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초연정 원림 – 초연함을 이끌기에 이보다 확 트인 원림이 있을까
전성기의 본질은 찰나의 정점이다
누구에게나 한창이 있다. 전성기라는 게 길지 않다. 짧다. 짧지만 강력하다. 그래서 달콤하다. 아다시피 세상에 달콤한 게 해로운 길로 인도하지 않은 적이 없다. 삶의 정점이라는 게 찰나와 같다. 꽃이 만개하였다가 지는 순간처럼 허망하다. 전성기는 찬란한 시절이다. 도취감과 성공으로 이어지는 환희가 강렬하다. 해서 영원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렇게 강렬했기에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증좌가 누구나의 삶에 수두룩하게 등장한다. 전성기의 달콤함은 독특하다. 익어가는 과일의 당도처럼 가장 달콤한 순간부터 서서히 기운다. 달콤한 것이 그래서 위험하다. 최고의 순간으로 이끌지만 동시에 나태를 잉태한다. 때로는 오만함을 창조한다. 안주하고 맹목적이며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게 전성기의 속성이다. 전성기를 거부하기는 힘들다. 어쩌면 누구나 겪어야 할 통과의례이다. 그래서 완전히 함몰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는 방법밖에 도리가 없다.
상대성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노벨상이라는 전성기를 뒤로 개키고 평생을 한결같은 자세로 양자역학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려 고행길을 선택한다. 대통령이란 권좌에서도 늘 시골 변호사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다. 인도 독립의 영웅이 된 후에도 물레질을 멈추지 않은 사람이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이다. 한국정원문화를 취재하다 보면 전성기의 달콤함에 중독되지 않는 절제력을 디딤돌로 더 높은 정신적 가치를 향하여 나아가는 인물 투성이다. 순천 초연정 원림의 이름을 지어 준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을 떠올린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9대손으로 을사늑약 파기와 국민궐기로 국권을 회복하자는 유서를 남기고 순절한다. 당시의 유림사회에서는 송병선 한 사람만이 순국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은식(朴殷植, 1859~1925)의 『한국통사』를 비롯한 대한제국 시기의 역사서와 전기에 늑약 폐기와 오적의 처단 등을 주장한 내용이 등장한다. 황현(黃玹, 1855~1910)의 『매천야록』에는 다음과 같이 문하생에게 전한 유언이 실렸다.
조용히 생각할 때 儒者가 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은, 仁을 자신의 책임으로 삼아 죽은 후에 그만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인이 일찍 훈계한 것입니다. 지금 천지가 뒤바뀌어 中華가 오랑캐로 변하고, 인간이 금수로 변하고 있으니 우리 동지들은 더욱 노력하고 의리를 강론하여 거의 끊어진 우리 儒士의 맥을 붙잡고, 또 영원히 그 맥락을 이어 先聖賢에게 공헌하기를 이 老夫는 구구히 바랍니다. 천번 만번 이 부탁을 소홀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일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황현, 매천야록 권5, 광무9년 을사(속), 「송병선의 고문입유서」, 한국사총설DB.
송병선의 순국과 유언에 따라 연재학파 제자들은 사후 위정척사 대열에 앞장선다. 을사늑약 폐기 상소 운동과 그후 경술국치에 순국의 길을 택하는 순절자가 이어진다. 문하생에게 남긴 유언을 보면, 유자의 책무를 사명으로 강조하고 시대 상황의 심각성 속에서 유학 전통의 계승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작은 일이 아니’라고 천번 만번 당부하고 있다. 그의 순절은 단순한 죽음이 아닌 실천적 가르침이 되어, 제자들의 항일 운동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독립운동가들의 항일 정신을 이끄는 도덕적 토대로 승화되었다.
연재 송병선과 순천 초연정(超然亭) 원림
이러한 연재 송병선과 순천 초연정 원림의 인연은 조준섭(趙俊燮)이 스승인 송병선에게 초연(超然)이라는 이름을 받고 이곳을 세미나(講學) 장소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밝혀진다. 처음 조진충(趙鎭忠, 1777~1837)이 1836년 여름에 초정을 지었다. 선대부터 시작한 미완성의 묘 아래 재각(齋閣)을 진충이 완성하여 봄가을 향사와 선조 추모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다는 『초연정사실』의 「창건사적기」가 그 내용이다. 조진충의 호는 청류헌(聽流軒)인데, 초연정 마루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순간 세속의 티끌은 한번에 사라지는 상쾌한 경험을 한다. 초연정 계곡에 있는 바위글씨에 ‘조진충별업’이 있다. 별업형 별서로 원림을 경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리는 대광사(大光寺) 승려가 수도를 위해 지은 수석정(水石亭)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주변에 바위가 많고 맑은 물이 흐르니 ‘수석정’이라는 이름도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조진충의 증손 조준섭이 주선하여 1890년 겨울에 송병선이 누정의 이름을 지어준다. 이후 초연정 원림은 연재학파의 워크샵(同遊)과 세미나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62세(만 나이) 때인 1898년에 금산을 시작으로 논산, 완주, 익산, 고부, 영암, 장흥, 보성, 순천, 곡성을 방문하며 선현들에게 향음례를 행한다. 이때 자신을 따르는 문하생을 대동하고 순천 초연정에서 강학하였다. 초연정 워크샵에 참여한 연재학파라 할 수 있는 문하생이 순천, 보성, 화순, 곡성, 고흥, 담양 등지에서 70여 명이 참여하였다. 송병선은 당시의 초연정 원림의 경관을 시경(詩境)으로 다음처럼 남겼다.
亭起幽深處(정기유심처) 그윽히 깊은 곳에 정자 서니
宜爲隱者居(의위은자거) 은자의 거처가 되기에 마땅하네
苔痕遊澗鹿(태흔유간록) 이끼 낀 골짜기를 사슴이 노닐고
花影戲池魚(화영희지어) 꽃 그림자는 연못 물고기가 희롱하네
信宿聽山雨(신숙청산우) 이틀 묵으며 산의 빗소리 듣고
開懷談架書(개회담가서) 마음 열어 서가의 책을 담론하네
超然塵慮息(초연진려식) 세속 생각 사라져 초연해지고
瀟灑我襟虛(소쇄아금허) 텅 비어 가슴 한쪽 상쾌하네
-송병선, 「초연정, 조준섭에게 시를 주다」, 『연재집』 연재선생문집권지2 /시, 한국고전종합DB.
위 시의 제목처럼 송병선이 활동할 무렵의 초연정 주인은 조준섭이다. 송병선이 초연정의 이름을 지어 줄 때가 54세였고 8년 후, 초연정 원림에서 강학을 할 때는 62세였으니 순절(69세) 7년 전의 일이다. 당시의 초연정 원림의 원형 경관을 살핀다. 일단 초연정 원림의 입지와 공간적 특성은 모후산을 바라보는 마을 뒤편 깊고 그윽한 곳에 위치한다[幽深處]는 점이다. 자연이 정자와 잘 어우러지는 공간이며 은자의 거처로 적합한 고립된 입지 조건을 지녔다. 자연 경관 요소로는 골짜기와 연못과 빗소리를 시에서 읊었다. 이 시에서 꽃 그림자가 연못 물고기를 희롱[戲池魚]한다고 하였으니 연못이 존재하였음을 알게 된다. 지금은 연못이 없다. 연못 자리를 비정할 뿐이다. 계곡의 골짜기[澗]가 자연스러운 계곡물을 흐르게 하며 산에서 후드둑 떨어지는 빗소리[山雨]로 경관의 청각적 요소를 강조한다. 식생으로는 지금도 가득 끼어 있는 이끼가 있어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끼의 질감이 보통 두툼한 게 아니다. 배롱나무가 꽃 그림자를 드리우며 계절감을 더한다. 시각적으로 이끼의 질감과 꽃 그림자는 공간의 깊이감을 구성한다. 사슴과 물고기를 통하여 건강한 생태적 공간임을 밝히고 있다. 빗소리는 청각, 꽃 그림자[花影]는 시각, 이끼의 질감[苔痕)] 촉각을 자극하는 감각적 체험이 가능하다. 그러면서 세속적 근심이 사라지는 초연[超然塵慮息]한 공간으로 학문과 사색을 위한 이상적 환경이다. 물론 독서와 담론, 자연과의 합일과 풍류를 즐기는 심미적 풍광을 정밀하게 묘사하였다.
초연함에 이르는 정신적 토대
초연함의 진정한 의미를 살핀다. 초연함은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다. 더 높은 차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정신적 경지를 말한다. 초연정 원림의 이름을 지어준 송병선은 ‘초연’이라는 가치를 내적 성찰의 철학적 기조로 삼은 것이 분명하다. 송병선이 추구했던 초연의 정신은 단순한 은둔이나 현실도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기본으로 성립한다. 현실의 혼탁함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여 바라볼 수 있는 정신적 고양의 상태이다. 현실 참여와 초탈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가치의 조화로운 균형점에서 발현된다.
한국정원문화에 새겨진 초연의 정신을 찾을 수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자신들의 정원과 누정에 '초연'이란 이름을 새김으로써 그들의 정신적 지향점을 물리적 공간에 구현한다. 순천의 초연정 뿐 아니라 한강 광나루 초연정이나 평안도의 희천군의 초연정이 같은 이름을 쓴다, 창덕궁 기오헌 뒤쪽에 돌로 쌓은 축대에 초연대라는 바위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들 공간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닌 정신적 수양의 장소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특히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초연대들은 세상을 조망하는 물리적 시점인 동시에, 현실을 초월하여 바라보는 정신적 고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결국 책임의식과 초연함의 조화가 필요하다. 진정한 초연함의 경지는 책임의식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포천의 초연대는 조선후기 실학자인 옥동 이서(李漵, 1662~1732)가 쓴 ‘초연대기’와 ‘초연대팔영’이 전해진다. 가평의 초연대는 ‘모정팔경(茅亭八景)’과 ‘가평팔경(嘉平八景)’에 출현한다. 김지남(金止男, 1559~1631)의 ‘모정팔경’에는 ‘초연대의 저물녘 풍경[超然暮景]’을 꼽고 시를 읊었다. 곽열(郭說, 1548~1630)은 가평팔경 중 ‘초연대의 낙조[超臺落照]’를 포함시켰다.
유성 옥류각의 '초연물외(超然物外)' 바위글씨는 단순히 속세를 벗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더 높은 차원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동춘당 송준길의 선비정신이 나타난 표현이다. 현실 참여와 초탈은 둘 다 동시에 발현되는 정신적 경지이다.
내면의 깊이를 담은 정신적 고양으로서의 초연함이란 결국 겉으로는 담담하되 내면에는 깊은 성찰과 책임의식을 담고 있는 정신적 상태이다. 송병선의 삶을 이끄는 정신적 토대가 ‘초연’함에 있음을 미루어 짐작한다.
이보다 확 트인 원림은 보기 힘들다
공간은 절대성과 상대성을 지닌다. 한국 전통 원림에서 공간의 크기는 단순한 물리적 수치를 넘어선다. 작은 정원이라도 그 안에서 느끼는 공간감은 무한히 확장된다. 넓은 정원 역시 그 자체로 완결된 우주를 담아낸다. 이는 단순히 면적의 크고 작음이 아니다. 공간이 지닌 본질적 가치와 깊이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초연정 원림이 보여주는 것처럼, 진정한 공간의 확장성은 물리적 한계를 초월한 정신적 여유에서 비롯된다. 인간적 척도의 미학으로 파악할 때 초연정 원림처럼 완벽한 우주적 규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한국전통정원문화는 인간 중심적 척도를 즐겨 사용한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 치수나 동선의 편리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감성과 지성, 그리고 영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낸 결과물이다. 인간적 척도는 수천 년간 한국인의 삶과 미의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듬어져 왔으며, 여전히 유효한 미적 기준으로 강조된다.
원림의 진정한 가치는 모든 요소가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면서 발현될 때 빛난다. 건축물과 자연 경관, 식재와 수경 요소,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활동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오랜 시간 동안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미적 감각의 결과물이다. 인위적이거나 강제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조화와 화합은 공간의 물리적 크기와 무관하게 작동한다. 한국정원문화의 본질적 특성이다. 이러한 특징이 '저절로 그러한' 자연스러움의 미학을 낳는다. 인위적인 설계나 의도적인 구성을 최소화하고,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마치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은 깊은 미적 성찰과 세련된 안목의 결과물이다. '저절로 지닌 미학'을 찾는 것이 한국정원문화의 정수이며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가치이다.
순천 초연정 원림의 정자 마루에 앉거나 계곡 너럭바위에 누우면 안다. 이보다 확트인 원림은 국내에서 찾기 힘들다. 초연정 원림의 정자마루에 앉는다. 하필 앉은 자리에서 송진이 나와 나를 붙잡는다. 붙잡힌 김에 초연정 원림에서 시를 읊는다.
초연정에서 바위를 읽다
온형근
잠시 안 보이거든 초연에 들었다 전하오
세상 많은 너럭바위 하필이면 계곡 하상을 덮을 줄을
지금까지 보았던 우람 장엄한 기암 암반마저
제 몸 위로 물길 내어 흐르는 맑은 심성을 만나고서야
반석이든 너럭바위든 잊어라
한 계곡 바닥을 견인하여 들어 올린 거암군 적층을
한가한 날 시원한 계곡 너럭바위에 누워 쳐다본다.
누구의 별업인 게 대수일까 낮게 흐르는 물결이
선계에서 인간계로 파고들며 굽이치는 낙차의 파란
오래된 나무를 위무하는 물소리였기에
쪽지어 흐르는 물기에 쏘인 겨울나무 마른가지로
모후산의 햇살을 온유하게 담뿍 재운다.
정자 뒤를 고르게 두른 암석 담장으로 이끼는 푸르게 빛나
겨울 햇살이 한결 보드랍고 두툼하다.
정자 한켠에 걸터앉는다.
하필이면 마루바닥 관솔이 들고 일어나
바지의 허벅지에 끈끈한 옛 정을 달고 다닌다.
계곡을 두른 벼랑의 푸른 산죽 곁에
몸줄기 꽂은 하늘 향한 서어나무들의 줄기에서
배롱나무 줄기로 반짝이는 초연함이 쏟아진다.
초연정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겨울 아침의 서늘함이 스며든다. 계곡의 물소리가 귓가에 맴고, 너럭바위들이 시선을 붙든다.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화폭 앞에서 겸손해진다. 바위의 본질을 읽어내려 너럭바위에 몸을 눕힌다. 계곡물은 바위의 심성을 씻어내고, 그 물길은 자연의 순리를 가르친다. 정자에 오르니 모후산의 겨울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오래된 나무와 물소리가 주고받는 대화에 귀 기울인다. 이끼 낀 암석 담장이 세월의 깊이를 보여준다. 정자 마루에 앉아 사색에 잠기다 관솔에 옷이 걸린다. 뜻하지 않은 만남이 인연이 되어 끈끈한 정으로 남는다. 서어나무와 배롱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은 모습에서 생명의 의지를 본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순간, 겨울빛이 모든 것을 밝힌다. 초연이란 “제 몸 위로 물길 내어 흐르는 맑은 심성을 만나고서야 반석이든 너럭바위든 잊어라.”의 경지에 드는 일이 아닐까? 본질인 맑은 심성을 깨닫는 순간에 초연은 반석처럼, 너럭바위처럼 의연하다.
높은 곳에서 먼 산을 바라보다가 계곡을 내려다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을 부감(俯瞰), 그 경치를 부감경이라고 한다. 부감의 시선과 지면이 이루는 각도는 부각(俯角)이다. 풍경이 편안하게 느끼지는 부각이 8~10도 정도이다. 정자 마루에서 계곡의 너럭바위 가장자리를 찾아 졸졸졸 흐르는 벽간수를 바라보는데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 보통 부각 30도가 넘으면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절벽과 같은 곳에서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한참을 편안하게 부감경을 즐긴다. 조준섭을 비롯한 친구들이 즐긴 삼청동 구곡을 떠올린다. 그들은 초연정 원림의 공간적 외연을 확장하였다. ‘저절로 지닌 미학’을 심도있게 확장하여 구곡 문화를 설정하였다. 정신적인 풍요로움만이 구곡 문화를 영위한다. 모후산 삼청동은 수청, 풍청, 월청으로 일컫는다. 물과 바람과 달빛이 맑은 동천이라는 말이다. 도가(道家)의 옥청, 상청, 태청이라는 선경(仙境)을 연상케하는 중의적 공간 장치이다. 조준섭을 비롯한 문인들은 주자의 압운을 차용하여 6편의 구곡가를 창작하였다. 이들 구곡 시는 크게 세 가지 측면을 담고 있다. 신선의 세계를 동경하는 도가적 정신이 드러나고, 자연을 통해 도리를 깨닫고 마음을 수양하려는 유학자의 자세가 보이며, 자연 속에서 현실과 올곧은 삶의 거리감을 안타까워하는 시대의 마음이 담겨있다.
조종덕(趙鍾悳, 1858~1927)은 1919년에 「삼청동속구곡기」에서 안창환, 조태승, 조중섭과 삼청동을 찾아와 무등산, 지리산과 비교하며 무이구곡에는 못 미치나 화양구곡에 버금가는 승경이라 평가한다. 주자와 우암 송시열의 뜻을 본받아 친구들과 함께 구곡시를 창작한다. 세진교(洗塵橋), 봉일대(捧日臺), 자미오(紫薇塢), 설매대(雪梅臺), 와룡암(臥龍巖), 광석대(廣石臺), 은선굴(隱仙窟), 벽옥담(碧玉潭), 와석패(卧石沛)의 구곡시가 『초연정사실』에 남아있다. 조준섭은 1895년에 지은 구곡시의 후속편을 ‘속구곡’으로 만든다. 이전 지은 구곡시를 친구들과 공유하며 함께 감상하고 압운은 주자의 무이구곡을 참고한다. 구곡 명칭은 송시열의 화양구곡을 본뜬다.
그 중에서 조종덕이 지은 8곡 벽옥담을 본다. 주자의 「관서유감」에 나오는 ‘반무방당’과 유사한 시경이다.
半畝方潭鑿石開(반무방담착석개) 반 이랑만한 네모난 연못이 바위를 파서 만들어졌는데
揚明秋月照寒廻(양명추월조한회) 밝은 가을달이 차가운 물에 비쳐 돌아드네
爲將涵養要如此(위장함양요여차) 마음을 함양하는 요체가 바로 이와 같으니
好是源頭活水來(호시원두활수래) 근원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처럼 하면 좋으리라
-조종덕, 「벽옥담」, 구곡가, 『초연정사실』, 165쪽.
자연에서 수양하는 것이 곧 학문이고 인격 수양이다. 작은 연못에 비친 달빛처럼 맑고 순수한 마음을 지키며 근원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처럼 끊임없이 정진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시는 주희(朱熹, 1130~1200)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의 시경을 인용하여 차용하였다. 주희의 「관서유감」은 한국정원문화 조영에 깊은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 시의 함의는 단순한 문학적 영향을 넘어 실제 정원 구성의 원리로 구현되었다. 7언절구 두 수를 소개하여 한국정원문화의 핵심 요소와 연결한다.
半畝方塘一鑒開(반무방당일감개), 조그만 네모 연못이 거울처럼 열리니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비쳐서 떠돈다.
問渠那得淸如許(문거나득청여허), 어떻게 이리 맑을 수 있을까를 물으니
爲有源頭活水來(위유원두활수래), 근원에서 맑은 물이 내려오기 때문이라.
昨夜江邊春水生(작야강변춘수생), 지난밤 강변에 봄물이 불어나니
艨艟巨艦一毛輕(몽동거함일모경), 큰 배도 터럭 한 올처럼 가볍다.
向來枉費推移力(향래왕비추이력), 지금까지 힘들게 옮기려 애썼는데
此日中流自在行(차일중류자재행), 오늘은 강 가운데 저절로 떠다닌다.
-주희, 「관서유감 2수」, 『주자대전』 권2.
첫 수의 ‘반무방당일감개(半畝方塘一鑒開)’는 정원 문화의 핵심 요소를 제시한다. 한국정원문화의 특징적 요소인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인 방지원도(方池圓島)의 조화를 통해 음양의 원리를 구현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을 반영하여 네모난 연못은 음을, 둥근 섬은 양을 상징한다. 구례 운조루 행랑채 앞의 연못이 방지원도이고 프랑크푸르트와 카이로, 중국 광동 월수공원에 조성한 해동경기원의 한국정원에도 방지원도를 조성하였다. 성주 한주정사의 '일감헌(一鑑軒)'도 첫 수의 ‘반무방당일감개’에서 편액의 이름을 취하였다. '방촌'이라 불리는 한 치 사방의 공간은 마음을 상징한다. 작은 네모난 연못은 우주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도산서원의 정우당과 병산서원의 광영지에서 실제적으로 구현되었다. 방지원도와 반무방당은 각기 다른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나, 네모난 연못이라는 공통된 형식을 통해 한국정원문화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전자가 음양의 조화를 추구했다면, 후자는 성리학적 수양의 공간을 상징했다.
도산서원의 '천광운영대'는 「관서유감」의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함께 어우러진다는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에서, 강릉 선교장의 '활래정'은 근원에서 솟아나는 생명력 넘치는 물이 흘러온다는 ‘위유원두활수래(爲有源頭活水來)’에서 그 명칭의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한국정원문화는 단순한 조경 요소를 넘어 우주관과 수양론이 응축된 문화적 결정체로서 그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문화유산으로서, 우리 선조들의 심오한 철학적 사유와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산이다. 특히 작은 공간에 우주를 담고자 했던 그들의 정신은 현대 정원 문화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온형근, 시인::한국정원문화콘텐츠연구소[茶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