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Out of Office 입니다

여러분은 제주도에 언제 처음 가셨어요? 아주 어릴 적, 사진으로만 기억나는 유채꽃밭 속의 나, 여미지식물원(!) 입구 사인에서 찍은 단체사진, 천지연폭포, 충격적인 도야지들의 생활환경을 보여줬던 성읍민속마을(!!) 같은 것들..이 기억나신다면 아마 저랑 동년배이실 확률이 높은 것 같고요. 👀

혼자 여행을 갈 수 있게 된 즈음에는 월정리에 카페들이 생겨나고, 아프리카? 산티아고? 뭐 그런 4음절 짜리 외국 지명을 딴 파티 게스트하우스가 성행하던 시기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반대급부로 조용하고, 파티 없는, 뭐든 작고 섬세하고 어딘가 일본 청춘영화의 소품들을 가져온 것 같은 숙소들도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부터 제주 여행에 재미를 붙인 것 같아요. 그 이후로 5년 좀 넘는 동안 10번은 온 것 같은데요. 운전 면허가 없어서 뚜벅이로 다녀야 하는 주제에 많이도 다니지 않았습니까? 제주 나한테 상 줘 얼른..

제가 제주에 가는 재미를 붙이게 된 데에는 협재에 있던 게스트하우스 쫄깃쎈타의 역할이 컸습니다. 2015년 겨울 연말, 특히 12월 31일과 1월 1일을 쫄깃에서 보냈는데, 술도 많이 마시고(...),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도 잔뜩 만나고, 그 사람들이랑 아침에 메뚜기슾(메가쇼킹이 끓여주는 오뚜기 스프) 때리고, 해장국도 먹으러 가고, 사람들을 따라서 한라산도 올라갔거든요! 언제 어디서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랑 행복하겠나. 제게 엄청나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어요.

쫄깃에 자주 가는 순으로 줄을 세운다면 저는 100등 안에도 못 들 것 같지만, 그래도 나름 사계절의 쫄깃을 다 봤더고요. 어느 여름에는 같은 방을 쓰는 언니들을 따라 1년에 몇 주만 연다는 물찻오름에 올랐고(+양발의 엄지발톱 두 개를 다 해먹었으며), 어느 봄엔 전날 같이 술 마신 인연으로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비양도도 갔고요(+봄볕에 뒷목을 새카맣게 해먹었으며). 어느 겨울엔.. 추워서 술 마시러 나가는 사람들을 안 따라가고 거실에 남아 책을 읽었는데, 남자방 게스트분의 쪽지(!!)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우리 방에 있는 어떤 분 전해주라고.. 제가 그 쪽지를 읽었을까요 안 읽었을까요, 전했을까요 안 전했을까요? 호호

그리고 쫄깃에서 얻은 것이라면 역시 동네맛집, 먹거리맛거리들입니다. 쫄깃에 안 갔더라면 한림 다운타운(..)에 밤에만 여는 비타민국수가 있는지, 거기 아강발이 맛있는지, 풍년순대랑 만나식당 중 어디가 더 순대 맛집인지, 삼일식당부터 별난닭곰탕까지 밤새 고생한 간에게 사죄할 수 있는 맛있는 해장국집들이 있는지, 그리고 삼겹살에 고사리를 같이 그것도 튀기듯이 빠삭하게 구워 먹으면 엄청난 맛이라는 것까지..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또 협재에서 머물다 보니, 근처에서 혼자인 시간도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금능에 있던 카페 그곶(지금은 이사하신)도 기억이 나고요, 한남동에서 자주 가던 카페 앤트러사이트의 한림점도 자주 갔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루틴(?)은 버스를 타고 몽상드애월이 있는 한담해변 쯤에서 내려서 한담해변산책로를 걸어 곽지과물해변까지 걷는 거에요. 그리고 카페태희에서 튀김 한 잔에 맥주를 두 잔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협재에 갔을 땐 반대 방향으로 갔는데, 아침 일찍 모슬포항 쪽으로 가서 가파도에 갔다가 모슬포에서 고등어회를 먹고 돌아왔습니다. 차도 없이 참 알차죠?

쫄깃과 협재에 정이 붙어 서쪽만 파다가, 그래도 왠지(?) 좀 동쪽도 가야할 것 같은 때에는 플레이스캠프 제주에 자주 묵었어요. 그러고 보니 홈페이지에서 6박 예약하면 1박 무료인데.. 분명히 채웠는데 쿠폰은 온데간데 없네요. 뭐.. 괜찮습니다.. (우는 것 아님)

플레이스캠프는 숙박객들의 편의와 로컬 커뮤니티가 잘 어우러진 액티비티들도 많이 운영하는데요. 덕분에 혼자라면 못했을 밤에 오르는 용눈이 오름, 밤에 걷는 섭지코지를 경험할 수 있었어요. 같이 걸은 모르는 사람들과 플레이스캠프 안에 있는 바 스피닝울프에서 어색하고 즐겁게 맥주 한 잔하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도렐, 폼포코, 샤오츠는 말해 뭐하겠어요. 진짜 다 맛있어요. 샤오츠의 딴딴멘, 폼포코의 우삼겹떡볶스, 도렐의 모든 커피..

한 번은 플레이스캠프에 혼자 좀 오래 묵게 되어서 주변에 뭐가 있나 찾아보다가 성산포 성당에 가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인데, 여행만 가면 그렇게 하느님 보고 싶더라고요(?). 만약 성산 근처에 가시는 여행자 분이라면 꼭 성산포 성당에 가보시라고 강요하고 싶어요. 성산포 성당 뒤편에 십자가의 길이 있는데, 거기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 뷰가 정말 미쳤거든요(표현의 다소 불경함은 양해바랍니다..). 성당 뒷마당은 꼭 신자가 아니어도 가 보실 수 있으니까 꼭꼭 가보시길 바랍니다. 물론 성산일출봉에 오르는 것도 너무 의미 있지만, 아시죠 멀리서 볼 때.. 더 아름다운 거 👀

성산에서는 송당리, 종달리, 세화, 구좌도 가깝죠. 한 번은 풍림다방, 술의식물원, 친봉산장이랑 파앤이스트까지 해서 송당리에서만 반나절 있었는데 바쁘지 않은 비수기의 평일 오후라서 더 그랬는지 평온하고 고요해서 좋더라고요. 버스 시간을 맞추느라 오가는 길에 있던 책방무사에 들르지 못한 건 너무 아쉬웠지만요. 동쪽에 갈 때마다 맨날 먹는 건 미엘드세화의 당근케익. 그리고 김영갑갤러리두모악도 갤러리와 갤러리에 오가는 길까지, 고요하고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느낌이라 좋았어요.

제주 곳곳에 조금씩 이야기를 남겨두고, 세월이 쌓이고 나니 어떤 ‘곳’들은 없어지기도 합니다. 카카오맵에 수없이 많은 별과 하트를 찍어놨는데, 탭하면 데이터를 불러올 수 없다는 오류메시지가 뜰 때마다 마음이 철렁해요. 좀 보태서 얘기하면, 이랑 작가님의 <내가 30대가 됐다>의 마지막 챕터가 생각나기도 한달까요. 그냥 식당 하나가 또 없어졌네, 하고 즐겨찾기를 삭제할 수도 있지만 어느 별들은 오류가 떠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기억하면, 왠지 그 곳도 그대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드니까요. 😇 

지금은 없어졌지만😔 쫄깃쎈타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인스타그램 @__ofcl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