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본격적인 학교 생활이 시작될 시기이죠. 캠퍼스에는 꽃이 만연하고, 학생들은 각종 팀플레이와 중간고사 준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학교는 4년 만에 찾아온 노마스크 수업과 완전한 대면 강의에 생기가 넘쳐나는 듯해요. 그러나 캠퍼스에는 이와 정반대로 고단한 학교생활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바로 대학 내 가장 약자로 불리는 강사와 대학원생들인데요. 이들은 매달을 수업 준비와 연구 등으로 학교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열악한 환경과 불확실한 미래로 고통을 받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 이러한 강사와 대학원생들을 캠퍼스 밖으로 나가게 만든 사건이 생겼어요. 정부가 사립대 강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 예산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인데요. 강사와 대학원생들에게 어떠한 일이 생긴 건지 미션100이 알아봤습니다.
강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은 정부 정책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정부에 의해 전액 삭감된 사립대 “강사 처우 개선비”. 강사 처우 개선비는 방학 중에 강사의 임금과 퇴직금을 지원해주던 금액이에요. 강사들은 처우 개선비로 22주 간의 방학 기간 중에 4주치의 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었고, 1주당 5시간 이상을 가르칠 경우 퇴직금을 지급받을 수도 있었어요. 사실은 22주 간의 방학 기간 동안 고작 4주분만 임금이 지급되고, 학교의 꼼수로 주당 4~4.5시간만 수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해 처우가 아주 미미하게 개선된거지만 이 지원비라도 일년에 1천만원이 될까 말까 하는 강의료 수입(2019년 시간당 강사료와 강의시수 평균은 6만 1300원과 4.5시간)만으로 학교 생활을 이어가는 강사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돈이었던 거죠.
다수의 강사들이 속해 있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정부의 예산삭감을 강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라며 비판했어요. 사립대가 우리나라 대학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강사 처우 개선비 지원에 사립대를 배제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거죠. 대학에서 수업 받는 학부생들과 석박사생들조차 강사들의 열악한 연구∙근로 환경을 보고 미래에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있다고 해요.
불확실한 미래, 항상 불안정에 떨어야 하는 강사들…
많은 강사들은 연구 실적과 강의 경험을 쌓아 교수가 되거나,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정부출연연구기관(정출연)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싶어합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멋있는 일이죠. 강사들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반 학사과정 보다 약 5~10년 정도를 더 공부하고, 그 후에도 강사로써 강의 경험을 쌓아요. 강사로써 강의를 하는 동안 소득이 1년에 1~2천만원 정도에 불구한데도 말이에요. 이러한 열정페이를 받고도 강사들을 계속 강단에 설 수 있게 만든 것은 교수 혹은 정출연 등에서 일할 수 있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강사들의 미래가 불확실해짐에 따라 이들이 가지고 있던 꿈이 꺾이고 있어요. 국내 대학 소멸과 공공기관 축소가 예상됨에 따라, 기존에 원했던 일자리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려워졌기 때문이에요. 대학 내에서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들이 가지고 있는 카르텔도 한몫하죠. 예를 들어 연세대에서 10년 이상을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정보라 작가는 “교수가 되는 방법은 우수한 연구 실적과 강의 경험을 쌓는 것이 아닌 ‘교수의 눈 밖에 나지 않는 것’이다.”라고 토로했어요. 정 작가는 강사 생활 동안 약 39편의 국내논문을 썼고, 해외논문을 4편 쓰는 등 연구실적이 훌륭했어요. 강의평가는 5점 만점에 4.6점에서 4.8점 사이를 유지할 정도로 높았죠. 그리고 남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소설을 쓰며 작가로써의 삶을 이어갔고요. 교수의 10분의 1 만큼의 임금을 받고, 학교에서 가입해주는 직장보험도 없이 일했지만, 채용 결정권을 가진 교수들은 정 작가의 이러한 실적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해요. 오히려 임용 공고를 알려준 교수가 “소설 쓰는 것을 그만두고 연구에나 집중하라”고 지적을 했다고 해요. 교수들의 눈에는 작가로 활동하는 것이 딴짓으로 보였고, 소설을 쓸 시간에 연구를 해서 논문 실적을 쌓고, 교수가 된 다음에나 소설을 쓰라는 의미였죠. 이후 정 작가는 해당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물론 다른 학교에서도 교수 임용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채용과정에서 정 작가보다 논문 실적이 많은 지원자는 찾아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정 작가는 학교에 문의했지만, 어떠한 기준이 부족해서 떨어진 건지 알 수 없었죠.
대학의 불합리한 구조, 석박사생들 역시 마찬가지…
대학원에 재학중인 석박사들의 환경 역시 강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도 저임금과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연구와 노동을 이어가고 있죠.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대학원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높여 대학의 유지력과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걱정이 있어요.
국내 이공계 대학 중 최고라 불리는 카이스트. 훌륭한 연구 성과를 창출해 정부와 기업의 역량을 높이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어요. 그러나 이러한 카이스트조차 대학원생들의 경제적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2022년 카이스트 대학원생의 평균 월급은 158만원이라고 해요. 이를 평균 시급으로 계산하면 7644원으로 2022년 최저시급보다 1500원이나 부족하죠. 국내 최고 이공계 대학이라는 카이스트가 이런데, 다른 대학의 상황들은 불 보듯 뻔합니다. 대학원생들은 최저시급도 안되는 수입에 더해 학비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또래들보다 최소 2년에서 최대 10년까지 소득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마이너스인 경우도 있죠.
경제적인 문제 이외에도 대학 내 최하위 서열이라고 불리는 대학원생이 일하고 있는 환경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국내 대학 구조가 그저 어떤 교수의 제자다, 어떤 교수와 친하다 등이 최대의 장점이기 때문이죠. 지도교수가 석박사생들의 졸업가능여부와 진로결정에 매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석박사생들은 교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몇 년 전 익명의 대학원생이 교수와의 문자 내용을 커뮤니티에 올려 화제가 되었죠. 해당 문자 내용은 대학원생들의 힘들고 불합리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힘들게 박사학위를 따고 나서도 몇 년 간은 강사로 일하며 고생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을 도대체 누가 하려고 할까요?
오랜 투쟁 끝에 얻는 작은 성과인 강사법,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강사나 대학원생들 그리고,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 결과 2019년에 작지만 소중한 성과인 강사법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2019년에 바뀐 강사법은 매우 부족하지만 그래도 강사노조와 대학원생노조가 함께 싸워 얻어낸 소중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죠. 2019년 바뀐 강사법에는 대학은 강사를 반드시 공채로 선발해야 하며, 채용된 강사를 1년 이상 의무적으로 임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 또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3년 동안의 재임용도 보장해야 하죠. 특히 강사들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던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미지급 문제가 아주 약간이라도 반영됐죠.
그러나 앞에서 얘기했듯이 강사법은 너무나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더욱이 강사들은 대학의 꼼수와 정부의 노력 부족으로 인해 강사법 개선의 효과를 크게 누리지 못했다고 해요. 총 22주의 방학기간 중 고작 4주치만 급여가 지급되고, 퇴직금을 받는 조건도 미흡했기 때문이에요. 강사들은 방학기간 중에도 시험 성적의 채점이나 다음 학기 강의 준비 등의 행정업무를 해요. 그리고 남는 시간을 쪼개 연구까지 해야 하는데, 이 모든 시간 중 4주만을 노동으로 인정해주는 것은 불합리하죠. 또한 퇴직금을 받기 위해서는 주당 5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대학이 이러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 강사들을 4~4.5시간만 고용하거나 한 강의 당 수강정원을 늘려 과목수를 줄이곤 했어요. 심지어 강사 대신 다른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초빙교수로 고용해 강사들의 강의를 대신했습니다.
대학으로부터 피해를 본 건 대학원생도 마찬가지였어요. 강사법이 개정되자 대학이 제일 먼저 해고한 강사들은 대학원생(대부분이 박사 과정을 수료한 대학원생) 강사들이었기 때문이에요. 대학의 이러한 조치는 특히 인문계 대학원생에게 치명적이었죠. 수료 이후부터 약간의 수입원과 강의 경험을 쌓아 강사 또는 교수를 희망하는 대학원생들이 많았거든요. 대학원생노조는 해고된 강사들의 생계 보전을 위해 박사 학위가 없는 사람도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싸웠죠.
정부도 빠지지 않았죠. 강사법 시행 이후 3년이 지난 2023년 정부는 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시켰고 앞에서 본 것 처럼 관련 예산을 모두 삭감하는 잔인한(?) 결정도 서슴치 않았죠.
강사와 대학원생은 정부의 이러한 조치에 맞서 강사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어요. 강사들은 ▲방학중 임금 현실화 ▲직장건강보험, 퇴직금 전면 지급 ▲겸임∙초빙교원 활용 비율 확대 철회 등이 이루어져 대학의 강사제도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해요.
강사와 대학원생의 지금을 지키는 일, 우리나라의 미래를 지키는 일
“아이슈타인이 의대에 진학해 레이저를 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수학과 물리학의 천재들이 모두 의대로 간다면 국가와 사회에 엄청난 손실입니다.” 우리 사회의 병목현상을 걱정하는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빗대어 했던 말이에요. 이번 년도 수능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위해 연세대 반도체학과에 합격하고도 등록하지 않아 신입생이 0명이라는 보도가 있었죠. 전문가들의 말은 현실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국내 인재들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가진 흥미를 잃은 채, 의대로 진입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어요. 대학원은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해야 하는 데다가 환경도 열악하고 수입까지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힘든 박사과정과 강사 생활을 끝내고 연구원에 취직을 하더라도 10년을 넘게 일해야 그나마 의사와 연봉이 비슷해질 수 있다고 해요. 대학원생과 강사가 오히려 더 많은 기간을 공부에 쏟아야 하는데도 말이에요. 기술이 고도화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대학원생과 강사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가 지속된다면, 아무도 석박사를 졸업하고, 강사를 하지 않으려고 할거에요.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강사와 대학원생들의 기본적인 권리는 지켜져야만 해요. 교수와 같은 혹은 더 심한 강도로 일하는 강사도 있는데, 교수의 10분의 1만큼의 급여를 받는다는 것은 평등하게 일할 권리에 어긋나요. 방학 중에도 계절학기와 수업 준비 등으로 일하는 강사가 있는데, 22주 중 4주만 혹은 전혀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퇴직금은 꿈도 꾸지 못하죠. 이에 더해 지난 몇 년간 정부는 사립대 강사 처우 개선비를 전액 삭감함으로써 강사와 대학원생의 평등하게 일할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해 왔어요. 지금이라도 국가가 나서서 강사와 대학원생의 처우 개선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