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36] 🌻 23년 결산, 우리만의 연말 시상식(2)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정말 특별한 레터를 보내게 됐어요. 이 레터가 발송되는 순간이 바로 올해 마지막 목요일 오후 4시이기 때문이죠! 어쩌다 보니 지난 2년간은 제가 새해 첫 레터를 담당해서 나름의 의무를 띠고 글을 써 내려갔던 기억이 나는데요. 의외로(?) 한 해의 마지막 레터에도 그에 버금가는 긴장감이 드네요. 뭐든 맨 끝과 시작은 거창해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이 생기나 봐요.

지난 주 로이🍄의 레터에서 말씀 드렸듯, PRIIISM은 총 3주간 각자의 연말 결산을 주제로 레터를 적고 있어요. 올해의 노래, 올해의 앨범, 올해의 신인 세 가지 주제로 각자의 한 해를 정산해보는 거죠. 사실 개인적으로도 올해의 무엇무엇에 대한 결산을 매해 행사처럼 치러오기 때문에 이번 기회가 제게도 유익했습니다. 그리고 크게 어렵지 않기도 했어요. 올 한 해도 3주에 한번 PRIIISM을 통해 제게 가장 좋았던 음악을 꾸준히 기록해뒀기 때문이에요.

새삼스런 말이지만 한 해 동안 저의 순간마다 가장 아꼈던 곡들을 눈과 귀로 담아주신 구독자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올해도 3주마다 돌아오는 마감을 빠뜨리지 않을 수 있었던 동기에 구독자님의 존재를 빠뜨릴 수 없으니까요. 모쪼록 내년의 사계절과 절기, 대소사를 음악과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 레터를 읽으시는 어디에서건 안전한 기분과 선의가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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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노래 | Blur - Tender

올해 2월, 종로의 작은 극장에서 영화 <애프터썬>을 봤다. 영화에 수록된 블러(Blur)의 <Tender>를 들으며 '이제껏 알던 노래가 아예 새로운 감정으로 다시 들릴 수 있는 일'에 대해 놀라워 했다. 음악 자체의 특별함으로 내게 다가올 수도 있겠으나 '음악을 둘러싼 맥락이 이렇게나 강렬하고 중요했구나' 실감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그런 블러의 <Tender>를 같은 해 8월, 도쿄의 락 페스티벌 '섬머소닉'에서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오직 블러를 보기 위한 도쿄행이었다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꿈꾸던 블러를 실물로 보고 와서 어땠는지 친구들이 물었을 때, 난 그럴싸한 답을 내놓기가 어려웠다. 공연 시간 90분 동안 품었던 생각이라곤 '내 눈앞에 진짜 블러라고? 90년대 영국의 그 블러? (잠시 뒤..) 아니 진짜 블러라고?' 고작 이런 것들이었으니까.

지금도 <Tender>를 들으면 찌는 듯 무덥던 공연장의 온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순간이 영영 끝나지 않길 바라는 청자에게 7분이 넘는 노래의 든든함이란. 열도의 공기에 몸을 기대놓고 좌우로 흔들거리며 'Come on Come on Come on~' 나른하게 흥얼거릴 뿐이었다. 그래서 '그 블러'의 공연이 어땠느냐는 질문엔 이제 겨우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삼십 년 전 그 노래가 지금의 나를 흔들어 놓는다는 사실만큼이나 말이 안 됐다고. 정말 말이 안 되게 끝내주는 공연이었다고 말이다.

* 올해의 노래 후보 : Blur <Tender>, 델리 스파이스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 The Knack <My Sharona>

🌻 올해의 앨범 | 전기뱀장어 [Fluke] (2016)

2023년 내 인생에 새롭게 들어온 존재이자 도전한 대상을 꼽자면 '달리기'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겠지만 그 시작과 계기는 지극히 미미했다. '3월에 10km 마라톤이 있는데 같이 나가보자'는 제안에 얼레벌레 참가비를 입금해놓고, 태어나 처음 러닝머신 아닌 야외에서 30분 넘게 달려보고, 대회 날 수천의 인파 사이에서 도심을 뛰었다. 숨을 겨우 몰아쉬며 받아 든 완주 메달이 반짝일 때의 성취감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대회 이후 달리기에 홀딱 반해버린 뒤 밤낮으로 달릴 시간을 엿보기 시작했다. 달릴 때 듣는 음악, 이른바 런플리를 성실히 꾸리기 시작했으니 달리기가 올해 내 리스닝 라이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이따금 차분한 템포로 달리는 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괴짜가족 엔딩곡의 인물들처럼 숨가쁘게 달리는 데 어울리는 곡을 찾아 헤맸으니까.

달릴 때 듣는 템포를 0(걷기)부터 10(전력질주)으로 나눈다면, 6~7 정도에 해당할 듯한 음악이 바로 전기뱀장어의 [Fluke] 앨범이다. 숨이 아주 턱끝까지 차오를 정도까진 아니지만 적당한 템포로 발걸음을 띄워주는 노래들. 무엇보다 최적으로 시원한 여름 밤의 온도 같은 분위기 때문에 언제든 산뜻한 기분으로 달리며 듣기 좋았다.

* 올해의 앨범 후보 : 전기뱀장어 [Fluke], SEKAI NO OWARI [EARTH], 선과영 [밤과낮], Eric Clapton [Reptile]

🌻 올해의 신인 | 신승은

이번 PRIIISM에서 결산을 하면서 가장 고민하지 않았던 부문이 바로 올해의 신인이다. 지난 플레이리스트를 오래 뒤질 것도 없이 그녀였다! 올해 봄의 나는 정말 신승은의 노래만 듣고 살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여름쯤 주춤한가 싶었으나 쌀쌀한 계절이 되니 외투 깃을 여미듯 신승은의 목소리가 다시 떠올라 가열차게 듣고 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 얘기를 털어놓기 위해 음악을 짓는 듯한 사람들. 일일이 솔직한 노랫말과 기타 음율에 나는 일일이 걸려 넘어지고 만다. 가끔 너무 내 일에만 골몰하는 게 아닐까, 내 앞가림에 바빠 남의 얘기에 들일 관심이 바닥났다고 느낄 시점마다 이런 노래는 실용적 역할을 해낸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와 노래에 귀 기울일 에너지가 남았단 사실을 일깨워준다.

새해로 넘어갈 날이 다섯 손가락만큼도 남지 않았다. 같은 해가 뜨고 지고, 결국 똑같은 날들인데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연말은 왜 이렇게나 특별하게 느껴지는 걸까. 새로운 365일이 주어진 해에도 연말의 기분처럼 하루하루를 애틋하게 여기며 좋은 노래를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막연히 생각으로만 품기보다 이렇게 활자로 내놓는다면 성공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굳게 믿으면서.

* 올해의 신인 후보 : 신승은, 요아소비(YOASOBI),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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