 렌즈가 투박한 발망 선글라스를. 5시간을 달려 도착한 남해에서 나는 원 없이 드라이브를 즐겼다. 앞뒤 창문을 모두 열고 손을 뻗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을 느꼈다. 선글라스를 낀 내 모습을 사이드미러로 언뜻 확인하면서, 스물 여섯의 나는, 우습지만, 여유를 아는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이제는 일에 쫓겨 여행이 큰 이벤트가 되어버린 나이가 되었지만, 여름이 지나고 바람이 선선해지면 어쩐지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주말에 근교 드라이브라도 나가보자고, 검색창에 ‘드라이브 코스’를 검색해본다. 목적지를 정하고나니, 문득 선글라스 생각이 난다. 10년 가까이 함께한 그 투박한 발망 선글라스는 이제 놓아주고, 새 선글라스를 하나 장만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제 여유라곤 느끼기 어려운 진짜 어른이 되었으니, 이번에는 아울렛말고 백화점으로 가볼까 싶다. 드라이브에는 언제나 선글라스와 바람이 빠질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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