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6, 숨어있던 것이 깨어나는 날

💃🏻🐆,🌎::경칩,제철음식

2023.03.05 | 조회 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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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밋

동갑내기 30대의 좌충우돌 각자도생 일주일 취재기

💃🏻🐆 멋장이미식가 Kelly, 🌎 미라클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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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none

경칩이 되면 삼라만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속담이 있어요. 하지만 경칩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개구리라 경칩에는 개구리 울음점을 칩니다. 이전에 레터에 적었던 다른 절기의 점과 다른 점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어떤 자세였느냐가 중요하다는 부분이에요. 서 있으면 그 해에는 일이 많아서 바쁠 것이고 누워있었다면 편안하게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만약 여럿이서 들을 때 앞에서 들으면 일 년 내내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뒤에서 들으면 정 반대라고도 해요. 경기도 광주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말은 조금 달라서 ‘드러누워’ 있으면 일 년 내내 몸이 아프고 앉아서 들으면 건강하다고도 합니다. 민속학으로 파고들면 끝도 없겠지만, 저는 확실히 경기도 광주시에서 살 수 없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그 게으른 사람은 최근에 슬램덩크 OST와 유튜버들이 만든 플레이리스트에 푹 빠져 있어요. 맛없는 저렴한 와인에 물과 얼음을 타 먹고 2만원이 안 되는 위스키를 사서 얼음 위에 콸콸 부어 느긋하게 먹는 걸 즐기고 있어요. 이 레터를 다시 시작하며 절기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지구촌 명절도 소개하자고 했지만 역시 이제 농경사회로부터 너무 멀어졌을 뿐 아니라 노인이 되어도 도시에 살고 싶은 저에게 농경사회 절기는 너무 멀어졌다는 걸 실감하고 있지요. 정작 지금은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너무 나빠 두통에 시달리는 주제에 말이에요.

주말에 일정이 없으면 하루는 종일 바닥에 신체 한 면은 붙여 놓고 하루는 일도 하고 책도 읽으려 카페로 나갑니다. 일을 좀 줄이고 여유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동의하고 그래야 여유가 생겨 적당한 선 안에서 대응도 되고 창의적인 해결책도 나온다는 의견에 드라마틱하게 동의합니다. 십년 이상 안 해본 앞구르기도 보여드릴 수 있을 정도예요. 하지만 어딘가 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제 엉덩이나 등을 늘 후려치고 있어요. 저는 그게 알아서 잘해, 라는 방식에서 받는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알아서 잘해, 하지만 잘못하면 혼나는 거야. 이 명제가 당연한 사회에서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은 상태로, 모두 함께 살아가는 집단 안에서 나만의 돛을 세우고 바다를 항해해 나가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당장 콩가루인 우리 집을 보며 생각하는데, 알아서 잘해, 에는 당신과 내가 서로 바라는 게 있는데 우리가 그걸 서로 수행할 수 있을지는 모르니 합의하자는 전제와 개념 설정 부분이 우선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는 내 생각대로 잘하는 일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은 미뤄둘 수 있습니다. 그럼 상대는 상대대로 쟤는 대체 왜 저런 인간인가, 하고 인간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며 다른 부분을 고려해 꾹 참는 시간이 그 안에 쌓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게 티가 안 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둘은 서로를 부정적인 인간 그 자체라고 여깁니다. 장점은 지워지고 단점이 부각됨에 따라 서로가 서로에게 정말 그런 인간임을 증명하듯 적당한 행동과 태도를 보입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에요.

하지만 전제부터 다시 되짚기에 이미 감정의 골이 쌓였을 뿐 아니라 대화를, 더 나아가 상종하기를 포기했다면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것보다 쉬운 건 남 탓입니다. 쟤는 대체 왜 저래, 쟤는 저래서 문제야, 쟤는 저 모양 저 꼴이라 상종을 못 하겠어. 익숙한 문장들이에요. 함께 지내는 강아지 한 마리 마음도 이해 못 하는 저인 만큼 인간 셋은커녕 둘만 모여도 두통이 절로 납니다. 늘 뭐가 문제인지, 본질이 뭔지, 상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어렵습니다. 그래서 슬램덩크에 푹 빠져 있어요. 모두가 명확한 동기와 목적을 지니고 있어 디테일한 변화들이 읽히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르게 보이는 데다 푹 빠질 수 있지요. 게으른 사람이니 인생이 단순하고 편안하면 좋겠지만, 그건 제게 건강한 삶이 아닌 것 같으니까요. 제 삶은 조금 불편하고 복잡하게 두고 슬램덩크를 또 보러 가야겠습니다.

 


🌎_돌고돌고

어른이 되면 어릴 때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나는 기존에 겪어온 시간이 있기에 그에 비례해 현재를 짧게 느끼는 것이 아니겠냐고 생각했다. 만 6년을 산 사람에게 한 달은 인생의 96분의 1이지만 만 30년을 산 사람에게는 360분의 1이다.

얼마 전에는 조금 다른 의견을 들었다. 의견인지 연구 결과인지는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는 세계와 사회에 대해 배워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하루하루 새롭고 인상 깊은 사건을 겪기 쉽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배움을 쌓아가다 보면 오늘 일어난 일이 예전에 일어났던 일과 크게 다를 바 없고,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평이하게 흘러가고, 그 기간이 기억 속에 더 짧게 체감된다는 것이다. 이 역시 그럴듯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하루하루 무언가 기억에 남을 일을 겪으며 산다면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다는 느낌이 아니라 설렘과 놀라움과 어린 시절과 같은 충실함으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실내에 박혀서 일만 하다가 보니 어느새 계절이 크게 변해 입고 나온 옷차림이 한낮에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더웠던 지난 몇 년과는 달리, 매일 변하는 하늘과 나무를 느끼고 만끽하며 산다면.

요즘 시대 소시민에게 가장 쉬운 것은 역시 뭔가를 사먹는 것이라, 한 3년째 이 시기에는 고로쇠나무 수액을 사고 있다. 사실 구독자에게도 추천하고자 했다면 저번 주 레터에 말했어야 했을 텐데. 생각 못 하고 있다가 2월 말임을 깨달았을 때 인터넷 주문했더니 다음 날 바로 도착했다. 경칩에는 얼음이 풀린 시내에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나 도롱뇽이 낳아둔 알을 보양식으로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해서 비슷하게 생긴 타피오카 펄을 섭취한다고 버블티를 사 먹기도 했었다. 봄나물이 나오면 달래도 먹고, 시장에 갔다가 딸기가 싸면 다라이로 사 와서 먹고. 쉽고 단순한 일들뿐이라 약간 한심한 기분도 들지만 이런 식으로 손으로 짚어 더듬대며 감각하듯이 지지부진하게 세월을 느끼고 싶다.

 


✒ 이달의 편집자 🌎

농놀(농구 놀이) 좋죠
기온으로도 볕으로도 다가오는 봄을 느끼지만 편집자는 간지러운 목과 코와 눈으로 2주 전부터 계절이 변함을 알고 있었답니다. 구독자도 알레르기 조심, 감기 조심하세요! 기분을 좋게 바꿔주는 일이 있다면 꼭 해보고 넘어가는 한 주가 되자구요.

 

노리밋에서는 두 명이 일주일에 한 번 한 주를 살며 경험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구독자님, 다음 주에도 같이 놀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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