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오그리들은 뮤지컬을 보다가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적이 있나요?
예를 들어 최재림 배우님이 <레드북> ‘안나’역을 맡아 넘버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을 부른다거나... 혹은 신영숙 배우님이 <아이다> 라다메스역의 ‘Elaborate Lives’를 부르는 그런 상상이요!
최근 오글 인스타그램에 재미로 상상해보는 ‘만약에 게임’ 콘텐츠를 진행했었는데요!
옥주현 배우님의 ‘지킬 앤 하이드’와 박은태 배우님이 연기하는 ‘댄버스부인’ 조합이 특히 인기가 많았어요. 실제 이런 캐스팅이 진행된다면 엄청난 피켓팅 전쟁이 시작되겠죠...?
유사한 콘텐츠로는 유튜브 채널 <멜름필름>에서 진행한 ‘젠더프리 뮤지컬’ 영상이 있어요. 이 영상은 4인의 여성 배우분들이 뮤지컬 속 남성 캐릭터의 넘버를 노래하는 내용이죠! 얼마나 찰떡으로 이 넘버들을 소화하시는지 한번 확인해볼까요?
이렇게 원래 정해진 역할과 성별 조합을 바꾸는 것만으로 신선함이 더해지고, 왠지 모를 기대감이 생기는데요!오늘은 이 ‘젠더프리’의 종류와 다양한 작품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 바로 시작할게요!
Chapter 1
Performance: 『젠더프리 작품들』
젠더프리? 성별에서 자유롭다?
‘젠더 프리’라니!
뭔가 익숙하면서도 정확한 의미는 파악하기 힘든 느낌인데요. 젠더 프리 캐스팅은 배우의 성별과 관계없이 배역을 정하는 캐스팅을 말해요! 보통 공연의 기획 단계부터 배역에 젠더를 정해놓지 않거나, 혹은 성별이 고정된 역할이더라도 이를 연기할 수 있다면 누구나 캐스팅하는 방식이죠.
이러한 ‘젠더프리’ 캐스팅은 2018년 미투 운동을 계기로 더욱 활발해졌어요. 당시 연극, 영화 등 문화예술계에서 미투 운동이 널리 퍼졌어요. 미투 운동은 예술계에 종사하는 여성의 문제뿐 아니라 무대 위 고착된 성 역할을 재인식하게 했죠.
이는 곧 공연계의 캐스팅 불균형과 뮤지컬 내 여성혐오 요소를 없애기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졌어요. 연극과 뮤지컬의 경우 남성 배우와 여성 배우의 캐스팅 비율이 평균 7대 3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지금 공연계에 '젠더 프리' 캐스팅을 도입한 작품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어요. 배우 성비의 불균형이 성차별적 묘사를 재생산하는 상황에서 젠더 프리 캐스팅은 공연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던 거죠!
어떤 작품들이 젠더프리인거에요?
과거 이러한 젠더프리 캐스팅 방식을 사용하는건 대부분 라이센스 뮤지컬이었어요. 뮤지컬 <마틸다>의 폭력적인 여교장 ‘트런치불’을 남성 배우가 맡은 것이나, 뮤지컬 ‘헤드윅’의 유대인 남성 <이츠학>을 여성 배우가 맡은 것처럼요! 성별에 관계없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문화는 영국 웨스트엔드나 미국 브로드웨이 중심으로 활성화가 되어있었거든요. 하지만 최근들어 많은 국내 창작 뮤지컬에서 젠더프리 캐스팅을 지향하고 있어요!
지난해 공연된 뮤지컬 <광화문 연가>에서 차지연 배우님이 '월하'역할을 소화하신것 기억 나시나요? 월하는 정해진 성별이 없이 인연을 관장하는 신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젠더프리 캐스팅이 자연스러웠어요. 한 인터뷰를 통해 차지연 배우님은 ‘넌 그냥 여배우가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배우야’라는 이지나 연출가님의 격려에 용기를 얻었다고 해요. <광화문 연가> <아마데우스> 등에서 남성 배역을 소화한 차배우님은 이제 ‘지킬 앤 하이드’가 다음 목표라고 하시네요! (차지킬 너무 좋습니다)
이밖에도 2018년 뮤지컬 <더 데빌>에선 X-Black과 X-White라는 관념적 역할에 남/여성 배우가 동시에 캐스팅 됐고요. 작년에 막을 내린 연극 <아마데우스>에서는 여성 배우가 실존 인물인 ‘살리에리’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젠더 프리 캐스팅의 대상이 더이상 추상적 존재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거죠!
국내 최초의 젠더프리 작품?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국내 뮤지컬 중에서 ‘첫번째’로 젠더프리 캐스팅을 한 작품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지나 연출가님께서 연출을 맡은 2015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입니다! 주인공 ‘지저스’를 괴롭히는 악역 ‘헤롯왕’에 세계 최초로 배우 김영주님이 개스팅되었죠. 당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여성 헤론 왕’을 선보이며 신선한 연출로 호평을 받았는데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자체가 굉장히 클래식한 작품이고, 초연에서는 남성 캐스팅이었던걸 생각해보면 굉장히 파격적인 변화였어요.
묻고 더블로가-! 젠더프리 더블 캐스팅
이후에도 젠더프리 캐스팅을 시도한 여러 사례들이 있었는데요.
특히 작품 내 하나의 역할에 남녀 더블 캐스팅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뮤지컬 <록키 호러 쇼>에서는 기존에 여성 배우만을 캐스팅했던 ‘콜럼비아’역할이 젠더프리 더블 캐스팅으로 바뀌었어요. 이렇게 두 성별을 더블 캐스팅 할 경우 대사와 연출을 조금 더 세심하게 조정해야 하는데요. 예를 들어 <록키 호러 쇼>의 연출가 오루피나는 통통 튀는 ‘콜럼비아’ 캐릭터 자체느 살리되, 절대 남성 배우에게 여성처럼 행동하라는 주문을 하지 않았다고 해요. 대부분의 대본 내용은 그대로였지만 ‘그녀’라는 대사를 ‘그대’라고 바꿨다고 하고요. 캐릭터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젠더 프리 캐스팅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부분이죠.
이지나 연출가님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도 극중 연인관계인 ‘유진’과 ‘제이드’ 역할의 성별이 고정되지 않았어요. 이 커플은 조합이 다양해(남💜남, 남💜여, 여💜여) 관객들의 취향에 맞게 골라(?)보는 재미가 있었다고 하네요😂
다음으로 소개할 작품은 바로 뮤지컬 <해적>인데요! 뉴스레터 22호에서 간단히 다룬적 있는 작품이죠! 주인공 소년 '루이스'와 캡틴 '잭'에 여성 배우가 캐스팅 되어 일반적으로 '해적'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남성적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순 작품이죠. 또한 한 명의 배우가 여러 배역을 맡아 일명 ‘1인 N역’을 소화해 화제가 되기도 했답니다!
(뮤지컬 <해적>이 궁금하다면? 22호 뉴스레터 보러가기)
Chapter 2
Ogle Insight: 젠더프리라고 다 같은건 아니에요
젠더프리라고 다 같은 게 아니라고요?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혹시 ‘젠더프리’에도 종류가 있다는 사실 아시나요?
이렇게 성별을 바꿔 캐스팅 하는 경우에 보통 ‘젠더프리’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요. 하지만 조금 더 세밀하게 들어가면 사실 다 같은 젠더프리는 아니에요!
예를 들어 성의 관념을 구부린다는 의미의 ‘젠더 밴딩’이라는 용어도 있고요. 혹은 성에 대한 관념을 자유롭게 흐르게 한다는 의미의 ‘젠더 플루이드’도 있어요. 쉽게 말하면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무는 것을 의미하죠. 그럼 지금부터 어떤 종류와 특징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봅시다!
젠더프리(Gender-Free)
배역에 성을 정해놓지 않거나 배역에 성별이 없는
젠더프리는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로 ‘성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해요. 젠더의 차이를 인식하기 보다는 캐릭터 그 자체를 보는거죠. 따라서 작품 속 배역을 결정할 때에 성별을 제외하고, 해당 캐릭터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연기력으로 배우를 평가해 캐스팅한답니다.
이러한 역할은 보통 작품밖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해설자나, 영적인 존재(신) 인 경우가 많아요. 성별에 크게 제약을 받지 않는 캐릭터이기 때문이죠. 해당 역에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라면 여성과 남성 상관없이 캐스팅 진행합니다. 젠더프리 캐스팅 방식의 대표적 예시는 위에서 말한 것 처럼 뮤지컬<광화문연가>’월하’, <더데빌>’X-화이트’, ‘X-블랙’ 그리고 <미드나잇>의 ’비지터’가 있어요.
뮤지컬 <하데스타운>을 보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해설자 ‘헤르메스’역할에 젠더프리 캐스팅을 하면 잘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정원 차지연 배우님이 ‘헤르메스’를 연기한다면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나요?
그래서 우리의 들뜬 마음을 달래줄 영상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인트로에서도 언급한 유튜브 채널 <멜름필름>에서 업로드한 박슬기 배우님의 ‘헤르메스’ 젠더프리 커버 영상! 아래 영상을 클릭해 슬기 배우님과 함께 지옥으로 가는 마지막 열차에 탑승해보는건 어떨까요?
젠더벤딩(Gender-Bending) / 젠더스와프(Gender-Swap)
성별의 전환
젠더벤딩/젠더스와프는 성별에 따른 기존의 성역할이나 외모의 전형적인 모습을 의도적으로 섞는것을 말해요! 예를 들어 원작 혹은 전작에서 남성 서사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작품이었다면, 젠더 밴딩/젠더스와프 방식을 통해 이후에는 여성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는거죠. 국내 공연된 젠더벤딩/젠더스와프 작품은 2008년 초연한 뮤지컬<컴퍼니>가 있어요. <컴퍼니>는 스티븐 손드하임, 해롤드 프린스 등 유명 창작진이 선보였던 컨셉 뮤지컬인데요. 원래 남성 주인공 위주의 이야기지만, 영국 연출가 ‘마리안 엘리엇’의 재창작을 통해 여성 주인공 중심 서사로 변경되었어요.
앞에서 짧게 소개한 국립극단의 연극 <햄릿>과 <파우스트 앤딩>도 젠더밴딩/젠더스와프 작품에 해당돼요. 연극 <햄릿>의 왕위 계승자 ‘햄릿’은 검투에 능한 해군 장교 출신의 덴마크 공주로! 또한 연극 <파우스트 엔딩>의 ‘파우스트’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악마와 거래한 고령의 여성 지식인으로 탈바꿈 했죠. 당연히 상대역은 남성으로 바뀌게 되었고요! 파격적으로 대본의 각색까지 서슴치 않는 젠더벤딩/젠더스와프 작품들입니다.
크로스젠더 액팅(Cross-gender Acting)
배우가 자신과 다른 성별의 역할을 연기하는 방식
아주 오래전 고대 그리스 시대,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연극 속에서도 여성 캐릭터도 남성 배우가 연기한 사례가 있어요. 뮤지컬 <썸씽로튼>에서도 여성 캐릭터를 남성이 연기하는 장면이 나오죠! 이는 1600년대에 여성은 무대에 설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어쩔 수 없이 여성 역할을 남성 배우가 연기했던거죠.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가부키도 역시 남자 배우가 연기했고요. 이런걸 바로 ‘크로스젠더 액팅’이라고 합니다. 배우가 자신과 다른 성별의 역할을 연기하는 방식이죠. 뮤지컬 <마틸다>의 악덕 교장선생님 ‘트런치불’이 대표적 예시인데요. 캐릭터 자체는 ‘여성’이라는 성별로 정해져 있으나 이와 상관없이 덩치 큰 남성 배우가 이 역할을 맡아 소화했죠.
블라인드 캐스팅(Blind Casting)
소수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한 시도
인종, 성별,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역할에 맞는 연기를 하는 배우를 캐스팅 하는 방식이에요. 모든 개념을 포함해 소수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됐죠.
국내에서는 연극 작품에서 이러한 블라인드 캐스팅 방식을 시도했어요. 2020년 4월에 개막했던 연극 <언체인>은 밀도 높은 두 인물의 세밀한 심리묘사와 휘몰아치는 전개로 화제를 일으켰던 2인극인데요. 두 주인공인 ‘마크’와 ‘싱어’역에 어떠한 속성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연기력으로만 배우들이 캐스팅 되었어요. <언체인>의 제작사는 젠더 블라인드 캐스팅을 함으로써 이전에는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인물 간의 관계나 심리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새로운 관점으로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젠더 컨시어스(Gender-Conscious)
특정젠더에게 주인공, 주체적인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
소수자에게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시작된 블라인드 캐스팅. 하지만 때때로 여성에게 기회를 주기 시작된 시도라는 것이 다양한 이슈에 의해 잊혀지면서 여성에게 주체적인 역할을 부여하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이러한 흐름에서 나온것이 바로 ‘젠더 컨시어스’ 개념입니다! 성별을 의식하고 그들의 소수자성을 인정해 주체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캐스팅 방식이죠.
예를 들면 캐릭터 성별에 상관없이 전 배역을 여성으로 구성하는거죠. 대표적인 젠더 컨시어스 작품에는 뮤지컬 <배르나르다 알바의 집>과 <리지>가 있어요. 최근에는 이렇게 여성들만 나오는 뮤지컬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에요. 화제를 불러 일으킨 이금이 작가의 소설 <유진과 유진>이 올 여성 캐스팅 창작 뮤지컬로 만들어지고 있는것도 같은 흐름이랍니다.
오그리들! 오늘 뉴스레터는 어떠셨나요?
한 인터뷰에서 김일송 연극평론가는 이런 말씀을 하신적이 있어요.
"과거에 고착된 성에 대한 관념들이 있잖아요. 사랑은 남녀만 할 수 있고, 어떤 직업은 남성이 해야한다는 그런 편견을 깨고 다양한 삶을 현대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고전을 그렇게 캐스팅 하는 것은 의미가 있어요" 라고요.
오그리 여러분이 보고 싶어하는 젠더 프리, 젠더 스와프 캐스팅을 마주할 날이 언젠간 오겠죠? 그럼 60호 뉴스레터는 이것으로 마치고, Ogle은 다음 금요일에 다시 찾아올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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