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나에게 셜리고 나도 너에게 셜리고

클레어입니당.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밀린 잠을 자느라 이틀 늦게 왔써효. 그리고 제목도 몰래 바꿨는데 이건 나중에..

모두 어디서, 언제 이 메일을 읽고 계신가요? 가족이어도 5인 이상이면 한 자리에 모일 수 없는 엄혹한 시절이라지만 그 덕에(?) 편안하고 안락한 사람과 연휴를 보내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1년에 몇 번 없는 명절인데 좀 아쉬운가 싶은 마음과 함께 말이죠.

저는 저 혼자 사는 집에서 이 메일을 쓰고 있습니다. 계속 가족들과 함께 살다가, 작년 늦여름부터 예상하지 못한 재택근무가 길어지고, 2.5단계 거리두기로 카페나 공공시설도 이용할 수 없게 되면서 독립할 공간을 찾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다 지금의 집을 찾아 6개월 째 머물고 있습니다. 굳이 같은 서울 안에서, 게다가 멀지도 않은 가까운 서울 안에서 기어이 독립을 하게 된 건 재택근무의 이유도 컸지만, 저에게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거든요. 바꿔 말하면 월세를 투자해서라도 나를 바꾸고 싶었다, 라고도 말할 수 있겠어요. (👀...)

센세, 이게 혹시 세 가지를 동시에 해야된다는 건가요..? 라고 묻고 싶을 만큼 저는 아직은 크게 바뀌지는 않았어요. 아니면 '덜' 바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같은 서울 안, 머무른 적은 없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지나다니던 동네로 이사를 왔는데. 낯설지만 '적응'이 필요할만큼 새로운 곳은 아니죠. 음식물쓰레기를 봉투에 버리는지 용기를 사야 하는지, 버리는 방법을 알아내느라 고생을 좀 했지만, 이 동네라고 음식물쓰레기를 일반쓰레기에 넣어서 버리는 건 아닐테니까...

언어가 통하지 않고 나와 같은 얼굴 색을 가진 사람이 다수가 아닌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게 되면 사람은 좀 바뀌는 것 같습니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말이에요. 없던 용기가 생겨나기도 하고, 있던 용기도 없어지기도 합니다.

박서련 작가님의 장편소설 <더 셜리 클럽>은 2020년 8월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29번째 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더 셜리 클럽'은 호주에 실제로 존재하는 모임의 이름이라고 해요. 작가님이 멜버른 커뮤니티 페스티벌 퍼레이드에서 '셜리'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들의 모임인 '더 셜리 클럽'이 행진하는 것을 보셨고, 당시 작가님도 '셜리'라는 영어 이름을 쓰고 있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지켜봤던 기억이 이 이야기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스무 살의 셜리는 낯선 멜버른에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더 셜리 클럽'에서 만난 셜리 할머니들과 소중한 시간과 우정을 나눕니다. 어쩌면 그래서 그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과 상황을 마주칠 때도 더욱 용감한 선택들을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그냥 '나'이기 때문에 나를 받아들이고, 보살펴 주는 사랑의 연대라니. 책을 처음 다 읽고 덮었을 때는 뭔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보라색 안개에 들어온 느낌이었어요. 아마도 셜리를 향한 '셜리' 할머니들의 연대가 따뜻하고, 든든하고, 부러운데, 한편으로는 그만큼 이것은 엄청나게 이상적인 것이다, 세상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은 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밤, 문득 구글 맵을 열어서 가고 싶은 곳 -> 갔던 곳 -> 그리운 곳 순으로 스트리트 뷰를 눌러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리운 곳들은 다 '받아들여졌던' 곳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10명 중에 7명은 무관심하고 2명은 나를 싫어하고 1명은 좋아한다는데, 왠지 그 1명들만 모아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요. 힙하고 느낌있는 인테리어에, 술도 맛있고 혼자 앉아만 있어도 왠지 좋았던 곳들도 있었는데, 그것보다도 뭐라도 하나 더 좋은 거 알려주려고 손짓 발짓하던 노력과 선한 호기심과, 좋은 것을 나누려는 선의가 훨씬 더 길고 깊게 기억되더라고요. 그런 건 다 내 착각이고 순간의 감정일 뿐이야(?) 라고 부정했던 게 허망할 정도로요.

어쩌면 더 셜리 클럽은 셜리에게 셜리 할머니가, 혹은 내가/네가 셜리가 아니어도 상대가 상대라는 이유만 가지고도 연대가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되새기게 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왠지, 가족과 함께 지낼 시간에 가족과 자의반 타의반 떨어져 있는 지금. 이방인 아닌 이방인처럼 살고 있는 이 시간에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이야기예요.

인스타그램 @__ofcl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