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별이 막연히 슬픈 것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 피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멀어진 것이 생각나네요. 그 친구와는 아주 친했고 매일매일 매 시간을 함께 채워갔지만 이제는 서로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주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그 이후로도 친구에게 몇 번 문자로 사과를 하고, 카톡을 보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두 번 이후로 그만두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읽음 표시가 뜨고 답장은 오지 않았어요. 다시 생각해보면 그 사과조차도 제 욕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삶에서 그 친구가 영영 죽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그 친구와는 새로운 추억을 쌓을 수 없지요. 과거에 우리가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현재를 함께할 수 없고, 미래를 계획할 수 없으며,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된 거니까요. 저는 이런 게 이별이라고 생각해요. 보고 싶어도 더는 볼 수 없는 것.
곰이가 처음 신부전 의심 소견을 받은 날, 항상 함께 산책하던 골목들을 지나 병원에 혼자 데려다 주어야 했습니다. 엄청나게 오래 입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치가 낮아질 때까지 이틀 정도 통원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으니까요.
병원에 반나절 넘게 혼자 곰이를 두고 가야 하는 날 아침, 씩씩하게 울면서 집을 나섰습니다. 말이 웃기지만 정말로 그랬어요. 엄마에게는 "다녀올게"라고 씩씩하게 말하고 엘레베이터를 타자마자 훌쩍이며 울었습니다. 가방에 안겨있던 곰이는 또 왜 우냐는 듯이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눈빛이 속상해서 또 울었습니다.
병원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버스나 택시를 타면 10분이면 갈 수 있지만, 저는 왠지 아직도 강아지나 고양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망설여집니다. 크고 작은 혐오가 팽배한 세상이라 그렇기도 하고, 나의 의지로 사랑하는 반려동물들을 전부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저는 남에게 피해를 줄 바에는 제가 좀 부지런한 게 낫다고 생각해요. 다행히도 봄 기운이 스멀스멀 찾아오는 중이라 아주 춥지는 않았습니다. 소매 끝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축축하게 젖은 것만 빼면 꽤 괜찮은 아침 산책이었어요.
병원에서는 운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아마 티가 많이 났을 거지만요) 곰이를 내려놓자마자 "이따 올게"라고 말한 뒤에 홱 자리를 떴습니다. 그러고 병원을 나서서 빈 가방을 둘러메고 걷는데,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묵직했던 가방이 가벼워져서 그렇게 느껴진 걸까요? 소매로 가려지지 않는 발목이며 손등 같은 곳이 퍼렇게 시려오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왠지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집에는 사랑하는 고양이도, 동생도 있지만 나만 보면 맹목적으로 코를 킁킁거리며 낑낑 우는 강아지가 없으니까요. 벌써부터 곰이의 부재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날은요.
그래서 무작정 근처의 대형 마트를 가서 이것저것 장을 보았습니다. 이제 곰이는 간식을 먹을 수 없으니, 강아지 간식 코너를 서성이며 보기만 하다가 자리를 뜨기도 했습니다. 자고 있는 동생에게 괜시리 전화를 걸어 뭘 하냐고 먹고 싶은 건 없냐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그렇게 큰 마트를 돌고 돌다가 평양 냉면을 만들어 먹을 육수 몇 개랑, 작은 닭 두 개를 사서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시간을 보니 막 정오를 넘긴 때였어요.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맨발로 신발을 구겨 신는 제게 엄마가 따듯하게 입고 가라며 잔소리를 했습니다. 아직은 공기가 차가우니까, 양말이나 모자를 잘 챙겨야 된다면서요. 혼자 내내 걷는 동안은 몰랐는데, 집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를 타니 그제야 뻘겋게 된 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울을 보니 발목보다는 얼굴이 더 빨개서 조금 웃기기도 했고요.
장 본 걸 정리하면서 내내 고요한 집안이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항상 코를 킁킁거리며 비닐에 머리를 박고 낑낑거리는 강아지가 없다는 게 이상했어요. 고작 3.5키로의 작고 따듯한 털 덩어리가 이 공간에 잠깐 없을 뿐인데 말이죠. 아직은 기우지만 그래도 이렇게 곰이가 사라진 공간에 천천히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제 이야기만 주절주절 떠든 것 같아요. 곰이는 요즘 컨디션이 조금씩 오락가락 하긴 하지만, 대부분 천천히 일상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제는 쉬는 저를 새벽같이 깨워서 산책을 다녀오자며 보채기에 아침 산책을 나갔어요. 밥도 두 번이나 자기 의지로 잘 먹었습니다. 가끔 트럭이나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서 의아해하는 시간도 보내고 있고요.
그러니 우리 이별에 대한 걱정을 너무 사서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별의 때가 정말로 코앞에 찾아오면, 그때 온힘 다해 슬퍼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순간 마음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조금씩 넘어서면서 일상을 살아야지요. 그리고 종종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도 드리도록 노력할게요.
여러분도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또 봐요.
추신.
작은 응원을 보내주신 구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위해 봄날의 아이스티 한 잔을 사 먹었답니다.
건강하세요.
행복하시고요.
DD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25년 5월 9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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