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을 보내지 않는 사이에 계절이 수십 번은 바뀐 것 같았습니다. 어떤 날은 답지 않게 춥고, 어떤 날은 덥고요.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고,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가 쨍쩅하기도 했네요.
저는 그 사이에 두 번 수박을 먹었습니다. 여름 하면 수박이라는 생각이 들어 몇 번 주문하려고 시도해봤는데, 수박 값이 장난 아니게 비싸더라고요. 평소에는 많이 사 먹지 않으니까 몰랐을 수도 있지만요. 그래서 7월 중순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딱 두 번 먹었습니다. 쉴 새 없이 냉장고에 친구들의 사랑으로, 엄마의 정성으로 수박이 쌓이던 작년 여름 자취방에서는 수박이 비싼지 어떤지 알 수도 없었는데. 오히려 집으로 돌아오고 나니 괜히 좋아하지도 않던 수박에 욕심이 납니다. 두 번의 수박은 아주 맛있었습니다.
곰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예쁘지 않은 순간이라도 사진에 좀 더 오래 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수박을 야금야금 먹다가 평소처럼 자기도 하나 달라고 보채는 곰이 표정을 찍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몇 번의 계절을 더 함께할 수 있을까. 희망적이지 않은 생각은 하고 싶지 않은데. 가끔 나른하게 몸을 기대고 따끈따끈한 온기를 공유하고 있다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몸을 슬쩍 기댄 채로 나를 침대 구석으로 몰아넣던 이 온기가 사라지면 어떨까. 침대에서 다리를 쭉 뻗고 자서, 더블 매트리스에서도 자꾸 좁다고 투정부리게 만들던 네가. 내 심장에 가장 가까운 곁에서 머리를 대고 잠을 자던 곰이가 사라진다면 괜찮을 수 있을지.
요즘은 머리만 대면 기절하는 날이 더 많지만, 가끔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룰 때면 곰이의 발, 머리, 귀, 코를 슬쩍슬쩍 만져봅니다. 숨은 잘 쉬고 있는지, 정말 자고 있는 게 맞는지 자꾸만 확인하게 됩니다. 곰이가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면서 낑! 하고 몸을 뒤척여야만. 그제서야 정말 잠들었던 거구나 하고 저도 다시 잠을 청합니다.
글쎄요. 아무래도 우리가 헤어지는 날이 온다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흐르겠죠. 이렇게 덤덤하게 말하는 것 치고 많이 울고 많이 슬프고, 뭐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할지도 모르고요. 그래도 곰이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날에 엄마와 함께 약속했습니다. 이전에 못했던 걸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 남은 삶을 더 행복하고 평온하게 만들어주자고요. 그래요. 우리 삶도 그렇듯이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고, 때로 남은 미래가 전부 행복하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는 다음 여름에도 수박을 먹으려고요. 아직 여름이 다 지나지 않았으니 남은 여름에도 한 번 정도는 더 먹을 수 있겠죠. 요새는 감자도 맛있습니다. 오늘 뭘 먹으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면 감자를 사다가 살짝 벗겨서 팔팔 삶아서 먹어보세요. 해결할 수 없는 힘든 일이 있더라도 이렇게 일상을 보내면 됩니다. 다음 여름에, 올 여름에, 그리고 가을- 겨울에 무슨 일을 하고 뭘 먹으며 하루를 보낼까. 고민하면서요. 저랑 곰이는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DD
지루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25년 7월 18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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