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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나를 사랑하는 마음의 엉망진창
그렇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내 고집을 사랑한다. 내 아집을 사랑한다. 도망가지 못하는 나도, 도망가는 나도. 공격적인 나도, 돌아서기도 전에 스스로를 경멸하는 나도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아주 느리게 바뀌기도, 변하지 못하기도 해서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를 쓰레기 버리듯 구겨 던져버린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나를 밀고 끌며 나와 함께 구덩이에 종종 빠진다. 우리는 모두 눈을 떴다고 생각하지만 주로 감고 있으며 경청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 듣지 못 한다. 우리는 늘 서로 대화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언어는 항상 어긋난다. 나와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 뿐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언어를 뱉고 동작을 수행하는데 거침이 없으며 나와 내가 합치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나를 늘 비난한다.
한 문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초점은 늘 ‘나’다. 우리도 저희도 모두 ‘나’다. 하지만 그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은 타인에게서 나온다. 타인에게 인정 받고 싶고 타인이 보기에 절대적으로 괜찮고 뛰어난 사람, 우월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과 열정, 그리고 기대.
정말 진정성 있게 고민하면 우주가 가이드라인을 주는 걸까, 아니면 별자리의 흐름에 현재 수호성이 있어서 도움을 받는 걸지도. 앗 아니면 곧 설이라 조상님들이 도와주시는 걸지도 모른다. 이 모두일지도 모르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번주 마지막 요가에서 나는 모두가 자세를 취하는 가운데 계속 실패했다. 한 다리도 들지 못 하고 최종적으로는 선생님이 잡아줬는데도 옆으로 쿠당탕 넘어졌던 시간. 혼자서라도 연습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인사를 나눴을 때 선생님이 먼저 다가왔다. 손만 짚어보세요. 모든 단계를 해체해서 밟아가면서도 손 짚는 데만 집중하세요. 그리고 성공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가면서 마음이 급한 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이전에도 예전에도 더 초기에도 말씀하셨던 내용이었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노 낫 네버. 바꾸려고 하지도 잊으려고 하지도 말고 인정해라. 내전 발발 대신 수많은 나를 수용해라. 그리고 지금에만 집중해라. 요가할 때도 일할 때도, 언제나. 잘하고 싶다면 왜 잘하고 싶은 건지, 빨리 완성하고 싶다면 왜 급한 지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그 후에 돌아온 사무실에서 대기 시간이 발생했을 때였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게 불안에 대한 강연을 추천했다. 정말 맥락도 없이 갑자기. 한 생명체는 일정 기간 안에 수용할 수 있는 희노애락의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 그 순간을 감당할 수 없다면 도망쳐라. 감각은 기분과 직결되어 있다. 날이 좋으면 조금 더 마음이 쉽게 열리고 몸을 크게 피면 마음이 조금 더 담대해진다. 그리고 누구든 거절부터 당하면 일단 불쾌해진다. 우선 상대를 긍정하자. 오돌오돌 추운 사무실에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전의 요가로 마음이 풀어져 있어서 그런지 한 걸음 물러나 숨을 크게 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점검해보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작년까지 나는 천재지변 같은 이슈에 휩쓸리며 날아다녔다. 늘 새로웠다. 하지만 올해부터 갑자기 많은 것이 변했다. 이제 맨땅에 헤딩하듯 하나 알아봐서 하나 처리하는 시점이 아니다. 고민과 체계와 원칙이 필요한 시기. 이제 우선순위와 업무 범주가 명확해져야만 한다. 분명 무수히 많은 신호들이 있었을 텐데 나는 이제서야 그걸 깨달아가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들 사이로 몇 번인가 내가 나에게 말했겠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하는 말도 품는 마음도 엉망진창이라 이제서야 문득 통했다. 전등이 잠시 번쩍이는 순간이 왔다. 내 동력을 인정하고 하지만 그 동력이 나를 갉아먹고 있음을 인정하고 내가 스스로를 엉망으로 생각한다는 것도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도 인정하고 나면 온전한 사랑을 만들 수 있을까.
🍷_근원적 질문
친구들과 오랜만에 연남을 방문했다. 작은 골목들 사이를 거슬러 올라가 걷다 경의선 책거리를 걸었다. 문득 지나간 가게의 향이 좋아 들어간 곳은 그랑핸드. 스토리텔링이 흥미로운 쇼룸이었다. 직원 모두가 친절했고 각양각색의 향이 가득했다. 설명으로 고른 규장과 향으로 고른 비올레뜨 사이에서 고민하다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나왔다. 쓰던 향수가 거의 바닥을 보이던 시점이었는데도 그랬다. 나오는 길 친구에게 말한다. 내가 향수를 써도 좋은 사람인지 모르겠어. 나한테 향수는 왜 필요할까?
향수를 쓰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의 기호의 영향인 셈이다. 나는 향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을 향으로 기억하는 편이긴 하니 지나친 억지도 아니다. 첫사랑의 샴푸 냄새, 친구의 옷감에서 나는 냄새. B의 냄새. 계절의 냄새와 심지어는 기분의 냄새까지. 그 많은 향 중 어디에도 나 자신의 냄새가 없다.
비록 화장실과 방의 디퓨저를 분명하게 분리해가며 민감하게 구는 편이지만, 나는 나 자신의 향에는 한없이 무디다. 남에게 나는 향. 나의 공간에 나는 향. 그런 것들만이 중요한 건가 싶기도 하다. 자신의 살갗 향을 맡는 일은 드물기도 하고, 후각은 금방 피로하고 익숙해져 스스로 물리기 마련이니까. -그럼 향수를 안 사도 되나? 그런데 뿌리는 그 순간의 기쁨이 쉽게 포기가 되지 않는걸?- 쓰는 향수는 그때그때 다르고 –향수를 사는 무렵의 내 기분에 따라 다르다.- 나에게 어울리는 향은 화자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에게 나는 우디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꿀이나 바닐라 쪽에 가깝다. 그랑핸드를 함께 간 친구들 사이에서도 갈렸다. 풀 향이 어울린다는 쪽과 시나몬과 우디가 어울린다는 쪽. 내 취향은 꽃이나 과일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흥미롭지 않은가. -우디와 머스크는 역시나 취향이 아니다-
향수를 처음 사기 시작한 건 내가 타인을 향으로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나도 누군가에게 어떤 향으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엔 그때그때 사는 향이 달라지니 그냥 뿌리는 순간의 내 기분에 조금 더 무게가 기울었다. 내 향수의 역사가 베르사체에서 지미추로, 구찌로 갔다간 그리스를 다녀온 친구가 날 생각하며 조향했다는 향수 –꿀과 버터리한 향이 물씬 풍기는 겨울 향수-로 옮겨간 것만 봐도 그렇다. 시향 결과 바이레도에서도 딥디크에서도 풀과 꽃과 과일에서 취향은 벗어나지 않는 편이다. 이 정도가 되고 나니 내가 무얼 사도 비슷한 계열을 고르는 게 아닌가 싶어진다.
그럼 굳이 비싼 향수를 고를 필요가 있나? 생각이 들기 시작하다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나 스스로 질문한다. 나에게 향수가 필요한가? 나의 이 단순한 기호가 그럴만한 값이 있던가? 향수란 무엇인가?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그랑핸드의 결제창을 띄워놓고 나에게 구구절절 설득을 하다 보니 또 향에 대해 사유를 한껏 하게 됐다. 그나저나 샌달우드 베이스와 패츌리 베이스 중 고민이네. -고민 끝엔 역시 결제뿐이다.
✒ 이달의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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