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3] 🥦 깊어지는 가을날 곁들이기 좋은 음악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지난 주말에 옷장을 정리했습니다. 옷장 깊숙이 개켜뒀던 니트 같은 가을, 겨울 옷을 꺼내고 그 자리에 여름 옷을 채워넣었죠. 이불도 얇은 것에서 도톰한 걸로 바꿨고요. 진작부터 말은 여름 다 끝났네, 끝났네 했지만 이제야말로 정말 계절이 바뀌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아니, 며칠 전 야근을 마치고 회사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는데 테라스에 앉아 있자니 추운 거 있죠. 결국 실내로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저만 그런 거 아니죠?

하늘도 달라진 계절을 실감케 합니다. 더없이 맑고 높네요. 며칠 전에는 점심 먹고 나오는데 문득 사무실에만 앉아있기 너무 아까운 날씨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마침 그날 급한 업무도 없겠다, 오후 반차를 내고 일찍 퇴근해버렸어요. 막상 딱히 할 일은 없었던지라 평소보다 몇 시간 일찍 헬스장에 가서 진득하게 무거운 걸 들고 당긴 게 고작이었지만요. 그래도 회사를 빠져 나와 헬스장까지 맑은 하늘을 보며 걷는 십 분여만큼은 참 좋았습니다.

가을을 만끽하라는 듯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축제 소식이 들리네요. 지난 2년 동안 제대로 치르지 못한 만큼 올해는 축제 분위기가 더더욱 활기찬 것 같아요. 저는 가족과 지역 축제에 다녀왔는데 사람 정말 많더라고요. 주차하는 데부터 애를 먹었습니다. 이것도 재미라면 재미일 수 있겠죠. 구독자 님도 취향에 맞는 축제에 가보거나, 꼭 축제가 아니더라도 산과 들에서 가을 정취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나들이를 함께할 음악으로 올 가을 제가 자주 듣는 곡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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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iteflyte - If You Want It

지난해 날이 추워지면 옷을 겹쳐입는 것처럼 음악도 화음이 도드라진 곡을 찾게 된다고 소개한 적 있다. 공기가 차가워졌음을 피부로 확 느낄 때쯤 마침 적절한 노래를 만나게 되었다. 미국 소울(Soul), 알앤비(Rhythm & Blues), 펑크(Funk) 그룹 나이트플라이드(Niteflyte)의 <If You Want It>이다. 간단한 일렉트릭 기타 스트로크(Stroke) 연주에 이어 펼쳐지는 현악기 소리가 마치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 청명한 가을 하늘에 퍽 어울린다.

나이트플라이트를 이루는 두 멤버 하워드 존슨(Howard Johnson), 샌디 토라노(Sandy Torano)는 노래를 주고 받다가 코러스 부분에선 화음을 만들어낸다. 리드미컬한 기교가 여느 소울, 알앤비 뮤지션 못지 않다. 보컬, 현악과 더불어 <If You Want It>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베이스(Bass) 연주이다. 노래와 마디 사이 사이를 채우는 베이스 필인(Fill-in)이 도드라진다. 귀를 기울이다 보면 절로 리듬을 타게 될지 모른다.

알고 보니 나이트플라이트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1979년에 데뷔해서 정규 앨범 두 장을 끝으로 해체했다. 데뷔작에 수록된 <If You Want It>은 이들의 최대 히트곡이지만 빌보드 싱글 차트 37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한 뮤지션이라고 부르기에도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 이런 뮤지션의 이런 곡을 어떻게 슥 추천해주는 건지, 알고리즘이란 아무렴 고마우면서도 참 신통하구나.

🥦 Steely Dan - Home At Last

뮤지션들의 뮤지션, 스틸리 댄(Steely Dan)은 대중음악 녹음 수준을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도널드 페이건(Donald Fagen), 월터 베커(Walter Becker) 2인조 밴드 스틸리 댄은 집착이라는 단어가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독한 완벽주의자다. 이들을 대표하는 앨범 중 하나인 [Gaucho]의 첫 곡 <Babylon Sister>를 녹음한 일화가 단적인 예다. 노래 마무리를 페이드 아웃으로 처리하는데 1분 남짓한 사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무려 55번이나 연주와 녹음을 반복했다고 한다.

혹시 연주자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게나 많이 녹음한 건 아닐까?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Oasis)에서 드러머 토니 맥캐롤(Tony McCarroll)이 쫒겨났던 것처럼. 스틸리 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 래리 칼튼(Larry Carlton), 리 릿나워(Lee Ritenour), 제프 포카로(Jeff Porcaro) 같이 전세계 실용음악 지망생들의 롤모델들부터 웨인 쇼터(Wayne Shorter) 같은 재즈 거장까지 세션으로 참여했으니 연주자 실력 때문에 녹음을 거듭한 게 아니었다. 그냥 스틸리 댄이 지독해서였다.

그만큼 앨범 하나 하나가 매우 높은 레코딩 품질을 자랑해서 스틸리 댄은 오디오 마니아들이 가장 많이 찾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Home At Last>에 귀를 기울여보자. 소리를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듣길 권한다. 과연 피아노 소리부터 예사롭지 않다. 손맛이 보통이 아니다. 뒤따르는 드럼, 베이스, 색소폰, 기타가 모두 선명하면서도 서로 어우러진다. 사족으로 이 곡이 수록된 앨범 [Aja]는 우리 말로 '애자'가 맞다. 도널드 페이건의 지인 배우자가 한국 사람이었고 이름이 애자였는데 그 발음과 지인 부부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서 따왔다나.

🥦 Dmitri Shostakovich - Suite for Variety Orchestra No.2 Waltz (Richard Yongjae O'Neil)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왠지 느와르 영화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말하자면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분한 선우 같은 이미지랄까. 늦은 밤 홀로 방에 들어와서 불―형광등은 절대 안 된다. 간접 조명이어야 한다―을 켠다. 조였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셔츠 단추도 한두 개쯤 푼다. 창밖으로 도시 야경을 보며 위스키를 한잔 한다. 이때 위스키는 얼음은 물론 아무 것도 넣지 않고 니트(Neat)로 마신다. 음악을 켜는데 나오는 곡이 바로 <Suite for Variety Orchestra No.2 Waltz>다.

<Suite for Variety Orchestra No.2 Waltz>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imitri Shostakovich) 음악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다. 클래식 특유의 어려운 이름 때문에 '이게 뭐야' 했던 사람도 음악을 들어보면 대번에 십중팔구 '아!' 하고 동공이 커질 것이다. 이 곡은 흔히 '재즈 모음곡 2번 왈츠'로 불리는데 사실 '관현악단을 위한 모음곡 2번 왈츠'가 정확한 표현이라고 한다. 이미 재즈 모음곡 2번으로 굳어져버린 것 같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자.

한동안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이게 왜 재즈지?'하고 의문을 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리듬이 '쿵짝짝 쿵짝짝' 진행되니 왈츠란 건 알겠는데 재즈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이 곡이 만들어진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재즈는 미국에서 태동해 1930년대 들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작곡 연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Suite for Variety Orchestra No.2 Waltz>는 빨라야 1950년대 중후반으로 추정된다는데, 아시다시피 이때는 냉전시대였다.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사람이었다. 냉전 시대에 그가 접한 재즈는 미국에서 당대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한물 간 재즈였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재즈와 거리가 아주 멀 것이다. 한편으로는 쇼스타코비치가 재즈를 접했을 때는 이미 클래식 작곡가로서 그의 음악 세계가 진작 구축된 이후였을 테니 그가 재즈를 구사하는 데 한계도 있었을 테다. 그러니 <Suite for Variety Orchestra No.2 Waltz>은 쇼스타코비치가 왈츠 리듬에 재즈 느낌을 한숟갈 얹은 곡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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