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산등성이와 그 사이를 꽉 매운 파란 하늘이 인상적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저 바라만 보아도 마음에 평온을 심어주는 듯했다. 숨을 내쉬면 하얀 김이 뿜어 나올 만큼 추운 날, 수영복을 입고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며 하루 종일 물을 만끽했다. 감정에 매몰되어 무기력 속에서 허우적대는 생존 수영이 아닌,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온수를 가르는 치유 수영이었다. 나만큼이나 물을 사랑하는 모아와 함께한 온천 여행은 가장 날아와 결핍 날아, 충만 날아 모두가 만족한 시간이었다. 여행 종료는 12월 3일 밤 9시 50분. 모아를 집에 바래다주고 파주에 있는 날개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40분. 집에 도착해 식탁에 앉아 핸드폰을 확인하기 전까지 정말 완벽한 하루였다. 여행의 끝에 방문한 카페에서 주고받은 편지의 여운에 마음이 훈훈해 이대로 잠들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헐. 씨발. 계엄?”
정치에 무지한 나도 계엄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막…. 잡아가는 거 아니야? 무논리가 논리가 되어 폭력이 허용되는 무지막지한 상황이잖아.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계엄 상황은 광주의 5.18. 지금은 2024년의 12월. 황당무계하여 샤워하려고 벗어놓은 옷을 주워 입고 테라스로 나오니 그날 밤 따라 대남방송이 더욱 크게 들려왔다. 환장하겠네. 조금 전까지 하루가 참 아름다웠는데, 지금 이렇다고? 더군다나 나는 다음날 임진강과 북한이 보이는 곳으로 출근해야 한다. 북한이 이때다 싶어 쳐들어오면 어떡해? 나 출근해도 되는 것 맞나? 윤, 이 미친새ㄲ…. 내가 날개집으로 달려오던 도로 위에서 윤이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경찰이 국회를 둘러싸고, 시민분들이 아주 빨리 국회 앞으로 오셨다. 국회의원도 왔다. 나는 비상계엄 해지안이 가결될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 해제 발표를 왜 바로 하지 않는 것인지 의아해하다가 맥이 풀려 잠들었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마음이 붕 떠 혼란스럽다. 도무지 안정되지 않는 불안이 가시질 않았다. 12월 7일 토요일 밤엔 퇴근 후 파주에서 국회까지 나동이와 달려갔다. 당일 오전엔 대통령이 계엄을 저질러놓고 1분 50초짜리 ‘사과’를 했고, 김건희 특별이 또 부결됬으며,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여당 의원이 투표하지 않고 국회를 빠져나간 바람에 탄핵이 무효가 되기 일보 직전의 얼척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합정역 골목 적당한 곳에 나동이를 쑤셔놓고, 전철을 타고 국회의사당역에 8시쯤 도착했다. ‘하낫 둘 셋 넷!’ 바글바글 모인 국민들이 국민체조를 하고 있었다. 분명 심각한 정황인데, 친숙한 멜로디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러분. 우리 시위 오늘만 할 거 아니니까요, 체조 잘하셨나요?’ 누군가 마이크를 쥐고 힘 있는 목소리로 시위를 이끌었다.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사람들이 추위를 견디며 같은 것을 보고,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손에 빛이 나는 것을 쥐고 있었다. 가수의 응원봉, 무드 등, 촛불, 북 스탠드, 야광봉 등 다채로웠다. 모두가 손에 쥔 것들을 흔들며 구호에 맞춰 소리쳤다. ‘퇴진해! 퇴진해! 퇴진해!’ ‘투표해. 빨리 해! 투표해. 빨리 해!’ 혼자 불안해하다가 같은 것에 맞서는 중인 많은 사람들무리에 속하니 울컥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 사람들 다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불안하겠지. 분노하고 있겠지. 지키고 싶겠지.
국난 극복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느라, 시위는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만은 아니었다. ‘코요테 - 순정’, ’샤이니 - 링딩동’, ’에스파 - 슈퍼노바’ 등 흥겨운 음악에 맞춰 꾸물꾸물 춤을 추기도 하고, 안내 방송이 들려오기도 했다. ‘전남 순천시에서 올라오신 ㅇㅇㅇ씨, 남편분이 ‘아까 거기’에서 기다리신답니다!’ 하자,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시위장을 거니는 내내 마음이 요동쳤다. 함께 소리치며 분노가 힘이 되는 것을 느꼈다. 그치만 9시 20분이 되어도 더 이상의 여당 의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탄핵이 무산되었다.
2024년 12월 9일, 오늘도 여전히 상황은 진행 중이다. 탄핵은 되지 않았고, 언론에서는 지난 3일의 밤과 여당과 윤에 대해 계속 이야기한다. 모두가 통과하고 있는 이 시간이 다양하게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에서뿐 아니라 개인의 서사가 이야기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쓴다. 민주주의가 지속되어야 예술을 하며 살아내고 싶은 내가 이렇게라도 잘살아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나저나, 정말 미쳤나요, 윤?
📮 안녕하세요, 날아입니다! 오늘도 레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마구 써버렸네요. 날아온 글 연재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내용을 쓰게 될 줄 몰랐어요. 다음 주에도 국회에 가려고요. 모두 잘 살고 싶은 마음을 보듬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길 바랍니다. 다음주엔 다른 글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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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월
이렇게 기록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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