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에 계시는 어머니를 뵙기 위해 아침일찍 준비했다. 땅이 단단해지려면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던데 이렇게 큰 비가 오니, 혹시나 지반이 흘러 내려갈까 걱정되어 내 눈으로 괜찮으신지 확인을 해야했다.
어머니의 고향 경남 고성은 통영 옆의 머나먼 곳으로 바다와 산을 한꺼번에 끼고있는 S자의 수많은 곡선도로를 달리다 보면 명절마다 인사드리러 왔었던 외할머니 집과 논밭이 보인다. 탄내와 풀내가 가득하고 드문드문 보이는 어른신들은 왠 외지인인가 하고 신기하게 쳐다볼뿐, 이후 다시 그들의 세상으로 돌아가신다.
어머니 자리는 산중턱에서 바다를 바라볼수있는 좋은 위치로써 할아버지와 할머니보다 좀 더 낮은 위치로 집안 어르신들과 조용히 누워 계신다. 산짐승이 있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다른 묘에 군데군데 밞혀 파인곳이 있어 조심히 덮어드렸고 어머니의 자리는 그분답게 고상하고 꿋꿋하게 계셨다.
상실과 부재의 크기는 커져만 가는데 혼자 삼키느라 좀 고되다. 옆에 계셨다면 이런저런 일들을 나누고 얘기만 해도 해소되는게 있을건데 너무 일찍 쉬러가신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원망스럽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더 얘기를 나누고 어머니 생각을 내 가슴에 담아둘껄 이라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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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친구들이 도대체 왜 선생님을 나와 닮았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지금 생각해보니 동족혐오였을까 싶을정도로 딱히 열정적이지도 않지만 묘하게 끈질기시고, 힘없이 말하는데 고집은 확실하시다. 유함을 추구하지만 아닌건 칼같이 잘라내시고, 그런것이 보이니 오늘에서야 ‘아, 완전 닮았네.’ 인정하게 됐다.
산소를 다녀오고 잠깐 부산에 내려오셨다는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나뵈었다. 처음엔 음악을 알려주셨고 이후엔 예술을, 이젠 술친구로써 술을 나눈다. 술자리는 처음이 아니지만 오늘에서야 제대로 동석을 하는 기분이었고 학생땐 이해하기 어렵던 행동과 말씀들이 이제는 쓴 커피가 당연한것마냥 받아들여지고 조금씩 꼬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결혼은 언제할거냐는 질문에 이별소식을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선생님이 꼭 소개시켜주고픈 사람이 있다며 만남을 권한다. 이상하게 요즘 헤어졌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내 기분과 상태를 확인하는게 아니라 배우자 후보 리스트에 넣는것마냥 생각도없는 결혼매물에 넣어버리곤 본인들이 자처해 중계를선다. 사람들은 타인의 우울과 잠깐 멈춰있는 분홍빛을 기다려주지 못하나보다.
애초에 인간관계를 엮어주는분이 아닌데 저렇게 극성인 이유가 있을까, 싶어 들어보니 선생님 제자도 아니고 평범한 직장에 예상치도 못한 나이다. 그렇게 어린 사람을 저랑 엮어주면 선생님과 제가 사회적으로 규탄받지 않을까요? 하고 장난스럽지만 정중한 거절을 하는데, 역시 나와 닮으셨다. 못알아 들으신다.
근심없이 킬킬대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계 시침은 순식간에 이동했고 오랜만에 생각과 노력없는 대화가 위안을 주니 마음이 놓였다. 열정을 토하는 중계쟁이로 바뀐 선생님에게 어떻게 더 완곡한 거절을 표현해야하나 고민이지만 오랜만에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