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2] 🌻 봄바람이 다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구독자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숑🌻입니다. 겨울잠을 자듯 납작 엎드려 연초를 보냈는데, 확실히 3월로 접어드니 주춤주춤 생기가 돈다고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아무려면 볼에 닿는 바람이 하루하루 부드럽게 느껴져서 한낮이면 벌써 봄의 중턱 같더라고요. 삼라만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난 5일이었으니 이젠 따뜻해질 때도 된 것 같아요.

근래를 돌아보자면 미세먼지 낀 듯 마음이 텁텁해지는 뉴스를 매일 들여다보느라 자주 절망하기도 했어요. 가까운 친구들의 건강과 안부를 전보다 자주 묻기도 했습니다. 내 손으로 어쩌지 못할 만큼 거대한 문제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중심을 잃지 않도록 눈앞의 징검다리에 또박또박 집중할 도리뿐이겠죠. 뉴스 포털을 닫아도 시간은 지체 없이 나를 통과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이러나 저러나 건강이 최고입니다! 어쩌면 갑갑한 격리생활 중에 PRIIISM을 받아보신 구독자님도 계시겠죠? 오늘도 각기 다른 삶의 터전에서 같은 글을 읽으실 구독자님을 생각하며, 요즘 기지개를 켜듯 즐겨 듣는 노래들을 골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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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f Monsters And Men - Little Talks

우연히 귀에 굴러 들어온 노래가 마음에 쏙 드는 순간의 기쁨이란. 오, 이 노래 뭐지? 가수와 제목을 확인하고, 조금 더 궁금해져서 생소한 밴드 이름을 포털에 검색해보고, 결과가 많으면 많은 대로 희소하면 희소한 대로 정보를 갈급히 눈에 담는다. 예전에는 이런 순간이 꽤 잦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분기별 이벤트 급이다. 그렇기에 가끔 좋은 음악이 귀에 찾아와줄 때 더욱 소중히 쥐어두려 한다.

오브 몬스터즈 앤 맨(이하 OMAM)은 아이슬란드 5인조 밴드다. <Little Talks>를 들으며 어딘지 고전 설화 속 첨탑의 이미지나 서늘한 분위기를 느낀 이유가 있었다. 반바지 차림으로 쿨하게 해변을 거니는 남성이 그려진 앨범 커버 탓도 있었을 테다. 남녀 보컬이 메기고 받는(?) 밴드가 흔하지는 않으니 경쾌한 트럼펫 연주와 더불어 신선한 느낌을 준다. 멜로디에 비해 가사는 서글프다. 사별한 노부부를 보고 떠나간 이와 남겨진 이가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썼다고 한다.

음악 맛집이라 불리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도 이들의 노래가 등장한다. 제목은 <Ditry Paws>. 곡과 맞춤으로 어울리는 뮤비와 함께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북유럽 신화 속 괴물 같은 형상이 눈밭을 달리는 장면을 보니 또다른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Sigur Ros)가 떠오른다.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그들의 음악을 즐겨 듣던 이들이라면 OMAM 역시 마음에 들 것이라 확신한다!

🌻 동방신기 - 너희들 것이니까

8090 출생한 여성이라면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나 때는(Latte is...) 초등학교 새로운 반에서 옆자리 짝꿍과의 인삿말이 "너 동방신기 중에 누구 제일 좋아해?"였다. 2005년의 동방신기란 정말로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15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2005년 즈음의 나로 돌아간 듯 기억이 조작된다. 알지 알지, 우리 그날 우유에 제티 타 마시고 당번이라 칠판 지우개 털고 놀토라고 집에 일찍 갔었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2005년 발매된 싱글(타이틀곡은 무려 <Hi Ya Ya 여름날>)의 수록곡, <너희들 것이니까>를 이따금 찾아 듣는다. 이 노래는 사실 윤상 원곡이지만, 조곤조곤한 원곡보다 동방신기 버전이 좀더 청량하고 가사가 잘 와닿는 것 같다고 느낀다. 멤버들의 목소리가 이렇게 일일이 힘 있고 맑았는지 감탄하게 되는 건 덤이다.

어렸을 때와 전혀 달리 들리는 가사들이 있다. '이제 세상의 어른들은 다투지 않기로 했단다', '잠시 너희들이 빌려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은 결국 우리가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물' 같은 부분이 그렇다. 세상의 어른들은 여전히 치고박고 다투기 바쁘고, 기후위기는 2005년과 비할 수 없이 심각하게 치닫고 있다. 정말로 평범한 내일의 꿈조차 꿈으로 끝나지 않을지 겁날 때가 많다. 치고박는 싸움도 설 수 있는 땅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다. 미래의 지구를 빌려 쓰는 채무자로서 덜 미안할 수 있는 방법을 오늘도 고민하게 된다.

🌻 선우정아 - 우리네 봄

여러 해째 사용하는 음악 어플에서는 월별로 어떤 노래를 가장 자주 들었는지를 타임머신 기능으로 알려준다. 작년 3월에 어떤 노래를 듣고 살았는지 꺼내보니 이 노래가 나왔다. 봄이 갔다고 금세 까맣게 잊고 지냈다는 사실이 머쓱할 만큼 어김없이 좋아서 귓바퀴가 사르륵 녹는 것 같았다.

선우정아의 나른한 목소리와 고운 멜로디도 사랑스럽지만 내게 단연 포인트였던 건 노랫말. 이토록 포근한 분위기에 그저 봄을 찬양하는 노래였다면 이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네 회색빛 인생에 이 봄바람이 무슨 상관 있겠냐며, 동산 뒤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귓전으로 흘리며 먼 곳에 시선을 던지는 태도가 정말! 폭닥해지는 날씨를 덩달아 고요하게 관조하고 싶어진다.

물론 마음이 마음처럼 평온할 수 있다면 그건 마음이 아닐 것이다(라임 무엇?). 헤쳐나갈 일상만으로도 혹독한데 혼돈과 혐오로 범벅된 뉴스에 정신이 피폐해질 때, 그냥 모든 소음 앞에서 귀를 막고 싶을 때 차분히 앉아 이 노래를 들어보자. 이 퍽퍽한 인생에 봄바람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읊조리다 보면 눈앞의 문제가 묘하게 아지랑이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마음 앞에서 내릴 수 있는 선택 가운데 감정을 다스리는 데는 가장 괜찮은 방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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