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자취집

<기억의 장소>에 대하여, 금요지기 수염왕이 쓰다

2024.04.05 | 조회 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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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난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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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부터 서울에서 살고 싶었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가라는 말도 있지 않나. 하지만 서울 집값이 만만치 않더라. 부동산을 돌아보니 서울의 집값은 서울 중심이 제일 비싸고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쌌다. 이건 뭐, 싸고 넓고 좋은 집을 찾아다니다 보면 북한까지 가겠더라. 그래서 적당히 타협한 곳이 수유동이었다.

 수유동에 대해 아는 정보가 전혀 없었다. 동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모유 수유‘가 나오길래 그 뒤로는 검색하지 않았다. 수유동은 조용하고 예스러움이 느껴지는 동네였다. 다르게 말하면 오래되어 낡은 구닥다리 동네. 집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덕성여대가 있어서 여대생들이 많이 보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여대생들은 학교 앞에서만 사는지 집 근처에서는 도통 보이질 않았다.

 수유동 집에 이사 온 날 집안을 살펴보니 에어컨이 있던 자리가 휑했다. 전에 살던 집주인이 에어컨을 놓고 간다고 했는데 말도 없이 떼서 가져가 버렸더라. 그래도 아프리카에서도 살았던 나니까. 집에 에어컨쯤이야 없어도 괜찮겠지 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여름이 되고 알았다. 한국이 아프리카보다 더 덥다는 걸. 그해 여름, 한국에 역대급 폭염이 찾아왔다. 엄청난 무더위를 도무지 견딜 수 없었던 나는, 급히 용산으로 달려가 이동식 에어컨을 하나 사 왔다. 왜 이동식 에어컨을 샀냐면 일반 에어컨은 예약이 밀려서 한 달도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이동식 에어컨을 샀는데 성능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너무 시끄럽다는 거. 이동식 에어컨을 켜면 마치 시원한 기계실에 드러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수유동 집에는 나보다 먼저 자리 잡고 계신 분들이 있었다. 바로 바 선생님들. 쉿! 그분들의 이름을 말한다면 크게 노하실 수 있으니 이름을 말하지 않도록. 다시 이어서, 수유동 집에는 바 선생님들이 참 많았다. 크기도 다양했는데 주방 싱크대 안이나 방구석을 기어다니는 분들은 쌀알 뻥튀기 정도의 크기였고 가끔 화장실 천장이나 현관문 근처에서 발견되는 분들은 크기가 엄지손가락 만했다. 하루는 회사에 출근해서 가방을 뒤져보는데 바 선생님이 가방 안쪽에서부터 내 팔을 타고 올라왔다. 내가 집에서 한 분 모셔 온 거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사무실 안 다른 직원들에게 내가 바 선생님을 가방에 넣고 왔다는 걸 들킬까 봐 조용히 맨손으로 바 선생님을 잡았다. 그러고선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유유히 탕비실로 가, 휴지로 바 선생님을 감싸 꾹 누르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후 손에 전달된 바스라지는 감촉이 잊히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수유동 집은 유난히 난방이 안 됐다. 워낙 오래된 빌라라 방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이 나무 바닥은 보일러를 아무리 틀어도 데워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베란다에 있는 보일러의 연통을 벽이나 창문에 구멍을 뚫어 밖으로 빼지 않고 창문 열고 그냥 밖으로 빼놓은 탓에 집안으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거실에서 숨을 쉬면 허연 입김도 나왔다. 그때 내가 쓰던 스마트폰인 아이폰6S는 추우면 꺼져버리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집안이 어찌나 추웠던지, 안방에서도 꺼지더라.

 수유동 집은 또 방음이 안 됐다. 밤마다 옆집 아저씨의 기침 소리가 심심찮게 들리고 귀를 기울이면 윗집에 사는 젊은 친구들의 대화 소리도 들렸다. 이 정도면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도 다른 집에서 잘 들리겠다 싶었다. 그래서 부단히 조용하게 하려 애쓰며 지냈는데, 한번은 친구 결혼식 축가를 연습해야 해서 그냥 부르면 시끄러우니까 이불을 두 겹 뒤집어쓰고 노래를 불렀는데 바로 옆집 아주머니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별의별 소리 다 들리니까 제발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억울했다. 이불을 두 겹이나 뒤집어썼건만. 그런데 별의별 소리라니?

 수유동 집은 좀 엉망이었지만, 수유동은 좋았다. 개발 제한 탓인지 건물들이 낮아, 건물들 너머로 북한산과 도봉산이 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조금 더 들면 쉽게 하늘도 볼 수 있었다. 동네가 구닥다리이긴 하지만 어릴 적 살던 동네와 비슷해서 동네를 거닐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그렇게 2년을 살고 수유동을 떠났다. 집은 나온다 쳐도 수유동에서는 쭉 살고 싶었는데 스튜디오를 멀리 차리게 되어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수유동을 떠난 지 벌써 5년. 이런저런 기억으로 가끔 그리운 생각이 든다. 이 낡은 동네도, 내가 살던 집도, 언젠가 재개발을 거처 새로운 도시와 건물로 탈바꿈하겠지? 훗날 내 기억과 다른 모습이 되었을 때, 지난 시간을 추억하기 위한 사진 한 장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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