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그 유한함에 대하여]_박건
한 해 동안의 주목할 만한 뉴스들을 사진과 함께 모아둔 ‘보도연감’의 1979년호 한 꼭지에 실린 내용이다. ‘영원히’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는 캡션의 주인공은 ‘옛 부산세관 본부청사’ 건물로 건물의 마지막을 고하는 내용은 담담하다 못해 감정이 없는 사람의 말처럼 보인다.
부산 세관은 조선 말 관세 징수를 위해 설치된 부산해관의 후신으로, 대한제국 시기 부산 세관으로 개칭되었다. 부산항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항구로 조선에 일본의 영향력이 증대되면서 매우 주목받았다. 1905년, 경부선 철도의 부설에 즈음하여 시·종착역인 부산역이 준공되었다.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부관연락선과 함께 일본과 조선의 교통을 연결하였다. 물동량과 이용객이 급증했고, 도시는 격변한다. 이에 따라 세관 건물도 신축되었다. 건물은 1911년 부산역 남쪽, 관부연락선 터미널 인근에 지어졌다. 지상 2층 규모의 약 334평 건물로, 설계는 도쿄대 건축과 출신의 ‘이와타 사츠키마로(岩田五月滿)’가 맡았다. 러시아에서 벽돌을 전량 수입해 와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화강석을 고루 배치하여 화려하게 구성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었다. 벽돌을 쌓아 올려 지어진 벽돌조 건축물이지만 건물의 위치가 바다를 매립한 매축지였던 탓에 철근 콘크리트로 지반을 다졌다. 국내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기초공법이 적용된 부산세관 청사는 건축적 우수성과 함께 반세기 넘게 부산항의 발전과 함께해 왔다는 가치가 인정되어 1973년 부산시 지방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부산 세관은 부산역(1910), 부산우편국(1910)과 함께 부산에서 가장 화려한 3대 건축물로 불렸다. 부산역과 그 일대가 1953년 대화재로 완전히 불 타 없어질 때도 부산 세관은 기적적으로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당시 부산 세관의 창고에 미군사령부 소유의 화약이 대량으로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화재로부터 방어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970년 지금의 세관 청사가 신축되면서 업무를 이관할 때까지 60년을 현역으로 기능했던 그야말로 살아있는 역사의 증언자였다.
건물은 부산항 개항 100주년을 기념해 영도로 넘어가는 부산대교를 신설하면서 세관 삼거리에서 부산대교로 이어지는 도로 확장을 위해 철거되었다. 개항 100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시점에 보존보다 발전을 택한 것이다. 청사의 철거를 막기 위해 여러 시민단체에서 보존 방법을 강구하며 노력했으나 문화재의 지위마저 박탈당한 채 1979년 6월 2일 철거되었다. 이 때문에 ‘부산세관과 맞바꾼 부산대교’라는 말이 오갔다. 무엇보다도 산업화가 우선시 되었던 시대적인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부산항의 기념비 같은 부산 세관의 철거는 부산 시민들에게도 큰 아쉬움으로 남았던 것 같다. 1984년 부산세관에서는 개관 100주년을 기념하여 남겨두었던 옛 세관 첨탑과 벽돌 몇 점을 재구성해 기념탑을 만들었다. 이는 현존하는 몇 안 되는 옛 세관 청사의 흔적이다. 또한 화가 나건파(羅建波)는 세관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건물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다. 지역 화가로서 건물의 모습을 그림으로나마 남기고자 했던 것이다.
일제의 잔재라는 건물의 철거는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을까? 근대 건축물을 논할 때 건물의 해방 이전 성격만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건물들은 현대사가 가진 곡절 만큼이나 많은 사연을 담고 있기에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부산 세관 또한 누군가의 일터였고, 오랜 고향의 풍경이었던 탓에 부산 시민들의 기억 한편에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난 6월 7일, 부산시청과 관세청은 부산세관 옛 청사의 복원과 활용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북항 재개발의 일환으로 건물의 복원에 관한 이야기가 오르내린 지 10년 만에 이루어진 행정절차였다. 옛 부산 세관 건물은 총 공사비 159억 원을 들여 2027년까지 복원될 예정이다.
복원되는 건물이 옛 건물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차치하더라도 영원히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던 그 건물은 반세기 만에 부활을 앞두고 있다. 부산 세관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의 아쉬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부산세관의 복원소식을 접하며 건물의 영속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한들 인간의 피조물인 건물의 수명은 유한하다.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영원함을 보장할 수 없다. 사라짐에 대한 영원함은 어떠할까? 건물의 가치를 간직한 사람들의 열정이 남아 있다면 어떤 영원함은 유한할 것이다.
- 연재 소개 : 박건의 <사선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사라져가는 근대건축의 보존을 위해 직접 발로 뛰는 작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건축에 대한 지식부터 삶의 터전에 얽힌 애환과 애정까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 박 건 : 근대건축 연구가로 활동하며 근대건축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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