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맞는다. 2주 전쯤인가 겨우 자라난 내 손가락인데 떨어진다. 가만 보면 세상 일들은 참 부질없어. 애써 노력한 것들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따위에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니 말이다.
민들래로 태어난 주제애 이렇게 생각이 많은 것은 쥐약이다. 내 주변 놈들은 원체 말이 없다. 말이 없는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말이 없어서 생각도 같이 없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람이어야 했었다. 고개를 잔뜩 꺾거 올려다보거나 그쪽이 드물게 내려보면 나는 그들과 마주한다. 그들은 늘 바쁘게 움직인다. 뿌리박고 앉아있는 나에게는 정말로 그렇다. (사실 나도 여기 앉아서 밥먹고 잠자고 할 일 다하지만 여튼)
나는 그들의 말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말은 사람과 사랑이다. 사람은 그들의 이름이라 좋아하고, 사랑은 그들의 이유라 좋아한다. 누군가는 아니라고 열을 내겠지만 내 눈에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사랑과의 독한 계약관계에 있다. 그들은 모두 그들이 사랑하는 것들에 목숨건다. 누구는 예민하고 누구는 무던하게, 누구는 경박하고 누구는 묵직하게.
내가 줄기 너머로 배운 말은 이정도가 끝이다. 그들은 말에 규칙같은 것도 정해놓은 듯 하다. 다들 하는 얘기가 비슷하니까. 애들마다 바람을 타는 것 만으로 끝도없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우리 입장에선 부질없어 보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민들래라는 것도 그들이 자꾸 나를 보며 민들래 민들레 거려서 알았다.
팔이 떨어져 나간 자리로 털이 자란다. 움직일 수 없는 나는 있는 힘껏 털 끝자락에 내 씨를 묶어 놓는다. 씨는 사람들이 내 자식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남의 자식에게까지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은 가만보면 건방지다.
더 웃긴건 사람들은 자기네가 세상의 주인인 것 처럼 군다는 것이다. 멋대로 땅을 녹이고 파내고 아주 난리를 친다. 하지만 사실 세상의 주인은 우리 민들래다. 별 짓을 다 해봐도 우리는 저 구석을 조용히 해를 쬔다. 너네가 땀흘리고 일궈놓은 화단은 우리의 호텔에 불과하다.
사람의 그 건방짐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귀엽다. 내가 그들의 말을 훔쳐 배우는 것도 다 그들이 귀여워서이다. 어쩌면 나도 사랑을 사람, 아니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다. 비에 거의 남지 않은 팔들로 머리를 감싸 수그린다. 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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