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여기 있으니까, 힘이 난다. 원래라면 한 달 정도 미뤘을 텐데, 지금 할래.”
너저분한 옷방에서 캠핑용 접이식 의자가 담겨있는 길쭉한 파우치를 질질 끌고 거실로 나오며 보보에게 말했다. 나는 거실 중앙에 자리를 잡고 파우치 지퍼를 쫙 내려 빠르게 조립을 시작하며 조잘거렸다. “혹시 이 의자 기억 나? 이거 저번에 너희랑 지리산 갔을 때 썼던 거잖아.” “오, 그래?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네.” 조립을 마친 의자를 번쩍 들고, 코타츠에 앉아 호응하는 보보에게 다가갔다. 바로 옆 테라스로 나가기 위해서다. 추운 겨울이 되자 여름 내내 잘 쓰던 철제 의자가 너무 차가워서 오래 앉아 있기 힘들었다. 그래서 지난주 광주에서 캠핑 의자를 가져온 것이다. 실제로 풀썩 앉아보니 훨씬 포근하고 편안했다. 의자에 달린 푹신한 목 쿠션에 머리를 기대고 하늘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그 사이 스른이 설거지를 마치고 코타츠에 합석했다. 담배를 다 피우고 거실로 들어가기 전 유리문 앞에 잠깐 서서 코타츠에서 편지 쓰는 중인 애들을 바라보았다. 보보와 스른이 날개집에 놀러 왔다. 내내 그리워하던 애들이다.
어젯밤, 퇴근 후 날개집을 청소하고 나동이와 부리나케 서울 합정으로 달려갔다. 오랫동안 가고 싶던 술집 *‘호프마당’에서 보보와 스른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각각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코인 노래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보는 오랫동안 내 핸드폰에 ‘꾀꼬리’라고 저장되어 있었고, 스른은 밴드를 만들고 싶어 하는 노래 짱이다. 사는 내내 음악을 좋아해 온 우리는 노래를 잘한다. 그래서 서로의 노래 청취를 진심으로 좋아하며 즐긴다. 한참을 부르고 듣고를 반복하다가 노래방 잔여 노래 횟수를 모두 소진하면, 대체로 미련 없이 털고 나와 지하에서 걸어 올라오는 동안 늘 하는 대사가 있다. “역시 노래방은 너희랑 와야 해.” 그러면 너도나도 “맞아 맞아.” 한다.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는 순간이 잦았던 우리는 익숙하게 노래로 연결된다. 노래하는 동안 우리 주변을 맴돌던 열기가 능란하게도 그간 각자의 삶 속에 있던 서로의 공백을 토닥이는 듯했다.
열창 후 ‘호프마당’에 도착한 우리는 원형 테이블에 동그랗게 앉았다. 음식을 기다리며 시를 필사하고, 일기를 공유했다. 스른이 그간 필사한 시들은 아름다웠고, 보보의 일기는 너무너무 귀여웠다. 잠시 후, 버섯튀김, 김치전, 두부김치가 나왔고 우리는 야금야금 먹으며 최근 가장 행복했던 일과 슬펐던 일을 공유했다. 두부 위에 김치를 얹어 먹여주기도 하고, 중간중간 음식을 한데 모아 가지런히 정리해 두고, 물을 챙겨다 주고, 마지막 한 조각을 입에 쑤셔 넣어 주기도 했다. 각자 길어 온 사랑을 서로에게 건네고 받느라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호프마당을 나와 나동이를 타고 날개집에 가는 동안에도, 도착해서 코타츠에 둘러앉아 준비해 온 간식을 까먹으면서도 그랬다. 밤이 지나가는 걸 아까워하면서 졸음을 참으며 새벽 다섯 시까지 함께했다. ‘야, 그거 알아? 뉴진스가 뉴진즈로 돌아온대…. 헐….’ 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기절하듯 잠들었다.
오전 아홉 시에 눈을 떠 나동이를 몰고 빵집 ‘팔월’에 다녀왔다. 사과 케이크와 빵을 사서 보보와 스른에게 먹이고 싶었다. 아침밥으로 두부가 맛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날개집으로 걸어오는 동안엔 눈이 내렸다. 우리는 집 앞에서 하얀 강아지를 만나 한참을 예뻐하다가 집에 들어와 아침에 사 둔 사과 케이크에 기다란 초 세 개를 꽂고 서른 맞이 축하를 했다. 케이크 한판을 모두 비우고 나서, 나는 의자를 조립하고 스른은 설거지하고 보보는 코타츠와 한 몸이 되어 날개집에 온기를 더했다. 어느세 얘네가 날개집을 떠나기까지 한 시간 반. 각자 서로에게 편지를 써 낭독했다. 눈물 젖은 편지 여섯 통이 오갔다. 나는 ‘또 오길 기다렸어.’ ‘와줘서 고마워.’ ‘사랑해.’를 길게 써서 보보와 스른에게 건넸다. 이젠 정말 가야 할 시간. 둘은 현관 앞 얕게 쌓인 눈 위에 손바닥 도장을 찍고 날개집을 떠났다.
둘을 전철역에 바래다주고 날개집에 돌아와 하얀 바닥에 찍힌 손바닥 도장을 물끄럼히 바라보았다. 가만히 서서 이 기분을 내 안에 저장했다. 이런 거야. 너희랑 만나면 좋다는 말의 좋음은 이런 거야. 이 글이야. 아마 나는 또 가라앉겠지만 좋음을 기억해 뒀다가 본능처럼 힘을 낼걸. 그 좋음 덕분에.
📮 안녕하세요, 날아입니다! 오늘도 레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이나믹한 일주일이 지났어요. 다들 안녕하시지요? 올해의 마지막 달인 12월도 벌써 반토막이네요. 날아온 글도 두 번의 에피소드만을 남겨두고 있어요.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입니다.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요, 저는 다음 주에 새로운 글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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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
이번 그림 너무너무 좋다. 저장 💝 30대도 우리로 가득 채우자 - 라뷰.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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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월
서로의 공백을 토닥이는 듯…너무 좋아요… 이렇게 글로 남겨주시니 감동이에요.. 그림도 너무 좋아요.. 정말.. 좋네요.. 날아님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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