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공장

#18. 누가 달아준 적도 없다.

2024.05.03 | 조회 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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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꿈과 희망을 주는 일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웃으면서 해야 하는거야. 슬퍼할 틈 없어 우리는 장난감을 만드니까. 그건 이걸 선물 받을 아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우리는 희망 생산직이다. 우리는 회색 기계들을 돌려 핑크색 하얀색 인형을 만든다. 무작위의 솜을 뭉쳐 곰돌이의 몸을 만들고 눈을 달아준다. 핑크색 플라스틱은 곧 있으면 아기의 팔뚝이 된다. 이런 건 아무나 할 수 없다며, 이건 희망을 만드는 일이라며 내심 생각한다. 기계도 없이 창조주는 참 피곤했겠다며 주제넘는 농담을 던진다. 땀이 튀어 우리의 회색이 인형을 이염시키지 않도록 애쓴다.

여느 때처럼 인형의 발을 만들어주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공구에 손가락을 찔렸다. 어렸을 적 책을 읽다 손이 베인 일이 공연히 떠오른다. 새붉던 앵두 빛의 내 피도 이젠 검붉은 체리색이 다 되어 있었다.

문득 희망도 기름이나 음식 같은 것들처럼 총량이 있는 것인가 생각했다. 분명 희망은 그런 종류의 재화가 아니라고 배웠는데, 그 배움도 그저 한 종류의 희망일 뿐이었을까. 내 손은 지금 곰돌이 모양의 인형에 눈을 붙이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 가졌던 희망을 뽑아 눈과 같이 붙여주는 일인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가졌던 희망도 이전에 누군가가 내게 어딘가 담아 주었던 선물일 지 모른다. 아, 내 직업은 선물 포장사구나. 다만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선물로 팔아야 한다. 이건 내 희망을 파는 일이다. 이 곰인형이 누군가한테 갈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이제 내 희망이 내 것이 아님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어른이 된 것이라는 말로 애써 속상함을 달래지만 글쎄, 어른은 늘 다 자란 척 하는 아이일 뿐이다. 울고 싶지만 눈물이 너무 흐르면 여느 기계처럼 나 또한 고장 나 버릴 것을 스스로 안다. 물과 같이 유연하기 짝이 없는 것은 직선적이고 뻣뻣한 지금의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내 눈은 이미 새까맣게 차 있는 플라스틱 곰인형의 그것과 같아진 지 오래다. 누가 달아준 적도 없다.


추신 / 글

장난감 공장이란 말은 참 이상한 것 같아요, 기분 좋으면서도 슬픈 그런 느낌입니다.

추신 / 그림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써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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