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그 역사에 걸맞게 많은 지명이 다른 나라의 도시 이름에서 유래한다. 우리가 잘 아는 New York(뉴욕)과 New Orleans(뉴올리언스), 그리고 Boston(보스턴) 또한 각각 영국과 프랑스의 도시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큰 파리 또한 마찬가지로 미국의 텍사스 북동부에 위치해 있다. 프랑스 파리의 도시 이름을 딴 이 도시에는 약 25,00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카우보이를 상징하는 빨간 모자를 쓴 에펠탑 복제품이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예술과 문화의 도시인 프랑스 파리의 이름이, 당시에는 황량했던 텍사스 북동부 지역의 작은 마을에 붙여졌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아이러니함이 있다.
이 도시가 품은 아이러니는 한 남자의 삶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지명처럼, 세상 불편한 정장을 입고 황량한 텍사스의 사막을 무작정 걷는다. 사막을 걷느라 힘이 다 빠진 사내는 술집에서 그만 쓰러져 기절하고, 의사로부터 연락을 받은 동생 월터가 그를 집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곳에는 자신의 아들 헌터가 함께 살고 있다.
트래비스는 그의 아내인 제인과 아들 헌터와의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영상을 보게 된다. 모든 감정이 메말라버린 듯한 지금의 모습과 다르게, 영상 속 트래비스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트래비스는 월터 부부를 통해 제인이 아직도 헌터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들과 함께 그녀를 찾아 휴스턴으로 향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아내이자 엄마 제인을 찾아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로드무비의 왕’이라는 칭호를 가진 빔 벤더스의 영화는 도파민 과잉의 시대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 쉽지만,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느낄 수 있는 어떤 따듯함이 있다. 그것은 영화가 감독에게 일부러 느끼게끔 하는 것이 아니고, 관객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느끼는(혹은 그렇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감정이어서 더욱 고유하고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가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한 번 매료되고 나면 그 누구도 쉽게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Today's Curation
- 이 영화의 워킹타이틀은 원래 Motel Chronicles였는데, 극작가이자 배우인 샘 셰퍼드의 저서 ⟪Motel Chronicles⟫에서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1984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그해 칸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 극 중에서 이 도시가 마치 황량한 사막처럼 찍힌 사진이 등장하는 데 반해 실제 패리스 시는 동부 텍사스 삼림 지대 근방에 위치해 있어 사막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 커트 코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영화로도 유명하다.
- 스코틀랜드의 록밴드 텍사스와 영국의 밴드 트래비스가 각각 이 영화의 제목과 주인공을 따 밴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 Lana Del Rey, The Chairs 등의 아티스트에게 음악적 소재로 쓰이기도 하였다.
Today's Question
당신의 삶을 영화화한다면, 그 장르가 무엇이길 바라나요?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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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치
그래서 세상에서 두 번째로 큰 파리인 도시 이름이 뭔가요!
nbsp
그것은 텍사스의 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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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치
오늘의 질문이 너무 좋아요. 내내 생각해 보려고요.
nbsp
로드무비는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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