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2호 [눈]

두 번째 연필로 그려본 눈

2023.02.15 | 조회 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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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다섯 명의 삶을 연필로 적어 보냅니다.

 


 

낭만을 간직한 어른⛄

 

 

눈을 보며 마지막으로 설렘을 느꼈던 게 중학생 때쯤이었나...
한때는 펑펑 내리는 눈에 내 두 눈도 함께 반짝였는데
현실의 여러 경험들이 쌓이면서 어느새 저는 눈을 싫어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눈을 좋아하는 어른인가요?

여전히 낭만을 간직한 어른들에 대해 궁금해지는 오늘입니다.

by. 마커


 

ㄴㅏ는 가끔...눈물을..흘린ㄷㅏ.. ⚽️

 

 올해 목표를 ‘왕초보 축구인 탈출’로 정했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 이상은 축구를 하자는 계획과 팀원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는 공격수가 되자는 마음가짐과 함께 말이다. 나는 가끔 내 스스로를 ‘축구화에 삑사리로 튀어 들어간 돌부리’같다는 생각을 왕왕 하곤 했다. 모두가 피치를 뛰어다닐 때 나는 구석에서 따로 기초 훈련을 받거나 혹은 모두가 하프라인을 넘어서 다음 훈련을 시작할 때에도 난 아직 제자리에 머물러 있던 적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나로 인해, 나만 – 이라는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상황은 나를 돌부리로 느끼기에 충분했기에 ‘민폐가 되지 않는 사람이 되자’라는 결심은 진심으로 필요한 각오였다.

그러던 중 프로도 스폰서도 없는 아마추어 취미팀인 우리 축구팀이 제주에 전지훈련을 간다는게 아닌가. 전지훈련이라는 단어도 낯선데 제주도라니. 설렘보단 두려움이 컸고, 두려움과 동시에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고민을 많이 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언젠가 전지훈련을 가야한다면 차라리 이번 기회에 그 산을 넘어 보리라!’ 라는 의욕으로 견뎌보기로 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훈련을 위해 제주에 도착하자 난데없는 폭설이 찾아왔다. 망고도 자란다는 제주에 초대 받지 않은 눈폭탄과 영하의 날씨는 내 마음을 짓누르는 산의 무게만큼이나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훈련도 무서운데 폭설이라니 이만저만 걱정이 되는게 아니었다.

훈련을 하러 가기 위해 눈을 퍼내고, 빙판 길을 비틀거리며 뚫고, 강풍에 날아갈 것 같은 귀와 코 끝을 붙잡은 것 까진 기억이 나지만 막상 어떻게 훈련을 받았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너무 긴장한 탓에 너무 겁을 먹은 탓에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비밀인데 전지훈련을 가기 전 모자란 실력을 급하게 보충해보고자 축구 기본기 클래스를 매 주 두 번씩 듣고, 시간이 남으면 친구들을 불러 경기를 하며 사설 과외를 받아 왔었다. 친구들이 입을 모아 ‘전지훈련이 훈련을 하러 가는건데 전지훈련가서 잘하려고 훈련을 몰래 하는 사람이 어딨어?’라고 의아해 했지만 팀원들이 쌓아온 시간을 맞춰 가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걸 나머지 공부라고 한다지.

나머지 공부의 특훈 덕일까-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팀원들로부터 의외의 칭찬 세례가 쏟아졌다. '아주 잘했어!' 라는 말보다도 '실력이 늘었다'라는 말이 더 기쁜 축구 왕초보는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코치님들의 피드백을 들으며 '내가 오늘 적어도 민폐는 아니었구나, 돌부리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에 나도 몰래 눈물이 흘렀다. 이럴 땐 그냥 차라리 멋지게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 더 노력하며 이바지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했으면 참 멋있었을텐데.. 숨어서 안 운척 하려다 눈물이 좀 찌질하게 흘렀고 결국 놀림감이 되었다. 우는 것도 나머지 공부를 해야하나. 

제주의 폭설만큼 난데없는 훈련이었지만 마음의 뿌듯함이 남는 훈련이었다. 축구 실력도 성장했고, 축구만큼 마음의 각오와 결심도 성장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에 이제는 녹아버린 눈더미를 보며 또 하나의 각오를 세워보았다. 그건 다음 달에 들려드리리다.

 

by. 크레파스 


 

시청역 10번 출구 

 

 뒤척이며 일어나 창문 너머 힐끗 보이는 하늘이 회색빛이다. 힘든 몸을 일으켜 내다보니 길 건너 동네 산은 이미 밀가루를 뒤집어 쓴 것 같다. 아파트 단지의 도로와 정원도 소복하게 눈이 쌓여 하얀 도화지 같았다. 큰 송이 눈이 자기만의 속도로 조용히 내리는 평일 아침이다.  출근 전, 눈을 맞으며 산책하고 싶어 서둘러 준비한다. 일부러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시청역 10번 출구로 나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정동길로 걸어간다. 어제 아침에는 커피를 한 손에 쥐고 빠르게 걷는 사람들과 구김 있는 얼굴로 담배를 연신 피우는 사람들 사이로 북적이던 길이었는데. 오늘은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하고 차분하기만 하다.

덕수궁 돌담 위로 쌓인 눈이 그저 예쁘다. 헐벗고 있던 나뭇가지 위를 덮고 있는 눈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따뜻하다. 길 끝에 보이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간결하고 소박한 정동교회도 오늘은 달라 보인다. 높게 솟은 종탑은 어느 곳보다 가장 먼저 눈이 안착하여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갑자기 이문세의 ‘광화문연가’가 듣고 싶다. 내가 이 노래를 언제 알았더라. 어렸을 때 스키장에 가족들과 놀러 가면 필수코스였던 노래방에서 아빠가 열창해서 알았던가.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길 위에 서 있으니 아빠와 한 겨울 나이아가라 폭포를 바라보며 펍에서 맥주 마시던 날이 또 생각난다. 도시보다 일찍 어둠이 내렸던 곳. 상상 이상의 추위와 무시무시한 기세로 내리던 눈보라를 뚫고 들어간 작은 동네 펍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의 아지트 같았다. 덩치 큰 서양 할아버지 사이에 자리 잡은 부녀. 큰 유리창 너머 대차게 내리는 눈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니 감성에 젖어 든 아빠가 연애 시절부터 온갖 얘기를 늘어놓는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전혀 기억나지 않는 그날의 대화가 어땠는지 궁금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다만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놓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고 활기 넘쳤을 아빠의 모습을 간직하지 못한 아쉬움. 이렇게 눈이 오는 날이면 무방비 상태로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잔상에 기대어 꺼내보는 아빠와의 추억.

정동교회 정문 앞에 서 카메라를 켠다. 눈 내리는 아침, 이번에는 정동길에 서 있는 이 시간을 간직하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해본다. 점점 잦아드는 눈발이 아쉽기만 한 아침이다. 

by. 연필심 


 

눈👀으로 말해요💬

 

2023 2 6. 연필어린이집 아이들 모두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 보건복지부의 법 개정과 지자체의 세부기준 심사를 거쳐 어린이집 내 어린이들은마스크 착용 의무 없음’, 부모와 교직원은마스크 착용 권고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에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가정들에게 전면마스크 착용 자율화를 선언한다.

코로나가 시작된 무렵인 2020 3월에 개원한 연필어린이집은, 서로를 처음 봤을 때부터 우리의 얼굴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모든 국민이 다 쓰는 데다가 코로나 초기에는 이에 감염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화두였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장기화되면서 마스크가 사람의 하관을 가려서 발음 등의 언어발달 지연과, 감정 인지와 표현에 따른 사회정서발달에 대한 문제가 빈번하게 언급되었다. 코로나로부터 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기에 지원받지 못하면 후에 과연 괜찮을지에 대한 의문이 불안감이 되고, 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다 마스크 때문인 것 같고.. 부모의 마음은 늘 걱정이었다.

교사들은 이러한 상황을 직시해야 했다. 언어적인 지연은 가정에서 도와주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정서적인 부분은비대면이라는 새로운 소통 형식과 결합되어 문제가 커졌다. 나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알고 표현하는 영아 수준의 능력을 유아들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러니 그 상위 수준인 타인의 감정을 읽고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관련된 교육들이 필요했다. 크고 작은 지원이 이어졌으며 영아들과는 마스크에 표정 스티커를 붙여서 자신의 마음을 복합적으로 표현하게 해보고, 유아들과는 감정에 대한 어휘를 익히는 놀이를 지속하며 표정 대신 문장력을 높임으로써 보완시켜주는 등의 수많은 활동을 시도했다.

챙겨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상의 아이들과의 모든 대화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얼굴 부분에 각 상황에 따른 마음의 표정을 담고자 노력했다. 눈과 눈썹뿐이니 큰 차이가 있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점차 세분화되고 스킬이 늘어갔다. 눈을 뜨는 크기와 각도, 깜박이는 속도와 박자, 거기에 약간의 눈썹과 목의 서포트를 받아 고갯짓까지 더하니 특히 말이 없어지는 식사 시간조차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서로를 부르고 대화를 나누고 그 와중에 응원이나 재촉과 같은 차이를 가진 감정도 꽤 정확하게 전달되어 이를 주고받았다.

사실 마스크를 끼지 않고 당연히 보아야 할 상대방의 얼굴을 마음껏 봐왔다면 좋았겠지만, 3년동안 써 온 마스크를 벗고 나의 온전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하게 된 지금. 더 많은 감정과 생각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눈만 봐도 마음을 아는 하늘반에게 이젠 비밀은 없다!”

시선을 이해하게 된 만큼 앞으로 서로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게 되겠지그래도 우리 지금처럼, 눈으로도 계속 말하자. 이제 볼과 코랑 입도 함께!😜

by. 동글연필 


 

녹아서 사라져줘요 눈사람

 여섯 살 봄, 동생이 생겼다. 어른들은 그 정도 나이 차이면 질투 꽤 할 것이라 우려했지만 질투고 나발이고 인생에서 제일가는 장난감(?)이 생긴 터라 물고 빨고 최선을 다했다. 동생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게 된 후로 눈이 쌓이면 놀이터로 가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 작은 인간이 뭘 할 수 있겠냐마는 혼자라면 왠지 창피해서 마당에서 작게 눈 뭉치를 만들다 말 것을 내 편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열심히 눈을 굴렸다. 혼자 만들 땐 항상 얼굴을 몸통 위로 올리는 게 문제였지만 동생이 제법 조수로써 구실을 할 수 있어졌을 때는 더 큰 눈덩이를 굴려 얼굴을 만들 수 있었다. 정신없이 만들다 눈을 붙이고 눈사람의 형상이 갖춰지면 그제야 추위가 몰려와 덜덜 떨며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우리가 얼마나 큰 눈사람을 만들었는지 얘기하고 나서야 겨울을 보내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렇게 만들어 둔 눈사람은 날이 따뜻해져도 워낙 꽁꽁 뭉쳐둔 덕분에 쉽사리 녹지 않았다. 날이 따뜻해질수록 녹아 눈 뭉텅이만 남다 꽃이 피면 눈사람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열심히 만들어 둔 눈사람이 누군가 발로 차 산산조각이 났다는 글이 인터넷에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하도 발로 차진 눈사람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다 보니 눈사람 안에 돌이나 단단한 무언가를 집어넣었더니 비명이 들렸다는 이야기가 도시 괴담처럼 흐른다. 발로 찼다는 사람은 십중팔구 남자 사람이다. 도대체 왜 남자들은 그런 걸까.

 여자들은 허구의 남자들을 싫어한다고 한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주변인은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한두 가지 일로 하루아침 만에 싫어진 게 아니다. 남자에 대한 분노는 소리 없이 내리는 눈처럼 쌓였다. 분노는 쉬웠지만 마음은 시끄러웠다. 한번 눈이 밝아지니 우리 아빠나 지하철에서 민폐왕 아저씨들이나 별다를 게 없었다. 믿었던 동생마저 사랑꾼이었던 것은 허상이었는지 그저 그런 한남식 연애를 하고 있는게 보일 때면 싫어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동시에 일어 괴로웠다.

 눈사람이 물리적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없어지는 날이 다시 온다면 마음에 쌓인 분노도 녹아 없어질까?  

 

by. 기차 연필깎이


 

연필로 쓰는 우리를 소개합니다 👭
기차 연필깎이🚂   
정갈하고 뾰족하게 고장 없이 연필을 깎아주던 기차 연필깎이처럼 오래 쓸래요.
동글연필💫 아이들 사이를 동그르~ 굴러다니며, 함께하는 일상을 끼적여요.
마카🗒   슥슥- 연필의 유일한 그림쟁이입니다. 작은 네모칸에 제 생각을 담아 보여드릴게요.
연필심✏   단단함과 무름을 모두 가진 연필심처럼 유연하게 보고 듣고 생각하고,그렇게 살고 싶어요.
크레파스🖍   왕초보 여자축구 동호인. 축구로 인생을 다채롭게 그리고 있어요. 제 도화지를 함께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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