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2026년 2월 6일, 유럽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틱톡에 예비판정을 내렸어요. 죄목은 다소 낯선 표현이에요. "중독성 디자인(Addictive Design)"이 EU 디지털서비스법(DSA)[1]을 위반했다는 것이죠. 이건 이전에 올렸던 ADHD 뉴스레터와도 관련 있어요.
앱의 알고리즘과 UX 설계 자체가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된 건 EU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에요. 콘텐츠 문제가 아니에요. 무한 스크롤, 자동재생, 초개인화 추천 알고리즘이라는 경험 설계의 구조 자체를 겨냥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질문 하나가 떠올라요. "그럼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도 똑같이 작동하는데, 왜 하필 틱톡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이 규제가 AI 개인화 서비스 전체에 미칠 파장은 무엇일까요?
슬롯머신이 스마트폰 속에 들어온 날
무한 스크롤이 처음 등장한 건 2006년이에요. 트위터의 전 UX 디자이너 아자 라스킨(Aza Raskin)이 고안했는데, 그는 나중에 이 설계를 "내가 저지른 실수 중 하나"라고 공개적으로 후회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심리학자 B.F. 스키너가 1950년대에 발견한 행동주의 원리, '변동 비율 강화(Variable Ratio Reinforcement)' 때문이에요. 스키너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예상 가능한 보상보다 불규칙한 보상이 행동을 훨씬 강하게, 오래 유지시킨다는 걸 발견했어요. 슬롯머신이 정확히 이 원리로 설계되어 있어요. 당길 때마다 뭔가 나올 것 같지만, 언제 나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손을 멈추지 못하게 만들죠.
소셜미디어의 피드를 밑으로 내리는 행위는 구조적으로 슬롯머신의 레버를 당기는 것과 동일해요. 흥미로운 콘텐츠를 발견하면 도파민이 분비되고, 다음 것도 기대하게 되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더라도 손가락은 이미 움직이고 있어요.
여기서 틱톡의 차별점이 등장해요.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는 기술적으로 콘텐츠가 고갈되는 지점이 있어요. 하지만 틱톡은 실시간으로 알고리즘이 사용자 반응을 학습하며 플레이리스트를 끝없이 재구성해요. '다음 영상'이 항상 대기하고 있는 구조죠. EU 집행위원회는 이 설계가 사용자의 뇌를 오토파일럿 모드(autopilot mode) 로 전환시킨다고 표현했어요.
EU가 들이민 데이터들
유럽집행위원회의 예비판정은 단순한 정치적 선언이 아니에요. 14개월에 걸친 심층 조사의 결과물이에요. 2024년 2월에 시작된 공식 조사는 틱톡의 내부 위험 평가 보고서, 내부 데이터, 행동 중독 분야 전문가 인터뷰를 포함했어요.
조사 결과 집행위원회가 특히 문제 삼은 것들은 다음과 같아요:
- 무한 스크롤: 콘텐츠 소비에 자연스러운 종료 지점이 없는 구조
- 자동재생: 사용자의 능동적 선택 없이 다음 영상으로 전환
- 심야 푸시 알림: 수면 시간대에도 계속 앱으로 불러들이는 알림 설계
- 초개인화 추천 시스템: 사용자 프로파일링[2]을 통한 실시간 콘텐츠 최적화
집행위원회는 특히 청소년 데이터에 주목했어요. EU 내 13~15세 청소년 상당수가 하루 3~5시간을 틱톡에 소비하고 있고, 심야(오후 10시 이후) 최다 사용 앱 1위가 틱톡이라는 점이 핵심 근거로 활용됐어요. 미국 퓨 리서치센터의 2024년 조사에서도 10대의 약 60%가 틱톡을 매일 사용하며, 16%는 "거의 항상" 접속한다고 응답했어요.
집행위원회는 틱톡이 이런 과사용 지표들, 즉 심야 접속 빈도, 앱 실행 횟수, 강박적 사용 패턴을 위험 평가 보고서에서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판단했어요. 기존의 스크린타임 관리 도구나 보호자 통제 기능이 이 구조적 리스크를 실질적으로 줄이지 못한다는 것도 지적됐어요. 하지만, IT업계의 프로덕트/서비스들 중에 저 4가지를 안하는 곳이 과연 요즘에 있을까요?
틱톡은 즉각 반발했어요. "근거 없는 왜곡"이라며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현재로선 집행위원회의 주장에 대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단계예요.
'담배 회사 책임론'의 귀환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유용한 비유가 있어요. 유럽 주요 오피니언 미디어들이 공통적으로 꺼내든 것이기도 해요. 바로 담배 규제의 역사예요.
1950~60년대 초반, 흡연의 해악은 개인의 의지 문제로 프레이밍[3] 됐어요. "담배를 끊지 못하는 건 흡연자 본인의 의지력 부족"이라는 논리였죠.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규제의 틀이 바뀌었어요. 니코틴의 중독성을 알면서도 이를 제품 설계에 반영한 담배 회사의 책임으로 플레이밍이 전환된 거예요. 담뱃갑에 경고 이미지가 의무화되고, 광고가 제한되고, 공공장소 흡연이 금지된 것도 모두 그 전환 이후의 일이에요.
이번 EU의 틱톡 판정은 소셜미디어에서 같은 전환을 시도하는 거예요. "이건 사용자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 UX 설계의 책임" 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이죠.
실제로 EU 집행위원회의 핀나 비르쿠넨 부위원장은 이렇게 말했어요. "디지털서비스법은 플랫폼이 자신의 사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책임을 지도록 만든다. 유럽에서 우리는 아이들과 시민들을 온라인에서 보호하기 위해 법을 집행한다."
규제가 권고가 아닌 강제 규정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해요. DSA에 따라 최종 비준수 판정이 나올 경우,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의 전 세계 연간 매출의 최대 6%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어요. 바이트댄스의 2025년 목표 매출 규모를 고려하면 최대 수십억 달러에 달할 수 있어요.
오스왈드의 시선
솔직히 이야기하면, 저는 이번 판정을 두고 "당연히 옳다"와 "이건 너무 나간 것 같다"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어요.
다크패턴[4]과 변동 보상 설계, 심야 알림 같은 요소들은 규제해야 맞아요. 사용자가 "이제 그만 보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에도 앱이 다음 콘텐츠를 강제로 밀어 넣는 설계는 자기결정권 침해에 가까워요.
하지만, 우리는 여러 역사와 사례를 통해 알고 있는게 하나 있어요. 규제는 항상 풍선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에요. 한쪽을 누르면 반드시 다른 쪽이 부풀어요. 한국의 게임 셧다운제가 그랬고, 대형마트 의무 휴업 제도가 그랬어요. 대형마트를 쉬게 했더니 쿠팡만 키웠다는 분석이 나왔을 때, 처음 제도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표정이 어땠을지 생각해보면... 규제의 의도와 결과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아요.
더 근본적인 우려는 따로 있어요. '초개인화 알고리즘'과 '사용자 프로파일링' 자체를 규제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 선이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데이터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이 설계 원리는 소셜미디어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가 기대하는 AI 개인 비서의 핵심도 바로 "나를 가장 잘 아는 초개인화 추천"이거든요. 챗GPT든 Claude든, 결국 "내 맥락을 기억하고, 나에게 최적화된 답을 주는 것"이 AI 서비스의 가치예요. 그 구조가 규제 가능하다고 선례를 남기는 건 AI 산업 전체의 설계 원칙에 영향을 줄 수 있어요.
EU가 이번에 열어젖힌 문은 틱톡 하나의 문이 아닌 것 같아요.
마치며
이번 사태를 정리하면 이렇게 볼 수 있어요.
EU는 단순히 틱톡의 콘텐츠가 아니라 경험 설계의 책임 소재를 처음으로 공식 규제 프레임에 올렸어요. 예비판정이라 최종 결론까지는 절차가 남았지만, 이미 Facebook, Instagram, 패션 플랫폼 Shein도 같은 혐의로 조사가 진행 중이에요. 호주는 16세 미만 소셜미디어 전면 차단을 시행했고, 스페인·프랑스·덴마크·노르웨이도 비슷한 법안을 검토 중이에요.

유럽발 규제 논의는 통상 미국과 아시아로 파급되는 경향이 있어요. 지금 이 순간이 디지털 플랫폼 설계 윤리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변곡점일 수 있어요.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당신이 매일 사용하는 앱 중에서, 스스로 끊고 싶었지만 끊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면, 그건 의지의 문제였을까요 — 아니면 설계의 문제였을까요?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 European Commission, "Commission preliminarily finds TikTok's addictive design in breach of the Digital Services Act", EC Press Release, February 6, 2026. : 이번 뉴스레터의 핵심 원문이에요. 집행위원회의 공식 입장 전문을 확인할 수 있어요.
- Caroline Gorman, "Just One More Video…: Down the (Legal) Rabbit Hole of TikTok's Addictive Design", Verfassungsblog, March 2026. : DSA 법적 프레임워크와 Article 28·35의 해석을 가장 명료하게 풀어낸 법학 분석이에요.
- "How Have Platforms Addressed Addictive Design Under DSA", TechPolicy.Press, February 2026. : TikTok 세 플랫폼의 DSA 위험 평가 보고서를 비교 분석한 심층 리포트예요.
배경 지식
- B.F. Skinner의 변동 비율 강화 원리와 소셜미디어 설계의 관계: Aza Raskin, "Infinite Scroll: The Web's Slot Machine", Center for Humane Technology. : 무한 스크롤을 직접 설계한 사람의 후회 고백을 담은 글이에요. 왜 이 구조가 문제인지 가장 솔직하게 담겨 있어요.
- Natasha Dow Schüll, Addiction by Design: Machine Gambling in Las Vegas,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2. : 슬롯머신 설계의 심리학을 다룬 고전이에요. 소셜미디어 UX와의 연결고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배경 지식을 제공해요.
- Pew Research Center, "Teens, Social Media and Technology 2024", December 2024. : 미국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 실태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수치로 정리한 데이터예요.
관련 영상
각주
- [1] DSA (Digital Services Act, 디지털서비스법): EU가 2023년 시행한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이에요. 사용자 수가 일정 규모 이상인 대형 플랫폼에 위험 평가 의무, 콘텐츠 규제, 광고 투명성 등의 엄격한 요건을 부과해요.
- [2] 사용자 프로파일링 (User Profiling):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검색어, 시청 시간, 클릭 패턴 등)를 수집·분석해 개인별 관심사와 심리 패턴을 예측하는 기술이에요. 추천 알고리즘의 핵심 기반이에요.
- [3] 프레이밍 (Framing): 같은 사안을 어떤 시각과 언어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해와 판단이 달라지는 현상이에요. "흡연은 개인 의지의 문제"에서 "흡연은 설계된 중독"으로 바뀐 것처럼, 책임의 소재 자체가 달라지는 틀의 전환을 뜻해요.
- [4] 다크패턴 (Dark Pattern): 사용자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유도하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UI/UX 기법이에요. 구독 해지를 어렵게 만드는 버튼 배치, 자동 갱신 동의를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것 등이 대표적 사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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