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파도는 백날 분석하고 부딪혀봤자, 휩쓸린다.

#15. 사실 모래나 우리나,

2024.04.12 | 조회 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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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바다가 있다. 우리는 성실하게 바다를 탐구한다. 누구는 뭍 근처에 오는 파도들에 긴 판때기 하나 들고 맨몸으로 돌진한다. 누구는 온갖 장비를 다 낀 채로 파랗다 못해 검어진 한 가운데로 들어간다. 누구는 열심히 배를 만들어 바닷속에서 뭐라도 훔쳐보려 그물을 던진다. 

하지만 잠수부든, 서퍼든, 해양학자든, 어부든 그 누구든 우리는 결국 뭍으로 밀려 나온다. 얼 빠진 채로 우리는 모래사장 위에 앉아있다. 사실 모래나 우리나, 모래는 우리다. 그냥 조금 작은, 혹은 과거의 우리.

뭍에 돌아와 있는 시간은 저마다 다르다. 잠깐 파도나 타고 온 사람들은 즐겁다며 다시 파도나 타러 일어설 것이고, 바다 깊숙이 잠수했던 사람은 머리가 멍해 조금 더 쉬어야 한다. 배를 만들었던 사람은 어디서 기름을 구해와야 한다. 저마다 시간은 다르지만,

우리는 바다가 고향이라도 되는 냥 다시 겁도 없이 바다에 몸을 던진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큰 파도는 백날 분석하고 부딪혀봤자 소용없다, 휩쓸린다. 그치만 장단이라도 맞춰 주듯, 바다는 늘 우리를 뭍으로 내보내기만 한다. 적당히 장난을 받아주는 덩치 큰 아빠나 삼촌처럼, 바다는 우리를 귀여워한다.

어두운 밤 바다의 공기에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날이다. 검고 푸른 바닷물이 왜인지 다정한 날이다. 또 채비를 한다.


추신 / 글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가 정복하지 못한 것들에 다가섭니다. 그것이 바다이든, 우주이든, 탈모이든, 사랑이든 말입니다. 전부 알게 될 그 날을 기대하기도, 그 끝의 허무함을 피해 평생 내쳐지기를 내심 바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아는 사랑이 사랑의 전부라면 조금 아쉬울 것 같아요. 그치만 머리는 안 빠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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