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먼저일까요, 기억이 먼저일까요? 꿈이 먼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기억의 예외를 주장합니다. 어떤 꿈에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한다고요. 따라서 꿈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고, 또 다음 기억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이끌어준다고 설득합니다. 기억이 먼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꿈의 불확실성을 지적하지요. 꿈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논리입니다. 실컷 꿈을 꾸었다 한들, 깨어난 우리에게 남아있는 기억이 하나도 없다면,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갈 것입니다. 즉 우리는 어떤 꿈을 꾸었는지 기억하고, 또 기억을 바탕으로 새로운 꿈을 꿉니다. 바꿔 말하자면 기억이 없이는 꿈을 꿀 수 없고, 꿈꾸지 않는 자가 기억을 남길 리도 없을 겁니다.
오늘 우리는 인류 역사를 뒤흔들었던 두 차례의 전염병에 대해 알아볼 겁니다. 첫째는 14세기에 전세계를 휩쓸어, 특히 유럽 인구의 1/3 가량을 새카만 주검으로 바꿔놓았던 흑사병입니다. 페스트라고도 부르는 끔찍한 바이러스죠. 둘째는 20세기 초에 등장해 최소 1500만 명, 최대 5000만 명을 죽게 만든 스페인 독감입니다. 1차대전과 시기가 겹치는 탓에 유명세는 흑사병에 미치지 못하지만, 혼란스러운 전시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다보니 위력은 더욱 강력했던 병입니다. 두 병마는 대규모의 집단 사망으로 이어진 재앙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반면,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기억을 남겼는지’에 따라 갈림길이 나뉘었죠.
1870년 이탈리의의 소도시 프라토에서 묵직한 자루가 하나 발견됩니다. 오랜 저택의 낡은 방 구석에서 발견된 이 자루에는 자그마치 15만 장 가량의 서류가 들어 있었죠. 14세기 말 이탈리아의 거상이었던 프란체스코 다티니가 남긴 편지, 계약서, 어음 등이었는데요. 읽어보면 대체로 이런 내용입니다. “금박으로 장식한 성모 마리아의 그림을 구해 주십시오. 가격은 신경쓰지 않겠습니다.”
다티니의 서류 뭉치는 14세기 중후반, 즉 흑사병이 지나간 유럽에서 부유층의 소비 성향을 보여줍니다. 부자들이라고 전염병이 빗겨 지나갔을 리는 없겠지요. 당시 귀족들의 마음을 한번 꿈꿔보세요. 농노들을 통제하며 안락한 생활을 누리던 어느날, 순식간에 이웃과 가족들이 검게 죽어나가는 심정을요. 속세에서의 부와 권력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구나! 회의감이 밀려왔을 겁니다. 이에 부유층은 기억을 지불해 꿈을 구매하기 시작했어요. 높은 신분이 스스로를 보호해주리란 기억으로 쌓아올린 부와 명예가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데 아낌없이 투입되었습니다. 귀족들의 자본을 바탕으로 종교예술은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고, 새로운 기억을 100여 년 축적된 후로는 인류사에 길이 남을 걸작 종교물들이 연이어 탄생합니다. 줄지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아래 두 작품이 대표적이죠.
이 시기를 일컫는 말이 바로 르네상스입니다. 인류가 가장 눈부신 예술을 빚어낸 시대가 최악의 대재앙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무척 역설적이지 않나요?
약 600년이 지나 20세기 초, ‘흑사병 이래 최악의 전염병'이라 불리는 스페인 독감이 발발합니다. 마치 스페인이 발원지라는 듯한 작명이지만, 반대로 스페인은 이 바이러스를 격퇴하는 데 제일 큰 공로를 세운 나라예요. 제한된 언론 환경에서 다른 나라들은 전염병 소식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는데, 스페인 언론들은 위기 경보를 지속적으로 내보냈거든요. 스페인에서만 들려오는 질병이라는 이유로 스페인 독감이라는 별명이 생겼는데, 사실 최초의 확진 보고는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답니다.
이 바이러스의 위력은 상상을 아득히 넘어설 정도라서, 전 인류의 3명 중 1명은 독감을 앓았다고 해요. 당시 총 인구는 17억 명이었는데 확진자는 5억 명, 사망자는 최소 1500만 명에서 최대 1억 명으로 추정할 정도입니다. 오차범위가 큰 이유는 과학적인 검진이 미비했던 현실도 있거니와, 1차대전과 시기가 겹치면서 부상과 질병 중 정확한 사망 원인을 골라내지 못했기 때문이죠.
우리에게는 스페인 독감이란 단어도 생소하지만, 전세계를 휩쓸었던 만큼 우리나라에도 커다란 재난을 몰고 왔습니다. 조선총독부의 통계를 보자면 당시 1700만 명이었던 조선인 중 44%에 해당하는 742만 명이 감염되었고 14만 명이 사망했다고 해요. 이토록 대단했던 재앙은 6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르네상스를 불러왔을까요? 다음 그림을 보시죠.
자본가, 언론 출판업자, 성직자와 군국주의자를 탐욕스럽게 묘사하는 게오르그 그로스의 <사회의 기둥>입니다. 일반적인 풍자화처럼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나 행위를 표현하기보다는 대상의 정체성 자체를 공격하고 있죠. 관용구로 쓰이는 ‘머리에 똥만 들었다’는 모습을 실제로 그려놓고 있으니까요. 스페인 독감 직후에 발생한 다다이즘이란 예술 사조는 이렇듯 인류가 쌓아온 문명사회의 모든 질서를 비판하고 조롱합니다. 변기통을 <샘>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해 유명한 마그리트 역시 다다이즘의 대표주자죠. 기존의 방식으로만 예술을 바라보는 관습을 풍자한 작품입니다.
1920년대 예술계를 왕성하게 장악했지만 다다이즘은 15년 남짓 유행한 뒤 빠르게 밀려났습니다. 200년 이상 지속하며 인류 문명의 황금기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르네상스와는 정반대의 결말을 맞았죠. 심지어 다다이즘은 현실을 비판하는 정도를 넘어서 무시하는 풍조로 이어진 결과, 2차대전의 사상적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까지 듣기도 합니다.
갈림길을 결정지은 원인은 재앙을 맞닥뜨린 인류가 ‘무엇을 꿈꾸었는지’ 그리고 ‘어떤 기억을 남겼는지’에 있었을 겁니다. 흑사병을 두려워했던 인류는 신실한 마음이 구원으로 응답받았던 기억을 소환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예술을 꿈꾸며 나아갔습니다. 반면 스페인 독감을 통과한 인류는 더이상 신앙의 힘, 예술의 힘을 꿈꾸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600년 사이에 새로운 꿈을 만들어갈 새로운 기억을 남겼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질병과 예술의 영역을 벗어나서 보더라도,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두 번의 대재앙을 지나왔으니까요. 과연 우리는 최근의 전염병에서 어떤 기억을 남겼을까요? 모두가 한 번 꿈꿔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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