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다정보스 동호수와집, 💃🏻🐆 멋장이미식가 Kelly, 🍷 게으른개미 비언어 🤎 그리고당신, 구독자
🐴_휴재
오늘의 안부를 묻습니다.
💃🏻🐆_돌고 도는 포기, 시도, 다시 시도하기
내 방에는 버려진 현수막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주머니 하나가 있다. 얼핏 보면 길가에 있는 쓰레기통처럼 보이기도 하는 주머니인데 나는 여기 음료에 달려 나오는 빨대를 모으고 있다. 이 주머니에는 집에서 마시는 매일유업의 두유 빨대도 들어가지만 가장 많이 들어가는 건 회사에서 가지고 온 빨대다. 회사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정말 터무니 없을 정도로 많다. 카페에서 일회용 잔에 음료를 담아오는 회수가 인당 하루에 2~3잔, 구매한 물건은 대부분 비닐이나 플라스틱으로 이중 포장되어 있고 사무실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일회용 그릇은 인당 5~6개 이상 발생한다. 휴지와 물티슈 쓰레기는 집계할 수 없을 만큼 쉽게 많이 쓰이고 있다. 다회용 그릇 쓰기를 권장하고 다회용 식기나 컵을 비치해두어도 쓰레기는 적잖이 발생한다. 쓰레기로 내보내는 편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실험실에 있는 친구의 말은 더 놀라웠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쓰레기들을 내보내는데 대체할 수 있는 선택지 조차 없다고.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들이 정확히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맘 편히 먹고 버리듯, 우리는 우리의 풍요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쉽게 쓰레기로 내보낸다.
등산할 때의 준비물 중 하나는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봉투다. 어제는 자그마한 가방을 매고 북악산-인왕산을 다녀왔다. 혜화문에서 시작해 돈의문까지 이동한 길. 이 날은 토레타 병 하나, 물티슈 하나를 주운 게 전부였다. 쓰레기는 그게 전부. 하지만 이 날 인왕산에서 본 서울은 무채색 덩어리였다. 숲도 공원도 보이지 않고 인간들로 들어찬 건물만 바글바글. 돈의문을 올라가는 길에 본 서울은 더 끔찍했다. 숲을 밀어버리고 짓고 있는 거대 아파트 단지.
나는 등산할 때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계단이 정말 끔찍하게 싫다. 청계산을 가자고 했을 때 기뻐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 안다. 내가 지금 어쨌든 몸 누일 공간이 있고 밥벌이할 일이 있는 데서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계속 찾아가려고 한다. 내가 감수할 수 있는 불편, 내가 포기해야 하는 풍요, 더 멀리 함께 갈 수 있는 적정선을 계속 찾으려고 한다. 나는 작지만 한 두 명씩 함께 하게 되기를 바라고, 계속.
🍷_김치우동과 나와 여행
며칠을 끙끙 앓았다. 범인은 짠맛도 매운 것도 단 것도 아닌 칼칼한 맛의 진득하게 끓인 투다리식 김치우동이다. 지난번에 면식 어쩌구 언급한 것과는 달리 우동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절대적으로 씹기 힘들고 집기 힘들어서이다- 그런 것도 다 잊을 만큼 간절함에도 확산하는 코로나가 무서워서 먹지 못한 탓이다. 우동에 진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원하는 건 따로 있다. 바로 소주. 소주와 김치우동. 그, 별맛도 없는 얇은 오뎅을 썰어 넣어 모든 재료가 척척하게 짠, 그 우동을 앞에 두고 무한으로 날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소주.
술을 좋아하냐는 말에 긍정하지 않은 적 없다. 잘 마시냐는 말엔 거의 사양한다. 겸양이 아니라, 정말로 잘 마시는 건 아니다. 영원히 마셔도 취하지 않는 간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나 좀 마신다’ 할 자격이 생기는 것 아닌가. 그러나 나는 일정 주량에 달하면 취한다. 취해선 누구 욕을 하건 아무 말도 안 하건 쓸데없는 말을 하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아무 말이나 하건. 하여튼 그렇다. 간이 술을 소화하는 동안 뺨과 손바닥은 종종 불에 탄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마신다. 왜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맛있으니까.
아무렇게나 막 퍼먹던 어린 시절은 지나갔다. 취향에 따라 마시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데, 시작은 맥주였다. 일상적이고도 분명한 주종 아닌가. 대부분의 맥주파들이 그렇듯, 나 또한 국내 맥주에 이어 수입 맥주로, 그다음엔 국내 수제 맥주에서 해외 양조장의 탭으로 모험을 떠났다. 여행지를 가면 그 나라의 식습관과 기후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게 맥주다. 더운 나라의 맥주는 탄산이 강하고 청량하다. 추운 나라의 맥주엔 향이나 맛이 들어간다. 그렇게 여기저기 헤매며 찾은 나의 맥주는 의외로 간단했다. 밀맥주와 라거와 흑맥주. 어느 곳엘 가도 실패하지 않는 나의 라인업이다. 실은, 그 무궁무진하다는 IPA가 입맛에 영 별로인 탓이 크다. 향이 강한 맥주라니. 벌컥벌컥 마셔야 묘미인데.
그렇게 맥주 외길을 걷던 나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 이름도 달콤한 와인. 칠레 와인에서 이탈리아를 지나 프랑스로. 그리곤 신대륙을 건너 내추럴 와인으로 옮겨가는 여정은 아주 황홀했고, 아주 힘겨웠다. 유명하다는 건 왜 이렇게 비싼지. 블라인드 시음회를 가선 입맛에 맞는 족족 고액의 바틀이라 울면서 마음을 접길 수차례. 나는 어른이 되어가듯 입맛과 와인 사이를 오가며 달래야 했다. 와인은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았다. 물론 나는 공부와 친하지 않았고, 입맛대로 마셔댔다. 레드는 부드럽고 가볍게 마시는 쉬라즈 쪽이면 불패였고, 화이트는 상큼하고 달지 않은 소비뇽 블랑이 언제나 옳았다. 디저트는 로제보단 아이스와인 쪽이었다. 사고자 할 땐 먹던 것들을 사는 편이지만, 꼭 식당에선 처음 보는 라벨로 도전을 해놓는다. 세상은 넓고 좋은 와인은 많다. 이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현재. 돌고 돌아 나는 소주에 정착한다. 잠시 위스키–그 진득한 색과 꿀과 같은 단맛, 구워낸 빵 같은 고소함이라니!-로 빠질 뻔도 했지만, 진로 화요를 마시고는 이내 돌아왔다. 어떻게 먹어도 부담이 없을 뿐 아니라, 화요 같은 증류식 소주엔 토닉워터라는, 함께라면 안주가 필요 없는 친구도 있다. 향도 강하지 않고 맛은 적절히 달큼한 데다가 차가우면 차가운 대로, 미지근하면 미지근한 대로 맛있다. 다른 주류에 비해 금액도 적당하다. -열량은 주류 중 가장 높다고 하지만 그런 걸 따지기 시작하면 술 못 마신다.- 왜 소주를 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단 한 번도 그런 의문을 가져 본 적은 없지만, 만에 하나 가졌어도 이 정도의 길고 길었던 술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올 자리는 결국 소주밖에 없었을 것이다.
혼자 살아 그런가, 혼술이 넉넉히 늘어난다. 중독인지 아닌지 알 방법은 뭘까. 고민하면서 술 생각을 또 해본다. -참고로 오늘은 술 얘기를 쓰기 위해 드물게 술을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아. 김치우동. 소주. 또 마음이 적적해진다.
✒ 이달의 편집자 🍷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