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의 ‘선의’가 ‘범죄’가 되는 순간- 법무팀이 대응해야 할 시점
법인의 대표가 외부 차입에 대해 담보를 제공하는 행위는 실제 경영현장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특히 계열사 간 유동성 확보나 주요 파트너와의 신뢰 유지를 위한 담보 제공은 기업 운영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담보가 개인 채무나 제3자에게 제공된 경우 형사적으로 ‘배임죄’라는 프레임에 빠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경영판단의 영역으로 생각한 행위가 순식간에 수사의 대상이 되어 대표는 물론 법인 전체에 위기가 덮칠 수 있습니다.
제가 수사관으로서 다수의 기업 배임사건을 처리해본 바, 배임죄 수사는 단순히 형식적 절차 위반을 넘어서 ‘의도’와 ‘정당성’의 해석 싸움이라는 점을 체감했습니다.
실무자는 이 관점을 이해하고 초기부터 수사 프레임을 바르게 설정해야 위기를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배임죄 성립요건과 담보제공이 문제되는 핵심 요소
배임죄는 형법 제355조 및 제356조에 따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 손해를 가한 경우”에 성립합니다. 여기서 대표이사는 당연히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간주됩니다.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임무 위배이고, 또 하나는 손해 발생 또는 그 개연성입니다.
법인이 명시적 동의 없이 대표의 결정으로 담보를 제공하고, 그 담보가 실행되어 실제 손해가 발생하거나 회수가 불투명한 경우 수사는 본격화됩니다. 특히 담보의 상대방이 대표와 개인적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법인의 경영상 실익이 불분명한 경우 더욱 위험해집니다.
또한 이사회 의결이 있었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한 판단 요소로 작용합니다. 대표의 일방적 결정으로 이뤄진 담보제공은 임무 위배 요소를 충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이와 관련해 대표의 ‘경영상 판단’이 타당했는지를 자주 문제 삼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손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 판단 과정이 합리적이고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면 배임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는 대표와 법무팀이 철저히 입증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수사 초기, 법무팀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수사는 일반적으로 고발이나 내부 고소에서 시작되며, 경찰은 대표이사의 자금흐름을 중심으로 수사망을 좁혀옵니다. 이때 법무팀이 수동적으로 대응한다면 수사기관은 오히려 ‘숨기는 게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표이사 입장에서 악의가 없었더라도, 수사관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담보제공의 경위를 설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 확보가 필수입니다. 이사회 회의록, 회계자료, 거래 조건 협상 이메일, 담보의 목적과 법인에 미친 실익 등을 종합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특히 담보가 실행되기 이전이라면 ‘손해 발생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수사의 초점을 흐릴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표의 개인 채무와 법인의 담보 제공을 구분 짓는 것도 중요합니다. 담보의 최종 수익자가 누구인지, 법인의 재무적 리스크가 어느 수준에서 관리됐는지를 구조화하여 설명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제가 수사팀장으로 있었던 시절, 단순히 대표가 외부인에게 담보를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기소 의견을 낸 적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했는지’, ‘그 행위가 실제 손해로 이어졌는지’, ‘경영상 이득이 존재했는지’ 등을 중심으로 판단했고, 이에 대한 설명이 탄탄하면 수사 방향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경영판단과 배임의 경계선: 누가,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많은 대표가 수사에 직면했을 때 “나는 회사를 위해 판단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수사기관이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경영상 판단이라는 것은 법률적 추상 개념이 아니라, 수많은 객관적 정황과 절차를 통해 입증되어야 하는 사실 판단의 영역입니다.
예를 들어 계열사 간 자금담보를 설정하는 경우, 통상적인 거래관계였고 담보설정 당시 회수 가능성이 충분했다는 점, 또 이사회에서 일정 부분 보고·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은 수사에 강력한 방패가 됩니다.
반대로 어떠한 내부 문서나 사전 설명도 없이 개인 명의의 대출을 위해 법인 담보를 설정했다면, 이는 대표에게 매우 불리한 구조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의 방향은 대표의 개인적 동기나 이해관계에 집중됩니다. 따라서 법무팀은 거래의 구조와 이면에 숨은 실익을 전면적으로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외부 회계법인의 의견서 등 제3자의 입증자료를 확보하여 대표의 판단이 배임이 아님을 강조해야 합니다.
실패한 경영과 범죄의 경계 – 법무팀이 지켜야 할 마지막 선
대표이사의 판단 하나가 회사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시대입니다. 단 한 번의 담보제공이 형사 고소로 이어지고, 수사가 장기화되면 자금줄이 막히고, 신뢰가 무너집니다. 이 모든 사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부 통제 강화와 수사 초기 전략적 대응입니다.
법무팀은 단순히 법률 검토를 넘어서 ‘수사기관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중심에 놓고 사고해야 합니다. 경찰 수사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와 함께라면, 형사 책임 회피는 물론 사전 리스크 분석과 예방이 가능합니다.
담보제공 자체가 문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제공했고, 왜 제공했고, 무엇을 얻으려 했는가’를 합리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그 판단은 정당한 경영권 행사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 합리성을 설계하고, 수사기관에 전달하는 것이 법무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기업의 리스크는 외부보다 내부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가의 갈림길엔 반드시 준비된 실무자가 서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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