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과 조각을 삼켜본 적이 있는가. 크고 각진, 그러나 분명히 무뎌지는 사과조각은 식도를 상처입히지 않고 벌릴 뿐이다. 식도를 헤쳐 비집고 내려가며 결국 위장으로 사과는 쿵 떨어진다. 나는 그동안 목구멍에 불편함을 느끼고, 사과는 그 불편감으로 실시간으로 자신이 식도 어디쯤에 있는지 알려준다. 사과가 위장에 떨어지고 나서는 내 목구멍은 허전하다. 나는 이 허전함을 공허함으로 이해한다.
삶은 결국 사과조각이 몸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오는 일처럼 어느 쪽이 비어 있는 지의 문제이진 않을까. 사과를 삼키기 전에 내 뱃속은 비어 있었고 사과를 삼키고 난 뒤에는 접시가 비어있다. 나는 그저 어느쪽을 비워두기로 할지 선택할 뿐이다.
꿈을 이루는 일도 그렇다. 성공이 머리 속의 꿈을 눈 앞의 현실로 이루는 과정이라면, 나는 결국 물질적 공허함에서 정신적 공허함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매번 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 머릿속의 상상이 현실이 될 때, 상상이라는 내 머릿속 주머니에 있는 그것들이 하나씩 빠져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내 상상이 모두 현실이 되면, 내 머릿속은 텅 비게 되는 건 아닌가. 나는 결국 내 방 가구의 배치를 바꾸는 일처럼 빈 구석을 반대쪽으로 조금 밀어 놓은 것은 아닌가.
매번 꿈을 꾸면 될까 하기에 내 머리는 사시사철 전기만 돌아가면 그럭저럭 움직이는 공장이 아닐 뿐더러 공허함을 없애기 위해 계속 꿈을 꾸어야 한다면 그것만큼 공허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끊임없이 노력하기 위해 전혀 현실이 되지 못할 일들을 상상할 순 없다. 자르지도 않은 사과 한알을 삼킬 생각을 할 사람은 없을 테다.
그럼 공허하지 않겠다는 꿈은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 그 꿈을 이룬다고 내가 공허하지 않겠는가. 어찌저찌 이룬다 해도 그것을 이뤘기에 나는 공허할 것은 아닐까. 대충 헹궈 놓은 사과를 본다. 아직 접시는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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