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여러분을 위해 노동시간을 늘려드립니다"

미션3🚩노동개악을 막아라

2023.03.27 | 조회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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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100

한국 사회, 100가지만 바뀌어도 살 맛 날 걸요?🥳 지금 필요한 100가지 제도 변화를 이야기하는 미션100레터. 매주 월요일, 무겁고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어 전해드려요.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안으로 소란스러운 요즘입니다. 정부는 ‘MZ세대가 원하는 개혁이라며 청년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포장했는데요. 포장지를 뜯자 69시간제라는 폭탄이 들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어요. 심지어 69시간제라는 프레이밍에도 함정이 있었답니다. 일주일은 7일인데 6일을 기준으로 한 주 노동시간을 계산해 이름을 붙였거든요. 정부가 내놓은 폭탄의 실체는 현재의 주 52시간제(기본40+연장12)에서 연장근로시간을 40.5시간까지 늘려 80.5시간제로 가자는 것입니다.

 

 

‘주 80.5시간제’ 맞으면서 왜 아닌 척해요? 찔리는 거 있어요?

사실상 주 80.5시간제를 허용하는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고용노동부는 비현실적 가정에 기초한 극단적 주장이라며 발끈했어요. 연장근로를 40.5시간이나 실시할 기업이 있을 거라고 가정하는 건 비상식적이라면서 보도자료를 냈죠. 그런데요, 정부의 말대로 연장근로를 40.5시간이나 시킬 일이 없다면 근로시간 규제를 그렇게 완화해줄 필요도 없지 않나요? 정부가 주 80.5시간 근무를 비현실적, 비상식적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추진하는 꼴이 되어버렸네요.

80.5시간제를 허용해도 그렇게까지 하는 기업은 없을 거라는 정부의 안일함,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시민들은 “사람이 설마 사람을 죽이겠냐며 살인죄 없어도 괜찮다는 주장”이라고 비판했어요. 2016년 넷마블의 자회사에 다니던 한 노동자가 1주일에 89시간을 일하다 과로사한 일이 있었는데요, 실제로 사람이 죽는 걸 보고도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한다면 그건 안일함이 아니라 기만일 거예요.

 

 

‘글로벌 스탠다드’라면서요. 해외 반응은 그렇지 않은데요?

국민의힘 의원들과 고용노동부는 개편안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해외 주요국에서는 한국 정부의 이런 움직임을 비판적으로 소개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어. 호주 ABC방송은한국에는 ‘Kwarosa’라는 게 있다며 국제적 평균보다 훨씬 높은 한국의 근로시간을 소개했어요. 장시간 일하는 문화가 사람들의 건강을 망치고, 업무의 성과마저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덧붙였고요. 미국의 CNN근로자의 정신건강과 높은 생산성을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지만, 한 국가는 이 추세를 놓치고 있다며 한국을 저격했습니다.

CNN이 한국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을 보도한 화면. “Are South Koreans working themselves to death?(한국인들은 죽을 때까지 일한다?)”가 영상 제목이다. 출처:CNN 홈페이지
CNN이 한국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을 보도한 화면. “Are South Koreans working themselves to death?(한국인들은 죽을 때까지 일한다?)”가 영상 제목이다. 출처:CNN 홈페이지

 

정부가 주 80.5시간의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주당 12시간으로 제한되는 연장노동시간의 관리 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등으로 유연화하는 건데요, 주요국 대부분이 1일 또는 1주 단위로 연장노동시간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아요.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이 국회입법조사처에 질의해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미국, 영국, 일본, 독일, 중국, 프랑스 등 해외 주요국 16개국 중 13개국이 일단위나 주단위로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연장근로시간의 관리기간을 늘린 경우에는 1일 최대 노동시간을 정해두는 식으로 몰아치기 노동을 방지했는데요, 독일은 6개월 단위로 연장근로시간의 총량을 관리할 수 있지만 하루에 최대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10시간이에요.

 

 

휴가를 어떻게 한 달 동안 써요? 그건 알아서 해결하라고요?

정부는 바쁜 시기에 몰아서 일하는 대신 쉴 때도 몰아서 쉬자고 해. 한 달 휴가도 가능할 거라면서요. 여러분은 안식월 제도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정부가 이미 2015년부터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장기 휴가를 활성화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어요. 한달 동안 자리를 비우는 동안 일을 대신할 사람이 없다보니, 제도가 있어도 쓰지 못하는 그림의 떡으로 남았죠. 공무원도 그런 상황인데 민간 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이미 있는 연차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출처: 직장갑질119 (2022)
출처: 직장갑질119 (2022)

지금 정부안에 따르면, 몰아치기 노동은 이뤄지지만 몰아서 쉬는 건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커요. 휴가 사용에 대한 대책은 없거든. 기업의 인식을 개선하고 노사 합의에 맡기겠다는 식이에요.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은 언론과의 질의에서 요새 MZ세대는 권리의식이 뛰어나 법을 실효성 있게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결론적으로 정부는 몰아서 일하기만 제도화할테니 몰아서 쉬기는 알아서 하라는 거.

유튜브 ‘YTN 돌았저’ 채널 “요즘 애들은 달라(주 69시간 일하고 제주도 한 달 살기, 어떠신가요?)” 영상 캡처
유튜브 ‘YTN 돌았저’ 채널 “요즘 애들은 달라(주 69시간 일하고 제주도 한 달 살기, 어떠신가요?)” 영상 캡처

 

‘기본권 보장’ 외침에 ‘기본권 침해’로 응답한 정부

번아웃 와서 힘들어요☞ 번아웃의 제도화!

이정식 장관은 요새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한 달 살기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이 왜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떠나는지 모르는 것 같아. 장시간 노동, 과도한 업무, 경직된 직장내 분위기에 지쳐 번아웃이 온 사람들이 보통 온전한 휴식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한 달 살기를 떠나거든요. 종신고용이 보장되던 과거에는 한 달 살기가 불가능했지만, 이제 비정규직 노동이 활성화되면서 가능해진 측면도 있고요. 계약기간 동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몸과 마음을 소진한 뒤 회사를 떠나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고도 더 인간답지 못한 노동으로 밀어넣는 정책을 추진하겠다니요.

 

근로시간 때문에 육아가 지옥이에요☞ 불난 지옥에 기름붓기

전국의 엄마 아빠들도 이번 노동개혁안을 보고 뒷목을 잡았어요. 오랫동안 호소하고 요구해온 내용과 정반대로 가는 정책이거든요. 맞벌이 부부의 육아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정말 시급하게 풀어야 할 문제 중 하나잖아요.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를 보면 혼이 나간 상태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워킹맘·대디들이게 정상이냐묻는 글들이 자주 올라와요. 댓글을 보면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하고요. 그러다 결국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경력단절을 맞게되는 상황으로 가게된대.

이런 문제 때문에 일·가정 양립이라는 가치 실현과 근로시간 단축이 중요한 제도적 과제로 강조되어 왔죠. 근로 시간을 늘려 아이 키울 시간을 더 빼앗는 정부안을 보면, 일 하면서 아이도 잘 키울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부모들은 일을 몰아서 하게되더라도 육아는 몰아서 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시간 맞춰서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입혀서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데 계속 회사에 있으면 그 일은 누가하냐는 거예요. 양육자에게는 노동시간의 예측가능성이 중요한데, 맞벌이 부부 중 한사람이라도 갑자기 크런치 모드(마감을 앞두고 수면, 영양 섭취, 위생, 기타 사회활동 등을 희생하며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것)’로 돌입하면 가족의 일상이 무너지게 될 거예요.

 

 

‘비인간적 노동의 보편화’를 막아라

정부는 입법예고 기간이기 때문에 노동개혁안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거치겠다고 이야기했어요. 국민들의 반발이 크자, 최근에는 80.5시간제에서 연장근로 시간을 조금 줄일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보였고요. 그런데 정부안은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수정보다는 폐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으면서 일할 수 있도록 최저기준을 정한 근로기준법에서 1주의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정하고 있잖아. 그런데 노동자 대부분이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켜지지 않는 이 최저기준을 지키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하는데 완전히 정반대로 가고 있어요.

데이터 출처: 
데이터 출처:  "장시간 노동현실과 근로시간 감축의 해법"(최재혁.2017.월간복지동향)

 

40시간은 최저기준이기 때문에 이를 보장받지 못하는 일은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만 허용되어야 해요. 정부의 주장대로 제품 출시 등을 앞두고 일을 많이 해야하는 기간이 필요한 건 맞죠. 그런데 법으로 이미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있고, 특별연장근로 허용을 거치거나 탄력근로제를 시행한다면 12시간 이상의 근무도 가능해요. 현재 상황에서 주 52시간 이상 노동이 더 쉽게 이뤄지도록 해선 안 됩니다. 그건 비인간적인 노동을 보편화하는 결과를 낳을 거예요.

 

 

주 52시간 이상 일을 못하게 해서 생계가 어렵다?

지금보다 연장근로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 중 하나가 서민들의 생계에 지장이 간다는 거예요. 문재인 정부가 연장근로를 1주일에 12시간으로 제한하는 바람에 연장수당을 더 받지 못해서 소득이 적어졌다고요.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저기준인 주 40시간을 넘어 12시간의 연장근로까지 했는데도 생계에 어려움이 있다면, 그건 우리사회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저임금 문제는 뒤로하고 저소득자를 위해 근로시간 선택권을 늘려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청년이 대학생 커뮤니티(에브리타임)에 올린 글 캡처
한 청년이 대학생 커뮤니티(에브리타임)에 올린 글 캡처

 

얼마전 40대 젊은 나이의 보안 업체 노동자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일이 었었는데요, 고인은 쓰러지기 전에 4일 동안 62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어. 유족들은 당연히 과로사를 주장하고 있고요. 정부의 개혁안이 만약 그대로 실현된다면 이런 일이 더 많이 일어날 거예요. 정부의 주 80.5시간제가 조속히 폐기되고,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쪽으로 개혁의 방향이 틀어지길 바랍니다.

 

 


[참고 문헌]
경향신문. 23-03-09. "주 69시간이 ‘글로벌 스탠더드’?…해외 16개국과 비교해 보니".

경향신문. 23-03-14. "‘주 38시간’ 호주 언론이 주목한 ‘주 69시간제’…‘kwarosa’도 소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3. "최대 노동시간이 주 90.5시간?…근로시간 개편방안의 왜곡된 주장". 고용노동부.

오마이뉴스. 23-03-20. "주69시간제는 극단적 프레임? 대통령실도 유체이탈".

최재혁. 2017. "장시간 노동현실과 근로시간 감축의 해법". 월간복지동향.

한겨레. 17-08-03. "‘크런치 모드’로 과로사한 넷마블노동자…산재 첫 인정".

한겨레. 23-03-20. "‘주69시간’ 밤 9시 퇴근…아이 밥은 야식에 몰아서 먹여요?".

한국일보. 23-03-13. "'주 69시간' 앞두고 … 62시간 연속 근무하다 사망한 40대 경비노동자".

CNN. 23-03-19. "This country wanted a 69-hour workweek. Millennials and Generation Z had other ideas".

MBC. 23-03-06. "정부 실험 이미 실패했는데‥장기휴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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