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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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인 질문이지만,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예요. UC 어바인의 글로리아 마크(Gloria Mark) 교수가 20년간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하나의 화면에 머무는 평균 시간은 2004년 2분 30초에서 2024년 기준 47초까지 줄었어요. 이 수치가 더 놀라운 건, 중간값(median)이 40초라는 점이에요. 절반의 경우는 40초도 못 버틴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만약 이게 당신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설계한 결과라면요? 최근 한국에서 성인 ADHD 진료 인원이 5년 만에 5배 가까이 폭증했어요. 정말 뇌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난 걸까요, 아니면 ADHD처럼 보이게 만드는 세상이 된 걸까요? 오늘은 이 질문의 답을 데이터로 추적해 볼게요.
숫자가 말해주는 이상 신호
먼저 팩트부터 짚어볼게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최근 5년간 ADHD 진료현황'에 따르면, 2024년 성인(20대 이상) ADHD 진료 인원은 12만 2,614명이에요. 2020년 2만 5,297명에서 4.85배, 성인 10만 명이 넘은 건 2024년이 처음이에요. 진료비도 같은 기간 188억 원에서 1,080억 원으로 5.74배 뛰었어요.
특히 눈에 띄는 건 30대 여성이에요. 2020년 2,325명에서 2024년 2만 624명으로 8.87배 급증했고, 진료비는 10.92배나 늘었어요. 미국도 사정은 비슷해요. CDC 데이터에 따르면 성인 ADHD 유병률이 4.4%에서 6.0%(약 1,550만 명)로 올라갔고, 2024년 메타분석은 전 세계 성인 ADHD 유병률을 6.76%, 약 3억 6,630만 명으로 추정했어요.
여기서 데이터를 읽는 사람이라면 한 가지를 짚어야 해요. 이 숫자는 '진료 인원'이지 '유병률'이 아니에요. 진료 인원은 "병원에 간 사람의 수"이고, 유병률은 "실제로 그 병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에요. 이 둘은 전혀 다른 측정값인데, 대부분의 보도가 이 구분 없이 "ADHD가 폭증했다"고 전해요.
진료 인원이 급증한 데에는 적어도 세 가지 구조적 원인이 있어요.
첫째, 진단 기준의 확대예요. 2013년 DSM-5[^1]가 성인 ADHD의 증상 기준을 완화했고, 한국에서는 2016년 건강보험 적용 연령을 6~18세에서 6~65세로 넓혔어요. 수도꼭지를 더 크게 열었으니 물이 더 많이 나오는 건 당연해요.
둘째, 인식의 변화예요. TikTok에서 #ADHD 해시태그 상위 100개 영상의 누적 조회수가 약 5억 회에 달해요. "혹시 나도?"라는 자각이 진료실 방문으로 이어진 거예요.
셋째, 접근성의 향상이에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원격 진료가 확산되면서,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물리적으로 낮아졌어요.
문제는 이 세 가지 중 어떤 것도 "실제로 ADHD인 사람이 늘어났다"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오히려 측정 도구와 측정 환경이 바뀌면서 숫자가 커진 것에 가까워요. 체중계의 눈금을 바꿨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살이 쪘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예요.
도둑맞은 집중력 — 어텐션 이코노미의 구조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ADHD를 의심하게 된 걸까요? 진단 기준이 넓어진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돼요. 사람들이 실제로 "집중이 안 된다"고 느끼고 있으니까요.
197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은 한 가지 예언적인 통찰을 내놓았어요. "정보의 풍요는 주의력의 빈곤을 만든다." 정보가 넘쳐나면, 그 정보를 소화할 인간의 주의력이 희소 자원이 된다는 거예요. 50년이 지난 지금, 이 통찰은 실리콘밸리의 비즈니스 모델 그 자체가 됐어요. 테크 기업이 파는 건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당신의 시선이에요.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알림 뱃지. 이것들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에요. 슬롯머신과 같은 '간헐적 변동 보상'[^2] 원리로 설계되어 있어요.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뇌의 도파민 회로가 끊임없이 자극돼요. 이 구조 안에서는 의지력과 무관하게 누구의 주의력이든 분산될 수밖에 없어요.
글로리아 마크 교수의 연구 데이터를 다시 볼게요. 화면 체류 시간이 2004년 2분 30초 → 2012년 75초 → 2016년 이후 47초로 줄었어요. 방해받은 후 원래 작업에 복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25분이에요. 47초마다 끊기고, 돌아오는 데 25분이 걸린다면, 깊은 사고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요.
요한 하리(Johann Hari)는 저서 《도둑맞은 집중력(Stolen Focus)》에서 이렇게 정리했어요. 집중력이 무너진 건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거대한 힘에 의해 체계적으로 도둑맞은 결과라고요. 하루에 노출되는 정보량이 1986년 신문 40개 분량에서 2007년 174개 분량으로 늘었다는 추정도 있어요.
핵심은 이거예요. 이 환경에서 과거의 ADHD 진단 기준을 적용하면, 평범한 사람도 ADHD 환자처럼 보일 수 있어요. DSM-5의 ADHD 진단 항목인 "세부 사항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과제나 활동을 체계적으로 하지 못한다", "외부 자극에 의해 쉽게 산만해진다"는 2025년을 사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될 수 있어요.
만들어진 환자 — 과잉진단과 스마트 드러그의 그림자
여기서 한 가지 심각한 부작용이 생겨요. 경계가 흐려지면 진짜 환자도 피해를 봐요.
미국에서는 중·고등학생의 최대 25%가 ADHD 처방 각성제(애더럴, 리탈린 등)를 비의료적으로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JAMA Network Open(2023)이 보고했어요. 대학생의 약 20%가 시험 기간에 처방약을 불법 복용하고요. 이른바 '스마트 드러그'[^3]예요. FDA 데이터에 따르면 2012~2021년 미국 각성제 처방량은 45.5% 증가했어요.
아이러니한 건, ADHD가 아닌 사람이 각성제를 복용해도 학업 성적 향상 효과가 거의 없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있다는 점이에요. 오히려 불면, 식욕 감퇴, 심혈관 위험, 의존성 같은 부작용이 따라와요. 그런데도 처방은 늘고 있어요. 한국에서도 ADHD 치료에 쓰이는 메틸페니데이트[^4] 처방량이 2020년 대비 2024년에 약 2.4배로 증가했어요.
소셜 미디어가 ADHD 인식을 높인 건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어요. 실제로 진단이 늦어져 고통받던 사람들이 치료의 문을 열게 됐으니까요. 하지만 임상 진단과 소셜 미디어 기반 자가진단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어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소셜 미디어에서 ADHD를 알게 됐다는 환자가 대부분"이라는 관찰이 나오고 있어요.
진짜 ADHD는 엄연히 존재하는 신경발달장애예요. 이걸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문제는 환경이 만들어낸 집중력 저하와 신경발달장애로서의 ADHD가 뒤섞이면, 진짜 환자의 적절한 치료가 방해받고, 동시에 건강한 사람이 불필요한 약물 처방으로 끌려갈 수 있다는 점이에요.
오스왈드의 시선
저는 이 현상을 볼 때 데이터의 함정에 주목하게 돼요.
"성인 ADHD 5년간 5배 폭증"이라는 헤드라인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읽으려면, '진료 인원'이라는 지표의 특성을 이해해야 해요. 진료 인원은 공급 측 변수(진단 기준 확대, 보험 적용 범위, 의료 접근성)에 의해 크게 좌우돼요. 수요(실제 유병률)가 변하지 않아도, 공급 조건이 바뀌면 수치는 급등할 수 있어요.
2016년 한국이 건강보험 적용 연령을 65세로 확대한 건 사실상 새로운 시장을 연 것과 같아요. 잠재 환자풀이 한꺼번에 진료 시스템 안으로 들어왔으니, 이후 진료 인원의 급증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예요. 여기에 코로나 이후 원격 진료 확산, SNS를 통한 인식 확산이 겹쳤어요.
물론 이것이 "ADHD 증가는 착시일 뿐"이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어텐션 이코노미가 모든 사람의 주의력 기저선(baseline)을 낮춘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다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같은 수치라도 측정 조건이 달라지면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에요.
우리가 정말 물어야 할 질문은 "ADHD가 왜 늘었는가?"가 아니에요. "진단 기준, 인식, 접근성이 동시에 바뀐 상황에서, 이 수치를 어떻게 읽어야 정확한가?"예요.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47초밖에 집중 못하는 환경을 그대로 둔 채 개인의 뇌만 치료하는 게 맞는가?"예요.
문제의 핵심은 개인의 뇌가 아니라 시스템이에요. 우리는 환자를 치료하기 전에, 환경을 먼저 진단해야 하는 건 아닌지 질문해야 해요.
마치며
오늘 뉴스레터의 핵심을 세 가지로 정리할게요.
하나, ADHD 진단 급증의 상당 부분은 진단 기준 확대·인식 향상·접근성 개선의 결과이며, 순수한 유병률 증가와 동일하지 않아요. 수치를 읽을 때 '무엇을 측정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중요해요.
둘, 어텐션 이코노미는 모든 사람의 주의력을 구조적으로 약화시켜, 과거 기준으로 보면 누구나 ADHD 증상을 보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어요.
셋, 이 혼란은 진짜 ADHD 환자의 적절한 치료를 방해하고, 건강한 사람을 불필요한 약물 처방으로 이끌 수 있어요.
다음 뉴스레터에서는 이 구조의 설계자 쪽을 들여다볼게요. 어텐션 이코노미를 만든 실리콘밸리는 이 문제를 알고 있을까요? 그리고 각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요? ADHD 시리즈 2부에서 다루겠습니다.
📎 참고자료 & 더 읽기
핵심 출처
- 국민건강보험공단, "최근 5년간 ADHD 진료현황", 2024 (남인순 의원실 제출). : 오늘 뉴스레터에서 인용한 한국 ADHD 진료 데이터의 원출처예요.
- Gloria Mark, Attention Span: A Groundbreaking Way to Restore Balance, Happiness and Productivity, Hanover Square Press, 2023. : 47초 집중 시간 데이터의 원출처이자, 주의력 과학의 가장 종합적인 정리예요.
- CDC, "Data and Statistics About ADHD", 2024. : 미국 아동·성인 ADHD 공식 통계예요.
- JAMA Network Open, McCabe et al., "School-level Stimulant Prescription Rates and Student Nonmedical Use", 2023. : 학교 내 각성제 처방률과 학생 오남용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핵심 논문이에요.
배경 지식
- Johann Hari, Stolen Focus: Why You Can't Pay Attention, Crown, 2022. : 어텐션 이코노미가 집중력을 파괴하는 12가지 원인을 취재한 책이에요. 이 주제의 전체 그림을 잡는 데 추천해요.
- Herbert A. Simon, "Designing Organizations for an Information-Rich World", in M. Greenberger (ed.), Computers, Communications, and the Public Interest, Johns Hopkins Press, 1971, pp. 37-52. : "정보의 풍요는 주의력의 빈곤을 만든다"는 개념의 원전이에요.
- PMC, "ADHD Diagnostic Trends: Increased Recognition or Overdiagnosis?", 2022. : 과잉진단 vs 인식 향상 논쟁을 학술적으로 정리한 리뷰 논문이에요.
관련 영상
📝 용어 설명
[^1]: DSM-5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ition): 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하는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이에요. 전 세계 정신건강 진단의 사실상 표준으로, ADHD를 포함한 수백 가지 정신질환의 진단 기준을 규정하고 있어요.
[^2]: 간헐적 변동 보상 (Intermittent Variable Reward): 슬롯머신처럼, 예측 불가능한 보상이 불규칙하게 주어지는 시스템이에요. 소셜 미디어의 좋아요, 댓글, 새 콘텐츠가 이 원리로 작동해요. 뇌는 "다음에 뭐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도파민을 더 많이 분비해요.
[^3]: 스마트 드러그 / 스터디 드러그: ADHD 치료제인 애더럴(Adderall), 리탈린(Ritalin) 등의 각성제를 ADHD 진단 없이 학업·업무 집중력 향상 목적으로 복용하는 행위예요. 의학적으로 비ADHD인에게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어요.
[^4]: 메틸페니데이트 (Methylphenidate): ADHD 치료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중추신경 각성제예요. 리탈린, 콘서타 등의 상품명으로 처방돼요. 뇌의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농도를 높여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원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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