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3.
자유라는 단어는 너무 귀한데 너무 싸구려고, 너무 단단한데 너무 물렁하고, 너무 넓고, 거의 다 허상이고, 그러나 때로는 나를 당혹스럽게 할 정도로 실재하는 무엇이다. 자유롭다거나 자유롭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낯부끄러워지는 건 아마도 내가 욕망하는 바에 대해 나조차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롭다는 감각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 나를 흔들리게 하고 또 바로 서게 하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영국 생활이 어떻느냐고 물어보면 다른 어떤 단점에도 불구하고 자유롭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에서의 생활보다 좋다고 대답한다. 치안이나 위생은 말할 것도 없고, 음식도 맛 없고, 동양인에게 무관심하고, 공공 서비스도 부실하고, 물가는 엄청 비싼 이 곳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자유롭다는 느낌 하나가 다른 모든 단점들을 기꺼이 감수할 만하게 만든다. 구구절절 자유와 부자유의 차이에 대해 논하지 않아도 이 곳이 한국에서보다 자유롭게 느껴진다고 하면 모두들 수긍한다. 그러니 자유라는 단어는 참 좋은 거다. 그런 희미한 단어로 내 생각을 이토록 선명하게 말할 수 있다면, 이 모호하고 이상한 단어를 그냥 써버리는 편을 택하겠다.
어제는 유일한 일본인 친구 사쿠라와 학교 데이트립 버스로 헤로게이트와 나스보로라는 소도시에 다녀왔다.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거의 쉬지 않고 대화를 했으니 아마도 영국에 온 이후로 가장 영어를 많이 쓴 하루다. 외국인과 대화할 때 편안하다고 느끼기가 쉽지 않은데 사쿠라와 만날 때는 큰 부담감이 없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질문과 리액션으로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가주는, 겸손하고 영민하고 사랑스러운 애다. 이런 저런 걱정들을 안고 지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늘 밝아 보이고, 순수한데 순진하지는 않은 사람 같다. 일본인이다 보니 영국인이나 영국 문화에 대해 신기함이나 당혹감을 느끼는 지점들도 나와 거의 비슷하다. 사쿠라와 시내에 도착해 따뜻한 모카를 사들고서 밸리 가든스를 걸었다. 헤로게이트에 대한 오랜 애정이 느껴지던 직원 분이 일하시는 박물관도 구경하고, 스파와 마사지 산업으로 유명했던 마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빈티지 샵도 함께 둘러보고, 우스운 선글라스도 같이 써보고, 웨이팅이 끊이지 않는 찻집도 구경하고, 카페 바깥 자리에 앉아서 브런치를 먹었다. 조그맣고 한적하고 편안한 동네였다.
한 시 쯤 헤로게이트에서 버스로 20분 걸려 나스보로로 이동했다. 좁은 강이 흐르는 아기자기한 시골마을 같았다. 유명한 다리가 내려다보이는 경치를 두고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한국인 교환학생 가은이까지 셋이서 니드 강변을 따라 걷다가 찻집에 들어갔다. 가은이는 그린티, 사쿠라는 요크셔 블랙티, 나는 애플 시나몬티를 시켰다.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서 한 시간 반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런 저런 대화를 했다. 쉽고 귀여운 질문부터 깊고 모호한 질문까지. 가은이는 유럽이 한국보다 나은 점을 못 찾겠다면서 12월에 귀국할 예정이라고 했고, 나는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 때문에 한국이 그립지는 않다고 했다. 무슨 맥락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자유가 네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이느냐는 질문을 받고 "Yeah.. maybe..."라고 답했다. 그 대답이 우스워서 몇 번 곱씹어보아도 내 삶에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본래 자유는 영원히 전적으로는 달성되지 않는 방식으로 무한히 갈망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아주 틀리진 않을 것 같다. 자유롭다고 느끼는 지금도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더 자유롭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만으로도 나도 모르게 내 삶이 어디로 튀어도 괜찮을 것 같은 다행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하게 되면, 다른 선택을 했을 때에 결코 얻지 못할 무언가를 얻게 되거나 결코 잃지 않을 무언가를 잃게 된다. 무엇이 더 나은 결과를 불러올지 미리 알 수 없지만, 대강 어떤 종류의 좋음과 나쁨을 경험할지를 택할 수는 있고, 그래서 내 선택이 불러올 좋음과 나쁨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주어진 그 책임감이 설령 외로움에 대한 책임감이라 할지라도 나를 한없이 자유롭게 해준다. 불안정함으로 침잠함으로써 안도감을 느끼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이 정확히 내가 바라 온 바로 그 안도감이어서 더욱 당혹스럽다. 말하자면 나는 올해 중순 쯤 썼던 문장에서 조금도 비껴 있지 않은 마음이다.
나는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걷고 자유롭게 잠들고 자유롭게 사랑하고 자유롭게 사랑하지 않고 자유롭게 여행하고 자유롭게 죽을 거야. 아이디나 비밀번호는 다 놓아버리고 살 거야. 은둔자처럼, 방랑자처럼, 구도자처럼 사는 법을 배울 거야. 그리고 먼 미래엔 이런 소망이 나를 오히려 외롭게 했다는 것도 고백할 거야. 그렇지만 돌아와도 나는 같은 소망을 할 거란 말을 덧붙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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