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3.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넉 달 만에 이수민을 만났다. 타지에서 늦은 밤에 만나도 새삼스러운 반가움보다 어제 본 것 같은 편안함이 드는 것이 너무나 우리다웠다. 장기 여행에는 품이 많이 들기 마련이지만 수민이를 만나자마자 한결 안심되었다. 크리스마스 당일은 오전부터 전망대를 걸어 오르면서 생애 가장 따뜻한 크리스마스 아침을 보냈다. 15도를 웃도는 기온에 햇살이 내리쬐는 바르셀로나를 내려다보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가우디의 도시인 만큼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 공원까지 크고 작은 가우디의 작품들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건축의 일부처럼 잘 어울렸던 카사 밀라의 옥상에서 본 노을도 참 좋았다.
물론 찍어 먹듯이 한 도시를 일주일도 머물지 않는 여행자들에게 있어서 어느 도시가 좋고 나쁘다 하는 평가는 며칠 간의 경험에 대한 소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단 걸 안다. 장소의 보편성은 오랜 체류자가 아니고서야 단숨에 이해하고 체계화하기는 어려운 것이겠고 나같은 여행자들은 그저 자신의 여행 경험의 특수성 안에서만 장소를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 소품샵, 해변, 슈퍼마켓, 그리고 공항에서까지 갖가지 인종차별을 당하기도 했기에 바르셀로나를 한 줄로 정리하기란 어렵겠지만 바르셀로나 여행 중에는 우연에서 오는 즐거움이 많았다. 어쩌다 들른 디저트 가게에서 사온 레몬맛 타르트, 시장에서 사 먹은 키위 주스와 부리또, 산 하우메 광장에서 본 쇼, 여행 마지막 날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에서 구경한 비눗방울과 신난 아이들까지.
바르셀로나에서 당한 수 차례의 인종차별로 서양인에 대한 적개심이 커져 있던 상황에서 소매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파리에 놓였다. 늦은 밤 파리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가며 모두를 경계하는 초긴장 상태로 우왕좌왕하던 중에 한 청년이 기차 타는 곳부터 우리가 타야 할 기차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뒤통수에다 대고 고맙다고 말하자 뒤도 안 돌아보고 손을 뻗어 브이를 하던 힙하고 귀여운 친구였다. 대여섯 사람에 대한 분노가 한 사람의 호의로 눈 녹듯이 사라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수민이와 함께 그를 ‘천사 청년’이라고 불렀다. 천사 청년의 도움으로 무사히 파리 동역에서 내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여담이지만, 여러 사람과 여행을 다녀보다 보니 사람마다 갖고 있는 루틴과 여행 필수품들을 알게 되는 게 흥미롭다. 이수민은 제아처럼 컵에 화장품을 다 꽂아서 컵 채로 파우치에 넣어 다니더라. 그리고 새로 샀다는 성능 좋은 보조 배터리를 항상 갖고 다닌다. 나는 여행할 때 일회용 온열 안대와 이클립스 사탕과 빨래비누를 챙겨 다닌다. 사람마다 각자 나름의 습관이 자리잡혀 있다는 걸 느낄 때마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두었을 자신만의 루틴이 궁금해진다. 살면서 익혀 온 서로 다른 삶의 지혜가 있음이 신기하고 귀엽다.
파리 여행 첫날 일어나자마자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향해 에펠탑을 두 눈으로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은 여전히 생생하다. 에펠탑을 낀 파리의 풍경은 과하게 낭만화되어 있고 그 낭만화된 이미지가 너무나 상품화되어 있어서 오히려 눈으로 보았을 때는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크기가 주는 압도감은 또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파리에서 에펠탑, 노트르담 대성당, 디즈니랜드,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줄지은 거리보다 더 좋았던 것은 우연하거나 작은 것들이었다.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던 조그마한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1.45유로짜리 뺑 오 쇼콜라, 몽마르트 언덕에서의 Shallow 즉흥 버스킹, 뙬르히 정원의 초록 의자에 가만히 앉아 쉬었던 오후, 한적하고 고요한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작은 그릇에 담겨 나온 어니언 수프. 소매치기 걱정으로 걸어 다니는 매 순간이 긴장 상태였던 파리인 만큼 마음이 쉬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작은 순간들이 더 귀했다.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성당을 비롯한 종교 시설들을 수도 없이 많이 방문했지만 대개는 이미 ‘한번 둘러보고 갈 곳’ 정도로 관광지화된 세속적인 공간으로 느껴졌다. 탑, 메인 공간, 지하 공간 입장료를 따로 받는 성당들에서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무료로 들어가 볼 수 있었던 오전의 고요한 생제르맹데프레 수도원 안에서는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성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서 두 가지 기도를 했다. 신을 믿지 않는 나도 어떤 소망을 고백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리고 가난한 작가 지망생들의 숙소가 되어주었다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던 헤밍웨이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겁니다.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파리는 내 삶이 나를 파리로 이끌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사람들이 전부 친절했던 것도 아니고 많은 곳이 여행객과 잡상인들로 북적이는 소란한 도시였지만 파리만의 탐미적인 분위기만큼은 그 어느 도시보다도 멋스러웠다. 딱 하루만 더 있고 싶다는 말을 몇 번을 남기면서 파리를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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