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록 vol.10 : 연말

메모리브 매거진, 소비록 2025년 12월호 vol.10

2025.12.30 | 조회 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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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에 대해 다룹니다.

안녕하세요! 메모리브 매거진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달, 여러분은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소비록 2025년 12월호의 테마는 '연말'입니다. 🎄🎆

첨부 이미지

1. 이달의 소비1 / 포장지:낭만

 날씨가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와이프는 손끝으로 먼저 계절을 느낀다. 나는 아직 아우터를 제대로 꺼내 놓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벌써 패딩을 입기 시작한다. 주머니 속에서 손을 문질러대고, 양쪽 소매를 당겨 손을 숨기곤 한다. 수족냉증이 있는 탓에 손은 늘 겨울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얼마 전 아는 형과 아울렛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쇼핑의 목적이 나를 위한 게 아니었던지라 관심 있게 둘러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장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장갑은 자연스럽게 꼬리를 물고 최근 들어 손을 비비는 횟수가 늘어난 와이프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이미 집에 장갑이 있고, 차를 끌고 다니니 솔직히 얼마나 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구매했다. 색은 와이프가 좋아하는 블랙으로, 손이 잘 트니 안감은 손가시가 걸리지 않도록 부드러운 걸로, 기왕이면 손목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걸로. 언젠가 뚜벅이로 외출할 때, 이게 있었지하고 꺼내 쓸 수 있는 그런 장갑.

 와이프는 장갑을 보더니 잠깐 멈칫하다가 말했다. “무슨 장갑이야~ 써봤자 얼마나 쓴다고~” 나는 대답했다. “오다 주웠다~!” 말은 그렇게 해도 역시나 아내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이번 선물도 성공적인 것 같다.

 선물을 고를 때 실용성을 아예 따지지 않을 순 없다. 하지만 효용 보다 상대방의 미소 띤 얼굴이 먼저 그려진다면 실용성 정도야 내려놔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쓸모는 좀 떨어지더라도 낭만이라는 포장지에 담아 건네면서.

🧤 파타고니아 Nano Puff Mitts - 129,000원

2. 이달의 소비2 / 이거 얼마짜린지 알지?

 출근길에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스타벅스 앱을 연다. 옷깃을 파고드는 찬 바람. 아무리 좋아해도 이제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고집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스치던 순간, 크리스마스 케이크 주문 예약 팝업이 눈에 띈다. 언제부턴가 연말이 다가오면 인스타그램에는 유명 호텔 케이크가 담긴 사진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심플하고 세련된 케이크 장식, 부드럽고 촉촉한 질감의 단면, 케이크에 꽂은 초와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은 행복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는 증표인 것만 같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유명한 고가 케이크 예약 행렬에 줄을 선다. 횡단보도 근처에 하나씩은 있는 파리바게트 케이크에는 관심이 없다. 예쁘고 값비싼 케이크가 모임의 분위기와 가치를 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더 몸값 높은 케이크를 찾는다.

 케이크는 처음부터 모두의 음식이 아니었다. 설탕이 황금처럼 귀하던 시대, 케이크는 근세 유럽 귀족문화의 상징이었다. 달콤한 층을 쌓아 올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곧 부와 세련됨을 증명하는 표식이었고, 과하게 장식된 케이크는 귀족 결혼식이나 연회에서 쓰이며 가문의 재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늘 자신보다 한 단계 위의 삶을 흉내 내고 싶어 한다. 케이크로 보여주는 그 부와 권력, 우아함을 따라가고자 중산층은 오븐을 들이고, 설탕을 아끼며 생일과 결혼식이라는 사적 의례에 케이크를 올렸다. 귀족의 식탁에만 오르던 케이크는 그렇게 한 계층씩 내려오며 사회 전체로 퍼졌고, 낯선 사치를 향한 동경이 케이크를 보편적인 축하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재료는 싸지고, 만들기는 쉬워졌지만, 케이크 앞에서 촛불을 켜고 사진을 찍는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 오래된 욕망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특별한 날을 더 근사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 하루쯤은 더 좋은 삶을 흉내 내고 싶은 마음이.

 그 축하의 상징은 한 해의 끝을 기념하는 의미가 되어 연말 테이블에 놓인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이 담긴 마음으로 케이크를 사고, 초를 분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그 시간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증폭제가 되어 케이크는 자리를 잡는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작은 농담에 웃고, 누군가의 소원이 담겼을지도 모를 초를 모두가 한 방향으로 바라보는 순간을 위해. 하지만 이런 순간은 비싼 케이크에 밀려 뒷전이 되어 버렸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 위해서는, 먹기 전에 충분히 사진을 찍어둬야 한다. 호텔 케이크 가격은 어쩐지 케이크의 값이라기보다 사진값인 것만 같다.

 다음 주로 다가온 친구들과의 연말 모임을 생각한다. 어떤 케이크가 어울릴지 고민하다, 아침에 본 스타벅스 케이크를 떠올린다. 스타벅스 케이크는 너무 흔한 것 같고, 가까운 조선 델리를 다녀올까 싶어 퇴근 후 일정을 확인한다. 퇴근 후 다녀오기에는 고단하겠다 싶지만, 그 정도는 돼야 케이크를 준비하는 내 체면이 설 것만 같다. 조선 델리 홈페이지에 접속해 케이크 종류를 살핀다. ‘라즈베리 기프트 박스, 150,000’. 촘촘히 케이크시트를 감싼 산딸기 젤리 위로 화이트 초콜릿의 커다란 리본이 단번에 시선을 끈다. 이 케이크에 사진값과 체면값까지 포함되어 있나. 고작 케이크에 체면치레까지 생각하고 있는 내가 우습지만, 귀족이 되지 못한 나는 포장 예약근처에서 맴돌던 커서를 멈추고 버튼을 누른다. 다음 주 모임에서 쏟아질 칭찬을 생각하면 벌써 어깨가 으쓱해진다.

 이 정도면, 연말 케이크로 적당할 거야.

 속으로 되뇌며 150,000원 어치의 욕망을 결제했다. 올해도 나는 케이크의 의미가 변질되는데 일조했다.

🎂 조선델리 라즈베리 기프트 박스 - 150,000원

3. 작년처럼 소비하는 연말: 리플레이

 오늘도 모임 약속이 있다. 3주째 주말 외출이다. 다음에 만나자고 약속을 미뤄둔 사람들과도 어쩐지 12월 안에는 만나야만 할 것 같아서 급히 일정을 맞춰 넣은 탓이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과는 주로 평일 저녁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금요일이나 주말 밤에 만난다. 어떤 날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또 어떤 날은 먹자골목에 있는 삼겹살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어디를 가든 가게는 만석이고, 테이블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다. 잔은 술로도, 음료로도 채워지며 건배로 이어진다. 돈 잘 벌고 싶은 소망과 젊음을 유지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누면서 저녁 식사만으로는 부족해 2차로 자리를 옮겨 돈을 쓰고,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술을 마신다. 길거리를 채운 불빛과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연말의 흥을 부추기며 이어지는 다음 술자리를 독려한다. 주량보다 조금 더 마신 날, 택시를 잡아타며 집까지의 택시비를 대충 가늠해 본다.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지난주까지는 어떻게든 지켜낸 저녁 식단과 이번 주에도 취소해 버린 필라테스 수업을 생각한다. 남은 연말 모임의 횟수와 앞으로 미뤄야 할 필라테스 수업이 몇 번인지 세는 동안, 목적지 도착을 알리는 진동과 함께 18,900원이라는 문자가 도착한다. 고맙습니다. 짧은 인사를 남기고 택시에서 내려 중앙현관으로 올라가는 사이, 택시는 미련 없이 아파트 단지를 훌쩍 빠져나간다. 하루 종일 내가 없던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취기가 화르르 오른다. 과식한 탓에 꽉 끼어버린 바지 단추를 풀고, 멋 부리느라 여기저기 채운 액세서리는 다 풀어 놓지도 못한 채 소파에 풀썩 누우며 생각한다.

 다이어트는, 내년에 다시 시작하자.

 

4. 세일로 소비하는 연말: 뫼비우스의 택배상자

 11월에서 12월로 넘어가면서부터 각종 알람 때문에 스마트폰이 조용할 틈이 없다. 문자, 카톡, 메일 가릴 것 없이 각종 할인 소식이 날아든다. 블랙프라이데이부터 시작해 시즌오프, 크리스마스 세일, 연말 클리어런스갖가지 세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며칠 간격으로 쏟아지는 알람들 덕분에 내 통장도, 마음도 덩달아 바쁘다.

 여기저기 울려 퍼지는 세일 소식에 특별히 필요한 건 없지만, 이미 엄지는 열심히 스크롤을 내리고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이 가격이면 안 사는 게 손해지.’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게다가 평소에 눈여겨봤던 제품이 세일택을 단 채 눈앞에 나타난다면? 이건 내 것이 될 운명이었다고 합리화하며 결국 장바구니에 들어가게 된다. 결제 후엔 돈을 썼지만 오히려 번 것만 같은 기분은 덤. 심지어 약간 뿌듯하기도 하다. 몇 년째 반복되는 이 패턴에 올해는 속지 말아야지 했는데 역시 실패다.

 이 시기가 되면 반복되는 세일이 뻔하고 지루한 연례행사처럼 느껴지다가도, 동시에 마음 한편이 이상하게 들뜬다. 거리에 가득한 연말 분위기와 울려 퍼지는 캐럴, 크리스마스 디자인으로 바뀌는 백화점과 쇼핑몰이 저마다 연말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연말 세일이 시작되었습니다!’라는 말은 세일 소식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벌써 연말이란 걸 실감하게 해주기도 한다.

 ‘연말이란 단어를 접하면 으레 그러하듯 나 역시 반성의 자세로 올 한 해를 되돌아본다. 새해까지 한 달도 채 안 남은 이 시점에서 무엇을 정리해야 할까? 괜스레 달력을 매만지며 지나온 날들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 올해도 큰일 없이 잘 보낸 것 같아 묘한 안도감이 든다. 이대로 연말 감상에 젖어드는 것도 좋겠지만우선 택배 박스부터 정리해야겠다. 연말 세일에 혹해 뭘 또 이렇게 샀나 싶어 웃음이 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안 쓰는 물건들은 처분을 하던 정리를 좀 해야겠다.

 그러는 사이 또다시 울린 세일 알람을 보며, 전에 본 그 옷이 문득 떠올랐다.

 음아마 내년에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질 것 같다.


5. 연말을 소비하는 감정: 빈 칸

 연말이 되면 괜히 마음이 시끄러워진다. 1년 내내 무심하게 흘려보냈던 시간들이, 이 시기만 되면 하나같이 줄을 서서 고개를 든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을 떠올리면 늘 아쉬움이 먼저 온다. 운동을 꾸준히 하겠다던 다짐, 한 달에 책 두 권은 읽겠다던 포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겠다던 약속까지. 지켜진 건 거의 없고, 지나간 날들은 너무 빨랐다.

 그래도 되짚어보면 완전히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설펐을 지언정 최선을 다한 날들이 있었고, 걱정과 근심으로 불안했던 마음이 어느 순간엔 조금 단단해지기도 했다. ‘잘 살았나?’라는 질문엔 쉽게 답 못하지만, ‘그래도 이만큼 버텼다는 생각엔 조용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연말의 감정은 늘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온다. 부족함과 감사함. 후회와 안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올해를 내려놓게 된다.

 그리고 이맘때가 되면, 늘 찾게 되는 게 있다. 내년 다이어리. 끝까지 채운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또다시이번엔 다를지도 몰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아마 올해도 그럴 것이다.

 새해 계획을 꼼꼼히 적어 넣을, 그리고 아마3월쯤이면 슬그머니 책상 서랍으로 들어갈 그 다이어리를 고르며 연말을 보낼 것이다. 그래도 뭐, 다이어리의 빈칸만큼 내년엔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니까.


6. 인사를 소비하는 연말 : 연말의 마음

 대학 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카드를 만들어 보냈다. 적당한 두께와 질감의 색지를 고르고, 그 위를 꾸밀 공예재료를 모아 자르고 붙이는 정성이 상대에게 전하는 감사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카드를 만드는 일은, 나와 그 사람과의 한 해를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재미가 있는 일이었다. 만드는 동안 어떤 말을 쓸지 고민하고, 다 만든 후에는 부족한 곳은 없는지 살피며 마음에 맴돌던 말을 정갈하게 다듬었다. 완성된 카드에 펜으로 글씨를 써 내려가면서, 올 한 해도 좋아하는 사람과 잘 지냈다는 마음에 부듯함이 찼다. 카드에 들어가는 문장은 한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 마음은 수십 페이지에 달했다. 나는 연말이 되면 의식처럼 카드를 만들고, 썼다.

 한 해가 끝난다는 사실은 마음을 아련하게 만든다. 세상이 끝나는 것도, 다시는 못 볼 사람이 아닌데도, 연말이 되면 어쩐지 그 아련한 마음으로 나쁜 기억과 서운한 감정은 모두 잊고 지난 일들을 용서하고 싶어진다. 감사한 사람에게는 한참 전의 일이라도 꼭 인사를 남기고 싶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 더 관계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사를 전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올해도 어김없이 문구점의 카드 코너를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큰 카드는 여백이 많아 부담스럽고, 작은 카드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지 못할까 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적당한 크기와 디자인의 카드를 한참 고른다. 연말에 찾아오는 마음의 변수를 염두에 두고, 카드를 쓸 사람의 수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집어 든다. 책상 앞에 앉아 카드를 펼치고, 평소에는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말들을 모으고 골라 한 줄씩 적는다. 하지만 내 말이 혹여 누군가에게 다른 뜻으로 전해지지는 않을까, 문득 드는 우려의 마음으로 한 번 고치고, 또다시 고친다. 결국 남는 건 가장 무난하고 안전한 말뿐이다.

 고심해서 고른 카드 안에, 다듬고 걸러낸 말들만 남아 있는 한 장의 카드.

 그 안에 연말에 가장 가까운 마음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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