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저는 용감했고 우승했어요

사실.. 👀 구독자님.. 눈치 채셨나요?

지난 주 토요일에는 오브레어가 발송되지 않았답니다. 만약 모르고 계셨다면 안심 + 하지만 조금 서운, 알고 계셨다면 미안합니다.. 지금이라도 자수했으니까 용서해주세요(?)

여러 가지 이유이자 핑계가 있는데요. 그 중 제일 큰 것은.. 실은 제가 다음 달부터 스웨덴에서 만학도의 꿈을 펼칠 예정이예요. 이번 달 말에 떠나게 되어서, 친구들도 만나고 가족들이랑도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넉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할 일도 많고 온갖 병원에 다니느라 시간이 금방 다 가버렸어요.. 특히 지난 주에는 본가에 가서 동생이랑 지내느라 오브레어 발송 예약하는 걸 완전히 잊어버렸답니다. 호호.. 그런 날도.. 있는 거죠..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는데, 아직도 가기 전에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럼 지금부터 제가 하고 싶은 + 해야 하는 일들을 일단 적어보겠습니다.

적어놓고 보니 정말 많네요? 

제가 이 리스트 바로 위에 이런 문장을 썼는데요, 

시간이 넉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할 일이 많고 온갖 병원에 다니느라 시간이 금방 다 가버렸네요..

이런 저런 일을 많이 하기도 했는데, 사실 그냥 누워서 인스타그램 돋보기 보고.. 트위터 계속 새로고침 하고.. 하면서도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특히 어제 오늘은 내내 정말 집에서 밥 챙겨먹고 낮잠 자면서 보냈고요. 어쩌면 그래서 시간이 모자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누워만 있었냐면, 뭔가 시작할 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고,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앞날이 기대되기 보다는 버겁게 느껴졌고, 과거의 나는 뭐가 좋다고(?) 이런 선택을 했었는지 갑자기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다행히 올해 초에 시작한 심리상담을 아직 하고 있기 때문에, 지난 주 세션에서 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상담이 끝나고 나서 '내가 해야 할 일' 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다시 돌아봤습니다. 거주 허가를 신청한다, 비행기 티켓을 산다, 그런 일은 정말로 '해야 할 일'이 맞겠죠? 그런데 하고 싶은 일, 혹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도 슬쩍 섞여있지 않은지 생각했어요. 좀 더 정확하게는 '미래를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서 해야 한다고 스스로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했습니다. 저의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해서 오래 이야기를 나눴었거든요.

올해 초에 이런 일들을 겪었습니다. 가만히 앉은 상태에서 심박수가 140까지 오르거나, 아침에 준비한 식사가 도저히 속에 들어가질 않아서 밤 10시까지 물만 마셨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은 날이 있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했고요. 저는 이런 경험이 익숙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건 외부의 공격을 받아서 저의 내부가 고장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걸 고치기 위해,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운명처럼(?) 만나서 읽고 본 콘텐츠들이 있어요. 오늘은 그 콘텐츠들을 얘기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넷플릭스에서 바로 볼 수 있는 <브레네 브라운: 나를 바꾸는 용기(Brené Brown: the Call to Courage)> 입니다.

솔직히 처음 제목만 듣고 저는 스탠드업 코미디인줄.. 알았어요. 제목 양식이 딱 스탠드업 코미디의 그것이잖아요. 그래서 '아 약간 <해나 개즈비: 나넷> 같은 건가 보다..' 하고 오해를 했는데요.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의 강연 실황입니다. 굉장히 솔직하고, 재치가 넘치는 선생님이셔서 마치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편안하게 봤습니다.

솔직히(2) 저는 심리학 대중서, 특히 자기계발서의 경계에 있는 책들을 즐겨 읽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 콘텐츠를 추천받기 전까지 브레네 브라운을 알지 못했습니다. 구독자님은 <마음가면> 이나 <리더의 용기> 같은 책으로 이미 브레네 브라운을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브레네 브라운은 심리 전문가로, 수치심, 취약성, 완벽주의, 두려움, 불안과 같은 감정을 연구하고 많은 저술, 강연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심리학자가 된 분이래요.

한 시간 가량의 강연 내내 수치심(Shame)과 취약성(Vulnerability)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한 번에 모든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지는 못했어요. 들으면서 자꾸 '약함을 인정하면 강해진다는 건 그냥 정신승리 아닌가요' 같은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았습니다. 멈춰가면서 몇 번 더 보고 나니까, 조금씩 제가 틀리고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 적어도 그게 그냥 '정신승리'는 아니라는 건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그로부터 조금 더 시일이 지나서, 책 <부모를 실망시키는 기술>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예수회 소속 신부로, 현재 뮌헨 예수회 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미하엘 보르트입니다. 저는 이 책을 교보문고 종교>가톨릭 서가에서 제목만 보고 사 뒀었습니다. 제목이.. 굉장히 도발적이잖아요? 일단 그 기술이 뭔지도 궁금하고, 부모를 실망시켜도 되는지, 아니 부모를 실망시키라는 얘기를 신부님이 해도 되는지! 궁금하잖아요. 

살 때는 너무 신났는데, 바로 읽지는 않고 고이 모셔뒀었고요. 그러다 올 초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 '습관형성' 모임에서, 참가하는 다른 분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 이 책을 읽겠다고 선언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사실 꼭 '부모'를 실망시키는 기술이라기보다, 모두를 실망시키는 기술에 가까워요. 다만 부모님은 내가 실망시키기 가장 어렵고, 실망시키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그래서 더더욱(?) 부모를 실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더라고요. 

이 책에서는 "실망"이라는 표현이랑 "상처를 준다/받는다" 같은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이게 결국은 "수치심"과 "취약성"과 함께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인 것 같았어요. 예를 들면 이런 구절들이 있었는데요, 

"실망하면서 생겨나는 감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런저런 생각이나 상상을 넘어서 훨씬 더 풍부하고 확실하게 나에게 정말 무엇이 마음에 담겨있고,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실망은 우리를 우리 존재의 근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실망은 우리에게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조화롭고 고유한 삶으로 향하는 길을 가는데 있어 실망은 우리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내가 나를 착각하고 있으면서 고유하고 진정성 있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한 삶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75-76p)

"나는 더 이상 나쁜 느낌들과 싸우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통제하는 고삐를 느슨하게 한다. 그리고 바로 이를 통하여 나는 더 약해지거나 더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해지고 더 잘 저항할 수 있게 된다. 상처받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것 또한, 우리 안에서 생겨난 아픔과 상처에 대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내적 준비 상태는 우리가 덜 상처받을 수 있게 해준다." (p87-88)

책을 다 읽고 나서 수치심, 취약성, 불안, 완벽주의와 같이 줄줄이 따라 나오는 개념들을 아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렴풋이.. 저의 행동과, 생각하는 방식, 감정들이랑 연결지을 수도 있을 것 같았고요. 

책 한 권, 강연 한 편으로 제 삶은 완전히 바뀌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을 리 없죠. 그래도 지금은 최소한 앞으로 어떤 부분을 더 느끼려고 노력하면서 살지, 어떤 위험 신호를 감지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은 알 것 같아요. 아직 30+a년 간 생각해 온 방식에 단단히 묶여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별일이 없다면 아직 좀 많이 남은 저의 시간을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계속 공부하면서 살고 싶어요.

이번 주의 오브레어는 명확한 목표를 두고 적었습니다.

혹시 구독자님도, 오랫동안 옳다고 믿어온 대로 산 세월이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나도 같이 부정하고 싶어지는 때를 겪으셨거나, 겪으신다면. 당연하고 단단했던 것들이 무너진 것 같다면. 이 괴롭고 힘든 시간을 혼자가 아니라 브레네 브라운 선생님, 미하엘 보르트 선생님, 그리고 가까이서 정말로 도와주실 수 있는 좋은 선생님들과 함께 보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당연한 것은 별로 없고,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아서 넘어간 것들이 많았더라고요. 차근차근 돌아보는 것은 무섭고, 눈물도 많이 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기는 한 것 같아요.

그렇게 우리 모두 오래 오래 오래 함께 합시다. 👩🏻‍🔬

인스타그램 @__ofcl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