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늙은 강아지를 소개합니다.

삶의 가장 큰 행복은 우리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 빅토르 휘고(Victor Hugo)

2025.04.22 | 조회 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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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강아지 '곰이'를 소개합니다. 
우리의 강아지 '곰이'를 소개합니다. 

 처음 만난 것이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벌써 십사 년 전의 일이라 그럴 수도 있고, 만남이 너무 갑작스러워 그랬을수도 있고요. 당시에는 강아지를 키우는 집이 아주 많았습니다. 주변에 한 마리, 두 마리씩은 꼭 키우고 있었고 큰이모 댁에서도 성격이아주 나쁘지만 예쁘게 생긴 말티즈 한 마리, 검은 푸들 한 마리를키우고 있었어요. 그리고 아주 순한 검은 푸들이 우연히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까지가 제 기억입니다. 그 중에 한 마리를 우리가 키울까? 하는 이야기를 엄마가 했지만, 정말로 키우겠어 싶어 대충 대답했었는데. 어쩌다보니 하얀 푸들을 데리고 와 기르게 되었습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하얀 녀석이 제일 커다랗고 못생겼다고 생각했었는데요. 막상 오니까 못생겼다는 말은 할 수가 없더군요. 바들바들 떨면서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참 이상했어요. 검은 푸들 두 마리 사이에서 나온 하나뿐인 하얀 푸들. 유난히 덩치가 크고 멍하게 생긴 녀석. 그리 예뻐보이지도 않았어요. 그간 강아지를 길러본 적이 없었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지식도 전무한 상태였고요. 첫 만남 이전에 저는 그냥 '새로운 가족을 만날 기대감'에 잔뜩 부푼 13살 짜리 여자애였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우리는 기대감에 부풀어 작고 연약한 강아지를 계속해서 들여다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밥을 잘 먹나, 물은 잘 마시나, 걱정이 되는 날도 있었지만 강아지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갔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 "곰아"라고 부르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다가오는 기특한 녀석이 되었습니다. 

 이름은 백곰이 되었어요. 하얀 곰 같아서 백곰. 빼꼼이라고 발음하지만, 곰이라고 더 자주 부르는 그런 이름. 곰아, 하고 부르면 자고 있다가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 총총총 걸어오던 그 장면이. 자기 이름을 기억하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속에 남아 있습니다. 

 참 건강하게 컸어요. 솔직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강아지에 대한 제대로된 공부조차 안 된 상태였는데, 곰이는 그런 걱정을 왜 하냐는 듯 건강하게 자라 주었습니다. 단 한순간도 아파서 골머리 썩힌 적이 없었어요. 종종 쓰레기를 뜯어먹거나, 깜빡하고 두고 간 간식을 모조리 뜯어먹어 한번에 토하거나, 남긴 피자 판을 마구잡이로 파헤쳐 먹은 적은 있어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게워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잘 먹었어요. 걱정되어 몇 번이고 병원에 데려갔지만 이미 토해냈으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지켜봐달라는 말만 돌아왔고요. 

 가끔은 곰이의 정해진 수명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문득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빠르게 뛰는 곰이 심장 옆에 귀를 가져다대고, 괜찮느냐고 몇번 말도 걸었습니다. 너무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거 아니냐고. 그냥 언니랑 같은 속도로 뛰고, 언니랑 같은 속도로 늙어가면 안될까? 하고 말도 안 되는 걸 알면서 속삭이듯 묻기도 했고요. 그러면 곰이는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제 품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착각일수도 있겠지요. 그래도요. 

 그렇게 별 문제 없이 십 사년을 살았습니다. 열 네살, 인간 나이로는 여든이 넘은 노인 강아지. 장난처럼 할아버지 오래 사세요, 하고 이야기했지만 어떤 계절이 되든 곰이와의 이별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고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 영영 오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영원히 오지 않기를. 

 그런데 최근 곰이의 이상 증세로 들린 병원에서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간단하게 말해 신장의 기능이 퇴화되는 만성 신부전증이 온 상태라고 하더군요. 원장 선생님은 속상하시겠지만, 앞으로 점점 더 안 좋아질 거라고 얘기해주셨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함께 병원 진료 결과를 듣던 엄마와 저는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그 사이에 0.1키로 빠져버린 강아지를 덜렁 안아들고 울면서 진료실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곰이와 함께했던 십 사년의 세월들이 지나갔습니다. 더 잘해줄걸, 한 번이라도 더 나가서 같이 풀 냄새를 맡고 뒹굴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줄걸. 하는 생각에 자꾸 눈물만 흘렀습니다. 차라리 내가 죽는대도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하나 다 적다 보면 우느라고 이 글을 마치지 못할 것 같아서 이만 하는 게 좋을 것 같고요. 

 많이 울면서 생각해봤어요. 내가 뭘 하는 게 좋을까. 노가다를 뛰고 돈을 버는 것 말고. 옆에 있어주는 당연하고도 일상적인 것 말고. 뭘 해줘야 좋을까. 당장 맛있는 간식을 사다 바친다고 해도 작고 약해진 곰이는 이제 먹어서는 안 되는데.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고, 맛있는 건 더더욱 못 먹는 아이가 되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나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별을 준비해서, 천천히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실 이 글을 마무리하기가 아주 괴로웠습니다. 밤이면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서 몸을 단데기처럼 웅크린 채로 울다가, 일어나서 몇 줄 적고 또 울다가. 그럼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 다시 울면서 곰이를 끌어안기도 하고. 그런 날이 며칠 반복됐어요. 저는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이 메일은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원래 이렇게 천천히 인정하고 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제가 선택한 거니까요. 

 다음 메일부터는 곰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으려고 합니다. 또 많이 울겠지요. 누구는 유난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고요. 그래도 괜찮아요. 어디 평생을 함께한 가족과 헤어지는 일이 쉬운 일이던가요. 너그러이 기다려주세요. 

 그때까지 건강하시고요. 

 또 만나요. 


DD

봄 기운이 완연한 4월 25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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