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윤동규 42주차

환경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고 싶어합니다.

2024.01.02 | 조회 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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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윤동규

한 주간 쌓인 쓰레기들을 공유합니다

Part 1


0.
환경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고 싶어합니다. 크리스마스라서 외롭고, 명절이라서 가족을 만나고, 새해 첫 날이라서 계획적으로 잘 하고 싶다거나 하는 부류를 싫어해요. 언제 어느 때에나 한결같은 사람을 추구합니다. 그 “한 결”의 높낮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결같이 구린 사람이라도 좋으니, 나의 결을 가지고 싶다는게 핵심입니다. 그러니 의식적으로, 새해 첫 날을 평소와 같이 보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저의 평소는 조금 많이 게으르고 한심하잖아요? 그게 주간 윤동규 이번 편이 화요일에 발송되는 이유입니다. 여태 게을렀던 주제에 새해 첫 날이라고 부지런할 수 없다! 물론 이정도로 게으르진 않았지만, 한번 한심해지면 다음 번엔 중간만 가도 근사해 보이는 효과가 있지요.

1.
환경이라는 요소엔 크게 공간이나 상황 등 이미 주어진 조건.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이나 눈치 등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조건으로 나누어집니다. 번지점프대 위에서 컵라면을 먹는 것은 공간이나 상황에 의한 환경입니다. 이런 것 까지 극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환경을 바꾸거나, 환경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하지만 눈치 같은 경우엔, 사실 마음가짐 하나로 해결되는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조금 절묘한 예시는 아니지만, 저는 혼자서 밥을 못 먹는 사람이었답니다?(여기서 억양을 최대한 상냥하게 읽어주시면 조금 유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 중고등학생 급식 때 부터, 같이 밥 먹는 사람이 없으면 괜히 친구가 없는 것 같고. 여자애들이 쑥덕쑥덕 거리는게 내 이야기 같고. 하여 만약에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면, 차라리 굶고 말았습니다. 이런 저를 바꾼 계기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2.
처음으로 혼자 서울에 올라갔을 때. 먼저 대전에서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서울에서 또 다른 친구를 만난 뒤. 이대로 내려가면 뭔가 후회할 것 같다는 기분에, 억지로 서울역 근처의 찜질방에서 하루를 더 지냈습니다. 스마트폰은 없던 시절이지만, 천계영 작가의 <오디션>이 있어서 심심하진 않았습니다. 탕에 몸도 담그고, 땀도 빼고 커다란 거실에 밤새 틀어진 TV를 보며 잠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짐을 챙겨 나가보니 눈이 한껏 와 있었고. 부산 사람의 시선으론, 눈 쌓인 서울역은 마치 어디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설국 같았습니다. 이런 감상들과는 별 상관 없지만, 김밥나라(천국일 수도 있습니다)에 들어가서 순두부 찌개를 시켜 먹었습니다. 그리곤 곧바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생각해보면 KTX를 탄 것도 아닐텐데, 왜 버스를 두고 기차를 탔을까요? 혼자 여행하기엔 그 편이 더 낭만적이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
자. 이 별거 아닌 이야기에서 어떤 특이함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어떤게 저희 성향을 바꾼 계기였을까요? 혼자 여행하고, 혼자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중요한건 혼자서 밥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뭐 어때서, 라고 폄하하기엔 이제 막 스무살이 된(빠른 년생이라 사실상 19살인) 청년에게는 그게 몹시도 쉽지 않았습니다. 맹세코 집 밖에선 한 번도 혼자서 밥을 먹어본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서울역 김밥나라의 순두부찌개는 저의 혼밥 첫경험이었습니다. 어땠냐구요? 제가 감상을 그냥 지나쳤지요? 그도 그럴게, 별 기억도 안 납니다. 맛이라든가, 어떤 자리에 앉았다든가. 뭘 보면서 먹었는지, 얼마였는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기억입니다. 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기억은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하게 자리잡습니다. 혼자 밥 먹는거,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4.
그 이후로는 꽤나 많은 것이 변합니다. 인생을 바꾼 사건으로 서술하기에 너무 하찮은 에피소드 같지만, 하찮은 에피소드로 인생을 바꾸는게 뭐 어때서? 아무것도 아니잖아,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실 세상을 살면서 크리티컬하게 중요한건 크게 많지 않습니다. 뭐 돈이라든가. 인간관계. 몇 안되는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 그 안에 내가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상황이 몇이나 들어간다고 생각하십니까? 꽤 많이 들어가겠지 뭐... 그치만 혼자 밥 먹는 괴로움 따위는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크리스마스에 혼자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고. 새해 첫 날에 집에서 빈둥대는 괴로움, 생일에 약속이 없는 외로움 같은건 그저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건 나를 어찌 하지 못합니다. 서울역 김밥나라 순두부찌개에게 배운 교훈입니다. 주간 윤동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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