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62] 🌻 유월의 어감처럼 기분 좋게 들은 플레이리스트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3주년 특집호를 준비하느라 한 달 만에 레터를 씁니다. 일주일 차이일 뿐인데 되게 오랜만에 적는 기분이 들어요! 지난번 제가 썼던 레터를 다시 읽어보니 바빴던 5월에 대한 얘기가 있어서 더 그래요. 벌써 6월의 끝을 바라보는 시기니까요. 너무 새삼스런 관용구지만 시간이 뭐 이리 빠른지 모르겠습니다. 설렘으로 맞이한 2024년도 딱 절반이 꺾여가고 있네요.

구독자 님은 6월을 좋아하시나요? 보통은 좋아하는 계절을 꼽으니까 '좋아하는 월'을 생각할 일은 많지 않은데, 전 언젠가부터 6월을 특별히 좋아하게 됐어요. 1순위로 좋아하는 시월처럼 받침이 사라져 발음이 부드러워진 달이기도 하고, 청명하고 푸르른 여름 하늘이면서 아직 한여름만큼 무덥지 않고.. 이렇게 햇볕이 부드러울 시절의 마지노선을 보들보들 야들야들한 마음으로 즐겁게 보내야지, 그런 생각으로 지냈습니다.

물론 초여름다운 6월을 그저 즐기기엔 당황스러운 폭염이 잠깐 지나기도 했죠. 기후위기가 거듭될수록 일년 중 음악 들으며 걷기 가장 좋은 계절의 틈새가 나날이 좁아질 것 같아 서글프네요. 일단은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매일을 착실히 보내야겠죠. 오늘은 좋아하는 달에 가장 자주 귀에 담은 노래들을 즐겁게 소개해봅니다. 상반기의 남은 며칠도 유월의 어감만큼 부드러운 마음으로 지내봅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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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아더나잇 - 초록 전쟁

아무래도 양심에 손을 얹고 이젠 초여름이라고 부를 수 없겠다, 라고 지난 주 평일에 생각했다. 별안간 34도까지 치솟던 서울 날씨에 하필 자취방 에어컨까지 고장나는 바람에 고난 주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바탕 비가 내린 덕분인지 숨통이 트인 틈을 타 초여름의 노래들을 찾아 들었다. 작년 이맘쯤에도 나는 위아더나잇의 목소리를 성실하게 듣고 있었다.

"여름이 오기 전 세상이 끝날지 몰라~", "너 라디오헤드 음악 좋아해? 왕가위 영화는 어떤 게 좋아?" 그들의 노래 <초록 전쟁>을 듣고 있자면 서툴게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바쁜 새내기 시절의 유월이 떠오른다. 종강이랍시고 다같이 술을 퍼 마시고 언젠지도 모르게 희붐한 아침을 맞이해버린 순간. 밤새 떠들었지만 저마다의 불안만 털어 놓느라 별다른 인상은 남지 않는 그런 대화. 시간이 지나 뒤돌아봤을 때에야 그런 시절이 지금의 나를 완성했나, 어쩌면 불완전한 그때가 지금보다 더 생동감 있지 않았나 생각할 뿐이다.

사족: 위아더나잇의 노래 <티라미수 케익>이 최근 쇼츠, 릴스에서 역주행으로 인기란 소식을 뒤늦게 알았다. (T라 미숙해~♬) 이 기회에 힘입어 위아더나잇의 떡상을 기원해본다. 모든 여름 밤에 이들의 노래는 홈키파만큼 청량하고 시기적절하게 어울리니까!

🌻 Suede - Like Kids

여느 때와 같은 바쁨에 절여져 관성적으로 SNS 피드를 훑던 날이었다. '어떤 페스티벌에 누가 온다더라, 누가 단독으로 내한한다더라' 아무리 들어도 시큰둥했는데 간만에 눈이 띠용 떠진 뉴스. 바로 스웨이드(Suede)의 내한공연 소식이었다. 스웨이드라니! 블러, 펄프, 오아시스와 동시대에 브릿팝을 쌓아 올린 밴드여서 그런지 이들의 라이브를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긴 작년에 (바다를 건너 가긴 했어도) 블러 공연을 보고 왔으니 스웨이드도 못 볼 이유는 없다. 아니 그래도 한국에서 본다니까 너무 신기한데...

아마 취준 시절쯤 스웨이드의 음악을 가장 자주 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전주만 들으면 늑골이 팽창할 듯 벅차오르는 <Beautiful Ones>부터 왠지 모를 반항심을 심어주는 <So Young> 등.. 내가 생각하는 이들의 특징이라면 폭죽 같은 목소리에 퇴폐미, 비애 가득한 사운드다. 그 짜릿한 낙차가 늘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인생에 느끼는 애증(愛憎) 그 자체가 스웨이드의 음악이다. 라이브로 보게 될 그들의 모습은 어떨까. 공연 날까지 부지런히 트랙을 돌리며 설렘을 키우고 있을 테다.

🌻 유다빈밴드 - 노래는 불빛처럼 달린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러닝에 대한 열정이 한풀 죽었다. 여름엔 역시 실내 운동 아닌가. 크로스핏이니 클라이밍이니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덥고 습한 바깥에서 달리기를? 그럼에도 야외 달리기만이 줄 수 있는 쾌감과 뿌듯함이 있다. 플레이리스트에서 근래 달리기에 가장 큰 동력이 되어준 노래를 꼽자면 바로 유다빈밴드가 다시 부른 페퍼톤스의 <노래는 불빛처럼 달린다>였다.

(최근 155호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페퍼톤스 20주년 앨범 Side B에는 잔나비, 루시, 이진아, 스텔라장 등 짱짱한 후배 가수 열 팀의 리메이크 곡이 실렸다. 개인적으로는 대다수가 원곡보다는 아쉬웠는데 단 하나, 이 곡은 유다빈밴드 버전이 훨씬 내 취향이라고 느낄 만큼 마음에 명중했다. 유다빈밴드가 90년대에 데뷔했다면 투니버스 만화주제가를 섭렵했지 않을까? 특유의 용기 있고(?) 사람 벅차게 하는 목소리와 끝음 처리가 유독 돋보인다.

이번 글을 쓰면서 라이브 영상 하나를 찾아 봤는데, 앞부분만 보고도 음악을 들으며 상상한 모습 그대로라 '이거지 이거지..'를 오타쿠처럼 거듭 중얼거렸다. 그래, 이 분위기엔 수수한 단발에 흰색 반팔 셔츠여야지. 노랫말처럼 달려가듯 벅차는 표정에 터질 듯한 에너지여야지, 정말 이게 맞지.. 하는 느낌. 이들의 무대도 머지않은 미래에 라이브로 만나볼 수 있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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