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52] 🌻 쏟아지는 별빛 아래 들었던 노래들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참 좋은 계절입니다. 이런 인삿말에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날이 365일 중에 며칠 되지 않죠. 길거리 사람들의 옷차림이 패딩조끼부터 반바지까지 알쏭달쏭 다양한 시기, 이른 아침엔 옷을 여미며 나갔다가도 한낮이면 겉옷을 벗고 아이스 음료를 찾게 되는 그런 날씨요. 팔다리를 휘적이며 걸을 수 있다는 자체로 자주 축복이라 느끼는 요즘입니다.

최근의 산책길에서 새로 찾은 재미라면 어린 은행잎을 발견하는 일이에요. 지금이 은행나무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는 시기라는 사실 아셨나요? 샛노랗고 번듯한 부채꼴 잎이 익숙한데, 그것을 새끼 손톱만큼 비례 축소해놓은 초록잎이 줄기에 송송 돋아나 있어요. 정말... 하찮고 귀엽습니다. 대개는 이파리가 너무 높이 달려 있어 관찰하기 어려운데, 가끔 나무 둥치에 피어난 친구들이 있으니 주변을 잘 둘러보세요!

제철음식처럼 어떤 특정 시기에만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이렇게 흔한 가로수에서 찾아냈더니 평범한 산책길도 300%쯤 즐거워졌어요. 아마 내년 봄에도, 그 다음 봄에도 어린 은행잎을 본 적 있냐며 어딘가에 조잘조잘 떠들고 있겠죠. 여러분이 요즘 찾은 재미는 무엇인가요? 하찮고 사소한 것이어도 알리고 자랑해주세요. 누군가의 영감이 되어 계절마다 반복할 재미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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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rillaz - Silent Running

별다른 일이 없는 날이면 보통 재택근무를 한다. 보통은 집에서 하루를 시작하지만 몸과 마음을 빠릿하게 정비해야 하는 날이면 이른 시간 비장하게 스타벅스로 출근한다. 집 근처에 일찍 여는 카페가 몇 없어서 선택했지만 요즘은 또 새로운 이유를 찾았다. 생각보다 이곳 스벅 매장의 선곡에서 괜찮은 수확을 하는 날이 많아진 것이다! (예전에는 재즈만 나왔던 것 같은데 아닌가?)

스벅에서 흘러 나온 이 노래를 들으며 블러(Blur)의 보컬 데이먼 알반의 향을 물씬 맡았다. 블러 노래 중에 이런 게 있었나 싶어 노래 검색을 해 보고서 이 노래를 알았다. 고릴라즈(Gorillaz)가 누구인가. 데이먼 알반이 블러 바깥에서 꾸린 부캐-그것도 4인조 '카툰 밴드'를 표방하며 철저한 세계관의 2D 캐릭터로 활동하는 가상의 그룹 아닌가. 먼 옛날 한국의 사이버 가수 아담 같은 느낌이랄까. 요즘은 버추얼 아이돌이 콘서트를 열고 인기가요 1위를 하는 세상인데 데이먼 당신은 몇 수 앞을 내다본 건가요(고릴라즈는 2000년 데뷔했다).

한번쯤 들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다 이렇듯 우연한 계기로 고릴라즈의 음악에 치이고서 이것저것 찾아 들어보니, 과연 블러가 주는 밴드 사운드를 넘어 음악적 스펙트럼이 드넓었다. 작년 발매한 <Silent Running>은 고릴라즈의 음악 중에서도 데이먼의 서정적인 음색이 돋보이는 편인 듯했다. 요즘처럼 푸른 날씨에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제목처럼 밤 러닝에도 어울려 즐겨 들었다. 마치 게임 맵 속을 달리는 기분이 든다.

🌻 소수빈 - 머물러주오

올해 봄에는 평소 듣던 플레이리스트(a.k.a.봄 캐롤) 위주로 지냈는데, 그 중 새로이 알게 되어 자주 들은 곡을 꼽자면 이 노래다. 차분하고 가만하지만 어딘지 흩날리는 벚꽃 잎과도 어울리는 산뜻함이 있어 봄 풍경을 만끽하며 듣곤 했다. 가끔 거창하지 않지만 사랑스러운 사랑 노래를 만나게 된다. 노랫말에 사랑이란 단어 하나 없이도 농도 짙은 감정을 말하는 노래들.

이 곡은 친구의 목소리로 처음 들었다. 친한 이의 결혼식에서 부를 축가로 연습하고 있는데 들어보겠냐며 술자리에서 생목소리로 불러주었는데, 봄 밤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선지 웬만한 라이브 영상을 본 뒤처럼 기억에 남았다. 행복을 바라는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노래로도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함께 눈을 뜨는 아침, 곁에 머무름만으로 완전해지는 기분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일 테니까.

🌻 전기뱀장어 - 적도

지난 주 회사 워크샵으로 사이판에 다녀왔다. 적도에 가까워 하늘이 가깝고 수평선이 둥글게 보이는 곳. 그 사실만으로 사이판은 과연 지극히 이국적인 장소였다. 저멀리 바다 끝을 바라보며 지구는 진짜로 둥근가봐, 어쩜 이곳 바다는 소다맛 색소를 탄 것처럼 신비한 색일까,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는 저 동굴 속엔 어떤 동식물이 살까 궁금해 했다.

사이판에서 인상 깊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조명 하나 없이 깜깜한 절벽 어딘가에 다같이 누워 별빛을 올려다본 밤이다. 평소 전기뱀장어의 <적도>를 들어오면서 '쏟아지는 별빛 아래~'로 시작하는 후렴구 가사가 그저 관용 표현인 줄 알았는데, 적도의 별빛은 정말 '쏟아진다'는 표현이 정직한 수준이었다. '눈 감으면 너의 머릴 흩트리는 무역풍의 밤', '밤새워 춤추는 고흐의 별들이 너의 두 눈 속에 가득히 차오르면...' 같은 노랫말이 이전과 다르게 들리게 됐음은 물론이다.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사이판의 별빛을 이 노래로 꼭꼭 감싸서 보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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