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24] 🌻 러닝의 계절에 자주 듣는 세 곡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기나긴 추석 연휴를 보내주고 나니 성큼 시월이네요. 어제는 서울 기준으로 예보에도 없던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더라고요. 1, 2년 사이 언젠가의 가을에도 '겨울 아냐?' 싶을 만큼 추운 찰나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안 그래도 짧은 가을이 제 몸집을 나날이 쪼그라뜨리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네요. 자연을 어찌할 도리는 없으니 인간이 부지런해져야죠!

이 좋은 계절에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많아서 국가적으로 노동 시간을 줄여줬으면 좋겠을 정도입니다. 잠깐 떠올려봐도 카페 노상 테이블 자리에 앉아 지나는 사람 구경하기, 풀밭에 돗자리 펼쳐놓고 캔맥주 마시다가 깜빡 낮잠 자기, 적당히 낯설고 조그만 골목을 구석구석 걸어다니기... 그 중에서도 제가 요즘 부쩍 더 시간을 내는 활동은 바로 러닝이에요.

올해 3월 출전한 마라톤을 계기로 틈틈이 달리기 시작했으니 아주 오래된 취미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신선하고 달가운 마음으로 기회 닿을 때마다 집 근처 천변을 뛰곤 합니다. 가을 바람이 걸을 때보다도 빠르게 볼을 스치는 촉감도 새롭고, 적당히 솟은 땀을 금세 시원하게 식혀주는 순간도 중독적이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최근 집 근처를 뛰면서 자주 들었던 '런플리'의 일부를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아마 어떤 속도의 러너인지, 러닝의 목표가 뭔지, 어떤 시간대에 주로 뛰는지에 따라 각자 런플리 분위기가 상이할 듯하네요. 혹시 공유하고 싶은 러닝 BGM이 있으시면 댓글로 귀띔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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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잉넛 - 순이 우주로

러닝할 때 듣는 곡이라고 하면 심박수를 줄곧 18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그러니까 쉴새없이 꽝꽝 때려부수는 <말달리자> 같은 노래가 어울릴까? 내 경우는 적당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속도로 혼자 달리는 날이 가장 많다. 누군가와 같이 뛰면 확실히 덜 지친 채 멀리 갈 수 있지만 혼자 달릴 때 찾아오는 명상 같은 순간도 포기하기 어렵다.

달리다가 이어폰에서 <순이 우주로>가 흘러나오면 한 뜸 차분해지면서도 힘이 솟는 희한한 상태가 된다. 우주로 쏘아올리듯 몽롱한 신디사이저 키보드 소리에 넋을 놓고 쿵짝쿵짝 이어지는 드럼에 맞춰 무의식 속에 두 다리를 움직인다. 이 곡은 2006년 발매한 크라잉넛 5집 [OK 목장의 젖소]에 실렸다. 드러머 이상혁이 군대에서 딸을 생각하며 쓴 노래라고 한다. 노래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향수는 그래서일까!

1년 전 크라잉넛이 스튜디오에서 부른 라이브 영상이 있어 첨부해본다. 멤버들 간에 편안해 보이는 분위기도 좋지만 당최 늙지 않는 모습들이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정녕 락을 하면 안 늙나요...?

🌻 이랑 - 너의 리듬

이 역시 빠르지 않은 속도로 천변을 달리며 자주 들었다. 조금 전 '적당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속도로 혼자 달린다'고 썼는데, 종종 이렇게 한국어 가사가 조곤조곤 또박또박 들리는 노래를 들으며 뛰노라면 혼자이기보다 노랫말과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너의 리듬>의 가사는 꽤나 예민한 '너'에 대한 신변잡기적 이야기라 팟캐스트를 듣는 느낌으로 귀 기울여 듣기 좋다. '너는 사람들이 좀 더 예의가 발랐으면 좋겠지 / 뭔갈 물어볼때 '저기요'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지 / 손가락으로 찌르거나 밀치지 않았으면 좋겠지' 처럼 공감 가고 사소한 노랫말이 이랑의 담담한 목소리와 잘 어울린다.

노래에서 말하는 '각자의 리듬'은 달리기로 비유했을 때 페이스와 비슷한 것일 테다. 달리기뿐만 아니라 나 역시 일상의 면면에서 스스로의 기준을 고집하는 순간이 많아 좀더 이입했다. '엄마도 이해 못하고 친구들도 가까운 애완동물도 이해 못하는' 그런 리듬. 이 곡이 실린 이랑의 첫 번째 정규앨범 [욘욘슨]에는 솔직하고 유쾌한, 그러나 블랙코미디 같은 수록곡으로 가득하다. 혼자이면서도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은 순간에 듣기 참 좋다.

🌻 YOASOBI - 夜に駆ける (밤을 달리다)

근래 가장 숱하게 들은 러닝 곡이라면 사실 이것이다. 올해 11월 내한공연 발표를 했고 지난 여름 도쿄 섬머소닉에서도 봤.. 아니 볼 뻔했던 요아소비(YOASOBI)! 그녀의 노래에 뒤늦게 빠져서 그때 보고 왔어야 했나 후회할 만큼 즐겨 듣고 있다.

내가 주로 뛰는 시간대는 밤 10시 이후다. 대단한 이유는 없고 ① 그보다 이른 시간은 저녁밥이 충분히 소화되지 않았으며 ② 저녁 먹고 느릿느릿 산책하는 사람들로 천변이 너무 붐비기 때문이다. 이 곡을 듣고 있자면 한밤의 가로등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느낌이랄까, 밤에 달리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야간 러닝에 어울린다. (물론 가사를 뜯어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생각해보면 이 외에도 평소 즐겨 듣는 런플리의 주요 지분은 세카이노 오와리(SEKAI NO OWARI), 동경사변(Tokyo Jihen), 스페셜 페이버릿 뮤직(Special Favorite Music)... 이쯤 되면 J-POP이 러닝 BGM계의 큰손인 듯하다. 그들의 음악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벅차오르는 심상(?)이 달리기에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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