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 한 장 써 주세요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는 매월 한 번씩, 모든 직원들이 한 편의 글을 쓰는 '월간 안전가옥'이라는 웹 매거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요기를 클릭) 곧 공개될 2월 월간 안전가옥의 주제는 '나의 학창시절 콘텐츠' 인데요. 그래서 오랜만에 중고등학생 시절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그시절에 재미있게 봤던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뭐가 있었나 생각해봤는데, 실제로 뭘 봤고 어땠는지 보다도 누가 그 책을 빌려줬고, 누가 그 드라마를 좋아했고, 누구랑 그 영화를 봤는지 같은 게 먼저 생각 나더라고요. 확실히 학교에서 함께 생활한 친구들과 또래들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긴 했나봐요.

저에게는 거의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내내 몰래 스파이처럼 마음을 숨기며 좋아했던 친구들이 있었어요. (....라고 쓰고 지금 구독자 중에 실제 걔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있나 머리 굴려보는 중....) 그시절에는 왠지 학기가 끝나고 학년이 바뀌면 뭔가 한 번 '끝을 맺어야 한다는(?)' 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설익은 마음을 급하게 고백하기도 하고, 아니면 끝끝내 내보이지 않고 노래방 가서 빅마마의 <체념>을 부르며... 혼자 끝을 내기도 하고 말이죠. 저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먼 미래를 도모하며 중단도 종료도 없이 다음 학기로, 다음 해로 미루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흠.

뭐 아무튼 그 중 한 명과는 지지부진한 + 지난한 시간이 흘러, 지금은 연락을 안 하는데요. 작년에 대청소를 하면서 책상을 뒤집어 엎었더니, 걔가 군 복무 시절에 보낸 편지와 본인 사진이 나오더라고요. 한때 나름 열심히 없앴는데.. 살아남아있는(?) 편지라서 한 번 훑어보고는 그냥 다시 서랍에 넣었습니다.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걔 서랍에 내가 쓴 오래된 편지가 남아 있으면 어떡하지.....? 걔도 근데 나처럼 그냥 서랍에 넣었으면 어떡하지...?

짝사랑러에게 편지와 일기는 필수죠. 프로-짝사랑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라라진 송 코비는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 그 애 앞으로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그걸 부치진 않고 모아둬요. 하지만 라라진에게는 자나깨나 그녀의 행복만 바라는 그리고 추진력이 강한 동생 키티가 있었기 때문에.. 부치지 않았던 편지들은 어느 날 각자의 수신인 앞으로 날아갑니다. 언젠가는 보낼 수도 모르겠단 마음으로 적었지만, 그 때가 지금은 아니었던 라라진.. 이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을 수습해나가는 귀여운 여정이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 입니다. 

이 작품은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제니 한이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원작 소설이 3부작으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 작품의 흥행에 힘입어 다음 두 편도 영화화가 확정되었죠. 2020년에 공개된 <내사모남: P.S. 여전히 널 사랑해 To All the Boys: P.S. I Still Love You>와 올해 공개된 <내사모남: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 To All the Boys: Always and Forever>입니다.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은 2018년 여름에 공개되었는데, 제 주위의 정말 수많은 사람들과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 했었어요. 주인공이 아시안, 특히 한국계라는 설정이어서 마스크팩 부터 야쿠르트까지 미국 영화에서 흔히 보지는 못했던, 하지만 너무 익숙해서 반가운 아이템들이 나왔다는 점, 트위티를 닮은 라나 콘도어의 귀여움🥰, 노아 센티네오의 매력✨  같은 것들이 주로 화제에 올랐었죠.

그밖에도 라라진의 성격이 반영된 스타일이라던가(워커에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60년대부터 90년대 스타일까지 믹스매치한 것 같은 거), 오묘한 터키석의 색, 밝은 노랑과 핑크 등 특정 색상으로 톤이 맞춰진 화면들, 뒷주머니에 요로케 해서 요-로케 하는(?) 귀여운 액션들이 이 영화의 미덕이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이럴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 기대감이 높지 않았다는 점도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위 스크린샷은 2018년 가을에 발송된 안전가옥 뉴스레터 53호 서문 중 일부인데요. 이토록 성공한 <내사모남>.. 아는 분도 있겠지만 2편과 3편은 1편만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흠.

우선 1편이 둘이 가짜 연애를 하다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면서 끝났는데, 2편은 피터의 경쟁자(!)가 나타나 삼각관계가 됐고, 3편은 둘에게 '대학'이란 새로운 장벽이 나타났죠. 혹시 2편까지 보고 3편을 아직 안 보신 분이라면, 저는 2편보다는 3편이 좋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3편에서의 갈등은 라라진이 생각하는 미래, 피터와 친아버지의 관계, 코비 자매들 간의 애정 같은 것들이 잘 레이어링되어서 더 풍부한 느낌이거든요. (물론 남자친구와 같은 대학을 못 가는게 고민인 Z세대 여학생.. 이라는 존재 자체가 조금 맘에 걸리는 건 빼고요.) 

<내사모남> 1편이 나온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넷플릭스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변화하는 동안, <내사모남>의 위치도, 이야기도 조금 바래버린 게 아닐까 싶어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타이틀 롤을 맡은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나, 매력은 더 좋아진 것 같아서 더 그렇네요. 💌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을 위한 선물

반드시 보셔야 할 분

보는 레어 #3. <승리호> 퀴즈의 정답

1. 오늘 뉴스레터 제목이.. <승리호>가 되는 게 맞는지 <국제시장>으로 바꿔야 할 지... 클레어는 고민 중 일까요?
>> 아닙니다. 전 한 치의 고민도 없었어요. 제목은 처음부터 <승리호>였습니다. 모든 것은 오픈율을 높이기 위한 ㅇㄱㄹ...

2. 다음 #보는레어.. <국제시장>이나 <반도> 해야 되는 거 아닌지.. 클레어는 고민 중 일까요?
>> 이 또한 아닙니다. <국제시장>은 아직 볼 용기가 나지 않고, <반도>는 솔직히 제가 개봉 당시 4DX관에서 봐서.. 정말 이틀 멀미한 기억만 생생하거든요.. 

3. 실제로 다음 #보는레어는 어떤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될까요?
(힌트: 이미 마음 정함. 넷플릭스 오리지널임. 댓글에 답 맞히시는 분이 생기면 커피는 제가 쏘겠습니다.) 
>> 다들 무심행.. 아무도 안 맞혀 주셨네요..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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