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과장님 집들이에 초대받아 방문했다. 예전 직장 선배로써 항상 나를 존중해주시고 자신의 생각을 멋드러지고 어른스럽게 표출하시는 멋진 선배 중 한분이셨다. 그러다보니 갑작스러운 집들이의 초대나 만남에도 불만이나 불편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달려갔다.
예전 직장동료들과 여럿이서 집들이 선물을 한아름들고 방문하였고 맛있는 음식들과 술잔이 돌아가다 보니 모두 취기가 오르고 자세와 목소리엔 긴장이 풀렸다. 퇴사를 한지 많은 시간이 지났기에 그들을 대하는데 불편함이 없었고 예전에는 없었던 여유와 농담으로 이야기를 받아치기도 하고 그동안의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와 각자의 치열한 생존을 축하했다.
그러다 문뜩 내가 이전보다 대하기가 편해졌다며 같은 나이지만 부서가 달랐던 A가 입을 열었다. 이 회사에선 사람들과 다같이 어울려 친하게 지내기보단 나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리는데 급급하여 뻣뻣하게 굴며 다양한 감정표현보단 입을 다무는데 집중했던 곳이었다. 과장님이 예전 프로필 배경화면을 봤다며 연애하더니 사람이 이렇게 부드럽고 좋아졌냐며 장난스럽게 말하는데 쓰라린 가슴을 뒤로하고 굳이 여기서 말을 더해봤자 뭐하겠나 하는 생각에 입을 닫았다.
간만에 보는 사람들이 죄다 비슷한 얘기를 한다. 너가 이렇게 얘기를 잘 들어주고 표현하던 사람이었던가? 사람이 됐네 하며 장난스럽게 내 변화를 치하해주는데, 글쎄다. 내가 뭐 알아야 호응을 하던가 자랑을 하던가 하는데 나는 그저 살아왔을뿐. 만약에 정말 변화가 있다면 아마도 밤마다 쉴새없이 떠들어대던 전화로부터 천천히 작은 구슬들이 모이고 모여 산을 이루었나보다.
그렇게 자리에서 나를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가며 부끄러워 하기도 하고, 박장대소도 하며 가끔은 쥐구멍에 숨고싶은 옛 이야기도 나온다. 이 상황이, 누군가를 닮아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이미 닮은 사람처럼 됐는진 모르지만 그 아이가 말해준 회식때 본인 모습과 똑 닮아있단걸 글쓰며 알았다.
다들 나의 변화가 좋아보인다며 사람이 이렇게 변할수도 있냐며 하지도 않는 연애를 칭찬하고 응원해주는데 아무말 못하고 술잔과 물잔으로 입을 가리며 이야길 피하다가 그렇게 자리를 파했다.
덕분에 사람이 됐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