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1
내내 생각했던 어떤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대신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알게 된 것 같다. 무엇이라고 정확히 말로 정의하기도 어려운 중요한 무언갈 알게 된 것 같다. 그 새로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모든 걸 초기화하고 새롭게 살고 싶었는데 그게 가능할 것만 같은 착각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내 삶을 쥐고 비틀 이정표처럼 받아들여야 할지, 여기 있는 동안에만 유효할 한여름 밤의 꿈같은 단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바스라질까 봐 이 착각을 조심스럽게 만지면서 굴리고 바라보고 미워하고 좋아하는 요즘이다. 눈이 마주치면 오가는 눈 인사, 계산이 오래 걸려도 가만히 기다리는 인내심, 기대하지 않은 선의를 보여주는 이름 모를 사람들, 무얼 해먹는지까지 다 보이는데도 커튼을 내리지 않는 창밖 건너편 건물의 커플. 그런 작은 것도 다 새로워서 마음이 흔들린다. 알고 보면 세상 모든 것이 그대로라는 생각과, 그래 보인다 해도 영원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엎치락뒤치락한다. 자기 전에 허회경 Memoirs 앨범을 듣는데 가사가 이제야 다 이해가 되는 기분이더라. 모든 게 사라져도 난 괜찮아요. 많은 날들이 아무 일도 아니었던 걸 나는 알아요. 오는 날들에 미소 짓는 기다림이 나는 좋아요.
그제 알파카 농장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님이 한국 욕을 알려 달라길래 처음엔 ‘귀여워’라고 알려줬다가 나중에 ‘시발‘이라고 제대로 알려줬다. 그랬더니 계속 “The British are 시발 people”이라고 외쳐대셔서 엄청 웃었다.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했는데 특히 런던 사람들 욕을 하시던 걸 보니 런던에서 당한 게 많으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셰필드는 안전하고 사람들이 친절하다면서 살기 좋을 거라고 말해줬다. 농장이 외진 곳에 있어서 돌아올 때는 택시 잡기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더니 본인 번호를 알려주면서 만약 택시가 안 잡히면 연락하라며 문자로 위치를 찍어주면 오겠다고 했다. 택시 기사님 역시 이 도시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겠다. 가는 내내 유쾌한 대화가 있었는데 한 가지 신기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딱 보면 중국인과 한국인이 구분되냐고 묻길래 거의 그렇다고 했더니 본인도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을 보면 알제리 사람, 나이지리아 사람, 에티오피아 사람이 다 분간된다고 했다. 당사자들만이 공유하는 그 미묘한 차이가 정말 분명한 것 같다. ‘영국 사람들은 다 같은 아프리카 사람으로 보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도 공감되고 씁쓸하면서 재밌었다. 특정 대륙 출신으로 뭉뚱그려지거나 특정 국적으로 패싱되는 일이 동아시아인들만 겪는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좀 위로도 됐다.
오늘은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요크에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관광 도시인 요크의 첫인상은 셰필드와는 사뭇 달랐다. 셰필드가 살기 좋은 도시라면, 옛 건물과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는 요크는 여행하기 좋고 눈이 즐거운 도시더라. 셰필드를 김포라고 치면 요크는 경주 같았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 북적이는 넓은 기차역, 탁 트인 거리, 성당에서 들려오는 소리, 아기자기한 상점들, 거리의 버스킹, 세련된 식당과 카페들. 런던의 캠든 패시지와도 닮은 요크는 도착해서 대충 둘러보자마자 기분이 들떴다. 보름 만에 만난 세민이와 요크 민스터 성당도 들어가 보고, 푸릇한 뮤지엄 가든스도 걷고, 청설모한테 아몬드도 던져 주고, 공원 근처에서 하는 결혼식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듣고, 샴블스 마켓과 좁은 시내 골목들도 걸었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는 꽤나 애틋한 대화를 했던 것 같다. 런던에서 헤어지고 기숙사까지 들어가는 길이 어땠는지,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플랫 메이트들은 어떤지, 무얼 해먹고 사는지, 생활 공간은 지낼 만한지, 수업은 들을 만한지 등등. 세민이가 사준 따뜻한 커피와 치즈 스콘도 먹고, 같이 학교 체육관까지 걸었다.
세민이를 체육관에 데려다주고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쏟아졌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도, 주택가에서 진하게 풍기던 코코아 냄새도, 오래 걸어서 아파지는 허벅지도, 다 젖은 운동화도, 그러다 또 금세 잦아드는 빗줄기도 다 싫지 않았다. 비가 그칠 때쯤 로마 시대에 방어를 위해 세워졌다는 요크 성벽을 따라 걷고 클리포드 타워로 향했다. 사진으로 보고 기대한 것에 비하면 작은 건축물이었지만 타워로 올라가는 계단 옆 벤치에 앉아 가만히 쉬면서 노을 구경 사람 구경을 하고 있으려니까 더 없이 좋았다. 해 질 녘 밀레니엄 브릿지가 있는 라운트리 파크로 향하는 길에 불현듯 이곳에 무조건 다시 오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홀로 걷는 동안 당일치기 여행의 맛을 제대로 알아버린 것 같다. 그런데 기차역으로 돌아가던 길에 한적한 도로에서 차창을 내리고 있던 남자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니하오” 소리쳤다. 아예 못 들은 척 지나치고서 차 지나갈 때 바로 뒤에 대고 팔을 뻗어 3초 간 정직한 뻐큐를 날렸다.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내가 겁 많은 사람인 걸 스스로에게 증명 당할까 봐 무서웠는데 다행히 아직은 아닌 것 같다. 하루 동안 삼만 보 가까이 걸어서 종아리가 당겨오는데도 마음은 피로하지 않았다.
여하튼 동양인이 거의 없고 백인의 비율이 압도적이어서 외로운 기분이 들기도 했던 요크는 또 그런 이유로 더 자유롭게 느껴졌다. 고등학생 때 ‘설령 네가 너의 편이 아닐 때에도 나는 네 편이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참 울컥했었는데 아마도 그때는 그 말을 붙들고 싶을 만큼 내가 내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둑어둑해지는 한적한 요크를 걸으면서,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나와 무관했고 그래서 내가 나의 편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걸리는 데 하나 없이 나의 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걸 자각하고 충격받았다. 누구도 나의 편은 아닐 이곳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나야말로 내 편이라는 거. 내가 걷는 길이 안전하기를, 내가 먹는 음식이 맛있기를, 내가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마주하기를, 내가 보고 느끼는 세상이 아름답기를, 내가 자유롭게 살기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가장 바라고 있다는 거. 그것이 너무 새롭고 놀라워서 걷다가 급히 메모장을 켜고 네 글자를 적었다. 내가 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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