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늘어지고 싶은 일요일에 메일함을 열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동안 아껴뒀던 일본 라이프 이야기들을 나누기에 언제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같이 차 한잔하며 느긋하게 이야기 하고 싶어서 일요일 아침에 찾아오게 되었어요.
구독자님께서 좋아하시는 차를 가지고 오셔서, 또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을 들으며 같이 이야기 들어주실래요?
오늘은 일본스럽지 않지만 도쿄다워서 좋아하는 거리, 오모테산도(表参道)를 같이 걸어봐요.오모테산도역에서 출발해도 되지만, 사실은 시부야랑 하라주쿠에서 출발해도 괜찮아요. 다 도보 20분내 거리거든요. 걸으면서 주변 가게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하답니다.
오모테산도, 길 잃고 헤맬 수록 더 재밌는 거리
오모테산도는 사실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는 거리였어요. 유명하다는 명품브랜드는 다 모인 거리라 좀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런데 내노라하는 외국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일본 1호점으로 오모테산도를 선택하는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오모테산도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죠.
오모테산도는 메이지신궁 앞(오모테)을 오가는 참배객들로 만들어진 산도(参道)예요. 지금 오모테산도 주변은 세련된 거리지만 사실 옛날에는 닌자들이 사는 좁은 길이 구비구비 이어진 시골 마을이였답니다. 적으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해 이런 좁은 길이 있는 마을을 선택했다고 해요. 하라주쿠 타케시타 거리나 시부야 캣스트리트를 가보면 좁은 길이 길게 이어있는데, 이런 배경이 있다니 재밌지 않나요?😙
제가 이 주변 일대를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 일본스럽지 않지만 “도쿄다워서”예요. 추상적으로 들리실 것 같아요. 처음 이 거리를 걷게 되었을때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뭔가 일본같지 않다. 근데 좋다. ’
오모테산도, 이국스러운 감성이 있는 거리
앞서 이 일대는 닌자들이 사는 시골 마을이였다고 했죠? 그런 오모테산도가 지금의 세련된 모습을 가지게 된데에는 시간적 흐름과 과정이 있더군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요요기공원은 미군의 주둔지가 되었고 그 일대는 미군과 가족이 거주하는 마을, 워싱턴하이츠(ワシントンハイツ)가 만들어졌어요.
미국인 마을이 만들어지자 자연스럽게 이 일대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잡화점, 옷가게 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이국적인 해외 문화가 이 거리에 담기기 시작된 것이죠. 우리가 스트리트 패션으로 알고 있는 하라주쿠 패션도 당시엔 미국적인, 세련된 패션으로 유행했을 거예요.
오모테산도, 디자인 된 거리
오모테산도 일대는 철저히 디자인된 공간이예요. 느티나무 가로수길 경관에 해치는 상업시설은 들어올 수 없도록 도시가 계획되었어요.
너무나도 유명한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오모테산도힐즈를 설계할 때에도 이 거리의 얼굴인 느티나무와 조화롭게 하기 위해 빌딩의 높이를 나무보다 낮게 설정했다는 일화도 유명하지요.
덕분에 이 일대는 깊은 생각과 컨셉을 다듬은 끝에 완성된 건축물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어요. 건축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유투브에서 오모테산도의 현대건축물과 관련된 컨텐츠를 찾아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아오야마
30대가 되고 체력이 약해지다 보니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으면 쉽게 피곤하고 지친다는....🤣 오모테산도의 핫플레이스 가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지만 체력이 점점 안따라주는 관계로 조용한 곳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아오야마 거리로 이동할게요.
아오야마 거리, 특히 남쪽 미나미아오야마 거리는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거리예요. 일본어로 오토나노 마치(大人の街) 라고 많이들 표현하죠. 세련되었지만 북적거리지 않는, 상점과 카페들을 만나 볼 수 있어요.
그 중에서도 추천 하고 싶은 곳은, 네즈 미술관 (根津美術館) 이예요.
사업가 네즈 카이치로씨가 소장품을 전시하기 위해 만든 사립미술관인데 녹음으로 가득한 일본 정원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곳이랍니다.
미술관 분위기와 어울리는 네즈카페에서 티타임도 좋아요. 조명없이 햇살이 비추는 카페에서 자연과 하나되는 시간을 가져요.
그 다음에는 써니 힐즈 (サニーヒルズ南青山) 로 가볼까요.
네즈미술관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해요. 이곳에서는 대만의 파인애플 케이크, 펑리수를 맛볼 수 있답니다.
무엇보다도 이곳도 유명한 건축가, 구마 켄고씨의 모던한 목조 건축물을 감상하고 고도로 설계된 건축물에서 자연의 햇살을 받으며 휴식의 시간을 보낼 수가 있어요.
근데 카페인 줄 알고 가면 경기도 오산!😅 1층에서 파인애플 케이크나 애플 케이크 등을 구매하면 ‘멀리서 오신 고객들을 위해 작은 대접을 하겠다며’ 2층에서 무료로 케이크와 그와 어울리는 차를 대접해줘요.
먹어보고 싶은 케이크를 골라 시식할 수 있답니다. 대접인 만큼 충분히 천천히 즐길 수 있도록 시간 안배를 해주기때문에 '얼른 먹고 나가야지' 하고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답니다.
골목골목마다 만나는 매력적인 상점들, 캣 스트리트
좀 쉬었겠다 이제 좀 걸으러 가볼까요? 다시 오모테산도로 돌아가 캣 스트리트를 구경하러 가요. 아기자기한 편집샵이 많아 눈요기에 좋답니다. 이 골목에는 뭐가 있나 구석구석 돌아봐요. 화려하진 않아도 각자 매력을 뽐내는 상점들을 만나는게 즐거워요.
즐겁게 길을 해매다가 만나는 다육 식물 가게. 가게라고 하기엔 너무 작아서 귀엽네요. 무인으로 운영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면 자유롭게 사가면 되나봐요. 뭔가 싱그러운 마음이 듭니다.
하얀 외관이 인상적인 여기는 카라멜 전문점인가요? 계획없이 몸이 이끄는 대로 상점에 들어가봅니다.
카라멜 마다 고유 번호가 붙어 있네요. 1번 바닐라맛, 2번 소금맛, 3번 시나몬&차맛, 4번 초콜릿맛, 5번 라즈베리맛, 6번 오렌지 필 맛, 7번 아몬드맛……… (12번까지 있어요)
저는 2번 소금 카라멜맛을 골라볼래요. 구독자님은 무슨 맛으로 하시겠어요? 오늘은 기분이니 제가 한턱 낼게요😁
음~ 소금 카라멜맛은 달콤짭쪼름하니 맛있네요! 구독자님이 고른 맛은 어때요? 맛있으면 다음에 저도 먹어볼래요!
앗,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 오늘 도쿄 산책은 여기까지 할까요?
이렇게 같이 수다 떨며 걸으니까 재밌네요. 도보 수 보니까 이리저리 왔다갔다 한 탓에 오늘 1만6천보나 걸었네요. (슬슬 다리가 풀렸던 이유가 이것이였네요.. 하하😂)
오늘은 여기서 이만 헤어질까요? 오후 남은 시간도 좋은 하루 보내시구요~
우리 일요일에 또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