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것을 해체해 새로운 것을 만들 때

19번째 오브레어입니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

지난 달에 오브레어를 왜 발행하게 되었고, 어떤 마음으로 적고 있는지 (무려)인터뷰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는데요. 인터뷰가 공개된 이후에 새로 구독해주신 분들이 꽤 있어서 조금 설레고 벅차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제 진짜(?) 잘 해야 된다는 부담을 안고 오늘 레터를 쓰고 있습니다.

 ‘원래는 10번째 레터까지 보내고 리뉴얼 하려고 했다..’는 얘기를 전에도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 왠지 10번 보내고 나면 고칠 점이랄까, '개선점'이 보일 것 같았거든요. 그렇지만 10통의 레터를 보내고 나니, 오히려 무엇이 개선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조차 명확하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대적인 리뉴얼 대신, 열한 번째 레터부터는 쫌쫌따리(?)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는 방식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마 오브레어를 초반부터 받아보신 분이면 ‘얘가 뭔가 조금씩 바꿔가면서 하고 있긴 하다..’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받으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매주의 레터를 쓰는 과정을 돌아볼까요? 우선 목요일이 가까워지면 일단 어떤 콘텐츠 얘기를 할지 생각합니다. >> 콘텐츠를 대략 정하면 어떤 식으로 쓰는 게 어울릴지 생각하고요. >> 그래서 어떤 콘텐츠를 어떤 포맷으로 하겠다를 정하면 >> 다음으로는 어떤 건 유지하고 어떤 것을 새롭게 해 볼지 생각해요.

각각의 과정에서 결정을 내리는 기준은 ‘내가 쓸 수 있는지’, ‘계속 쓸 수 있는지’, ‘쓰는 동안 재미있을지’ 같은 것부터 ‘더 많이 읽히고 회자될 수 있는지’같은 것들도 있지요. 이 레터를 저의 사이드 프로젝트로 보내는 한, 이 기준들 사이의 밸런스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겠고요!

디즈니는 지금 지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고, 넓은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 중 하나인데요. 그래서 디즈니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든다는 뉴스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습니다. 그중에서도 <미녀와 야수>, <알라딘>이나 <뮬란> 같은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작품들은 제 또래 관객들에게 꽤 많은 관심을 받는 것 같아요. 아마도 어릴 적 일요일 아침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친숙한 스토리와 '실사화'라는 새로운 표현 방식이 콘텐츠를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

<크루엘라>는 좀 다르긴 합니다. 어릴 적에 봤던 <101마리 달마시안> 시리즈에 크루엘라라는 캐릭터가 있기는 했지만, <크루엘라>는 스핀오프 프리퀄이니 전에 없던 이야기고요. 또 픽션의 세계가 아닌 실제 세계를 배경으로 한 첫 번째 실사화 작품이래요!(1970년대 런던이 배경입니다) 그리고 <101마리 달마시안>은 애니메이션으로 기억하는 분도 있겠지만, 귀여운 달마시안들이 왕창 나오는 실사 작품으로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익숙한 방식의 실사화 프로젝트는 아닌 셈이죠!

이렇게 뭔가 조금 새로운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크루엘라>를 딱히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어요. 그런데 개봉하자마자 본 지인이 이거.. 대작의 냄새가 난다..고 증언하는 걸 듣고 보게 됐습니다.

<크루엘라>는 원래 '에스텔라'라는 이름을 가진, 머리카락 색깔이 흑백 반반인 야무진 어린이가 엄마를 잃고, 거리에서 만난 친구들과 살다가,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이룰 기회를 잡게 되고, 그와 동시에 엄마의 죽음에 얽힌 진실과 맞닥뜨리면서 '크루엘라'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예요.

영화에는 여러 가지 미덕과 새로운 점들이 있었는데요, 우선 크루엘라가 최근 유행하는 사이코패스 스타일의 빌런이 아닌 점이 좋았습니다. 이게 빌런이라고 불릴 정도인지 의심이 갈 만큼 크루엘라는 그냥 건실한 패션계 종사자더라고요.

비록 에스텔라 시절에 생계를 도둑질로 꾸렸고, 흑화한 뒤에는 잠시 친구들을 하인처럼 부려먹기는 했기로서니.. 이게 그렇게 나쁜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작부인에게 복수하겠다면서 이번 쇼에서 부셔버리겠어...! 하길래 진짜 해칠 계획이라도 하나 했더니.. 작업실로 뛰어가서 밤새 재봉질하고.. 아이디어와 파격으로 무장한 신진 디자이너로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보던데요? 지금까지 '역대급 빌런'이라면서 별 이유도 없이 일단 죽이고 베고 쏘고 하던 것보다 훨씬.. 인간답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그것을 해 내는 크루엘라가 재능이 넘치는 똑쟁이 여성인 점도 좋았습니다. 패션 디자인에 대한 능력 뿐 아니라, 그걸 세상에 어떻게 보여줘서 목표한 바를 이룰지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그냥 자기 삶을 너무 열심히 잘 사는 여성인뎅..? 

그러고 보니 <101마리 달마시안> 시리즈 속 크루엘라를 '빌런', '악녀'로 만든 특징들 - 동물 학대, 결혼 안 함, 삐쩍 마름 등 - 은 <크루엘라>에서 대부분 크루엘라가 아닌 바로네스 남작부인 캐릭터에게 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1세기에 맞게 '자아 도취' 정도로 정리되어서, 사람을 막 죽이는 '사이코패스' 스타일 빌런의 특징 몇 가지와 함께요.

이 밖에도 <크루엘라>는 이야기 기획 단계부터 디즈니랜드 한 구석과 뮤지컬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착실히 한 작품인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생각하면 <크루엘라>가 <101마리 달마시안>을 모르는 어린이-청소년 타겟인가 싶고, 영화를 꽉 채운 패션과 펑크 락, 스토리를 생각하면 젊은 어른들이 타겟 같기도 하고요. 역시 디즈니의 '순수한 힘'은 모두를 아우를 수 있구나..(?)하는 생각도 들고요.

1960년대에 만들어진 작품 속 빌런의 스핀오프, 프리퀄을 2020년대에 기획한 이유는 뭘까. 그리고 크루엘라와 에스텔라, 바로네스 남작부인을 조형한 기준은 뭘까. 목표는 잘 달성되고 있을까. 그런 것들이 궁금해지는 영화였습니다.

네..

아니 뭐, 그것도 다 떠나서 눈과 귀가 즐겁고 적절한 대중성을 갖춘 이야기에요. 만약 구독자님도 지난 주의 저처럼 '<크루엘라> 딱히..'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단호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재밌어요 진쨔. 🦹‍♀️

🌻 구독자님이 크루엘라를 보셨다면 or 아직 안 보셨다면

🕯 바로네스 남작부인.. 어디서 많이 뵌 분인데..

👠 엠마 스톤하면.. <라라랜드>.. 밖에 모르겠다면

인스타그램 @__ofcl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