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63] 🥦 한여름의 초입에서 더위 끝을 상상하다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장마를 지나고 있습니다. 구름이 끼고 비가 내려서 온도는 그리 높지 않은데 습도가 높은 탓에 조금만 걷고 움직여도 등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네요. 그래도 차라리 지금이 낫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기가 지나면 뜨겁고 습한, 푹푹 찌는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테니까요. 저처럼 땀 많은 사람에게 여름은 고생스러운 계절입니다. 우리 모두 더운 날 덜 지치고 슬기롭게 나길 바라봅니다.

원래 그런 것을 그저 받아 들이자고 되뇌이곤 합니다. 원래 여름은 덥고 습하고, 겨울은 춥고 건조한 계절이죠. 내 살끼리 닿는 것조차 싫도록 끈적하게 만드는 더위, 휴대전화 조작이 어려울 만큼 손이 어는 추위도 원래 그 계절엔 그런 것이니, 뭐 어떡하겠어요. 올 여름엔 시원한 수박, 달달한 복숭아 같은 과일을 먹고 어디 시원한 곳에서 차나 커피를 홀짝이려고요. 땀을 좀 흘리고 들이켜는 평양냉면 국물에 소주 한잔, 아니면 첫 모금에 짜릿해질 만큼 차가운 맥주도 좋겠네요.

그렇게 지내다 보면 마침내 날이 선선해지겠죠. 더위가 갈수록 길어지니까 이제 9월, 멀게는 10월은 되어야 공기가 식을까요. 그러면 가을이 올 테고요. 가을이면 저는 늘 '아 올해도 이렇게 저무는 건가'하는 생각이 드는데 구독자 님은 어떤가요. 저는 가을이면 연말이 보이고, 금세 해가 바뀌어서, 또 한 살 늘어난 스스로를 상상해보게 됩니다. 음, 이렇게 생각하니 더위가 길어서 좋은 점도 아주 없진 않네요.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 하루를 잘 채워나가는 것이겠죠. 이번에도 역시, 요즘 즐겨 듣는 세 곡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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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livia Dean - Dive

장마가 지나가면 진짜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나는 후텁지근한 날이면 시원한 물에 풍덩 빠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2년 전 어느 해수욕장을 찾아간 적이 있다. 전북 군산에 위치한 곳인데, 해변이 모래가 아니라 몽돌로 이뤄져 있어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SNS에서 본 것처럼 제주도 뺨치는 에메랄드 빛까진 아니었지만 바닷물이 꽤 맑고 푸르렀다.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입어 나도 물에 몸을 밀어 넣었다. 얼마만이었더라 바닷물에 몸을 담근 게, 10년도 더 될 것 같은데.

수영을 못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려나, 물에 빠지는 것은 왠지 아찔하고도 낭만적인 느낌이 있다. 수압으로 인해 온몸의 감각이 평소, 그러니까 물 밖에 있을 때와 사뭇 다르잖은가. 그래서 사랑에 관해 말할 때 흔히 '사랑에 빠졌다'고 하는 걸까. 사랑이 막 시작될 때면 일상이 사뭇 다르게 느껴지니까 말이다(그러고 보니 물놀이도 사랑도 처음엔 심장이 빨리 뛰지만 하다보면 본래 박자대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여하튼 올리비아 딘(Olivia Dean)의 <Dive>는 사랑이 막 시작될 때 감정을 풍덩 다이빙하는 것에 빗댄 곡이다.

<Dive>는 지난해 알게 되었다. 그때도 좀 들었던 것 같은데 요즘 정말 많이 듣는다. 알고리즘 덕분에 만난 한 라이브 공연 때문이다. 그 공연은 지난 4월에 열린 2024 미국 코첼라 밸리 뮤직 & 아츠 페스티벌 무대인데, 아니 그런데, 며칠 전까지 있던(최근 한 달여 매일 같이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그 영상을 봤는데!) 공연 영상이 지금은 사라졌다. 아쉬우나마 그 모습과 분위기가 가장 비슷한 공연 영상을 소개하니 라이브로도 꼭 보시길 권한다. 올리비아 딘(Olivia Dean)과 <Dive>의 매력에 풍덩 빠져버릴 것이다.

🥦 Bobby Vinton - Mr. Lonely

얼마 전 모처럼 서울 갈 일이 있었다. 용무 두 건을 마치고 나니 시간은 오후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주말 저녁 서울특별시 마포구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할 일이 끝났다? 전주로 내려갈 게 아니라면 다음 행선지는 정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2015년부터 들락거리기 시작한, 2년 전 PRIIISM 1주년 행사를 진행한 적도 있는 단골 LP바로 향했다. 안타깝지만 그날도 내가 첫 손님이었다. 앉던 자리에 앉아 맥주를 한두 모금 홀짝이다 몇 곡을 쪽지에 적어 냈다. 곧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

돌이켜 봐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날 유독 어두운 곡을 연달아 신청했나 보다.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오히려 기쁘고 축하할 일이 있었다), 딱히 힘들 것도 없었는데(당시 몸도 마음도 별 일 없었다) 말이다. 보다 못했는지 사장님이 말을 걸어 왔다. "요새 뭔 일 있어?" 비로소 뭔가 꿈에서 깨는 것 같았다. "훵크(Funk) 같은 거 좋아하잖아."라고 덧붙인 사장님 말에 분위기를 바꿔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음악을 신청했다. 그 사이 손님들이 떠났고 다시 나와 사장님만이 바에 있게 되었다.

다음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가 신청한 게 아니었다. 사장님이 고른 곡이었다. 제목은 모르겠지만 멜로디가 낯설지 않았다. 신파스러운 반주에서 노래의 연식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윽고 나온 노랫말 첫마디부터 나는 저격 당해버렸다. 가성으로 처리한 끝음이 마음을 후벼팠다. 사장님이 그날 나를 보고 틀은 곡인지, 그냥 틀었는데 내가 반응한 것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생각할 따름이었다. '아, 이래서 내가 여길 오지.'

🥦 Of Monsters And Men - Mountain Sound

이것이 아이슬란드 감성인가, 오브 몬스터스 앤 멘(Of Monsters And Men) 음악은 왜인지 광활한 대자연의 감성을 자아낸다. 숑🌻이 소개한 적도 있고 오래 전 <효리네 민박>에 삽입되어 주목 받았던 이들의 <Little Talks>도 그렇고 이번에 소개할 <Mountain Sound> 또한 그렇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습기가 자욱한 숲 속을 탐험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근래 운동 시장에 러닝에 이어 산을 달리는 트래킹이 유행하고 있다던데, 트래킹 할 때 들으면 제격일 것 같다.

말들이 탁 트인 초원을 내달리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Mountain Sound>를 듣고 어떤 모습이 그려지든 주목하고 싶은 점은, 이들의 음악이 대개의 대중음악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또다른 아이슬란드 뮤지션인 비욕(Björk), 시규어 로스(Sigur Rós) 음악 역시 남다른 면이 있다. 오로라가 드리워지고, 화산이 폭발하고, 수시로 눈이 내리고 어두컴컴한 날이 많은 아이슬란드의 환경이 아이슬란드 뮤지션들의 음악에 배어나는 것일까.

<Mountain Sound>는 오브 몬스터스 앤 멘의 첫 번째 정규 앨범 [My Head Is An Animal]에 수록되었다. 앞서 언급한 이들의 대표 곡 <Little Talks> 역시 이 앨범에 들어 있다. 두 곡이 마음에 든다면 앨범을 정주행 해보는 것을 권한다. 최근 방영하기 시작한 한 예능 프로그램이 마침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다고 하니, 그 방송을 보시는 분들에겐 아이슬란드 매력에 푹 빠지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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