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장마’, ‘장마철’, ‘장맛비’의 학술적 정의를 새롭게 정립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후변화로 장마의 양상이 다양해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몇 해 전부터 이어진 이상기후를 생각하면, 장마를 시작으로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해 온 기후·환경 관련 개념들도 하나둘 다시 정의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사계절이라는 말도 무색해질 만큼 봄, 가을도 많이 짧아졌잖아요.
환경은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주제인 만큼 정부 및 NGO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오랫동안 다뤄온 공익활동 소재인데요, 그렇다 보니 캠페인 유형과 형태, 콘셉트 등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시대적 상황에 따라 특정 주제가 트렌드처럼 부각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동안 제가 경험해 본 환경 캠페인 중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한 환경 커뮤니케이션을 사례들을 소개해 볼 텐데요. 익숙한 주제라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고,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살펴보도록 할게요.
🖼️ 하나의 장면이 그 어떤 메시지보다 오래 기억됩니다.
– 기후위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방법
기후대응 캠페인 아이디어를 고민할 때마다 떠오르는 방송이 있는데요. 바로 2010년에 방송된 '무한도전-나비효과’편입니다. 요즘은 집중호우, 폭염, 폭설 등 예상치 못한 기상 현상으로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지구온난화는 조금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어요.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면서도, 당장 실천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심리적 거리감이 있었죠. 그때 무한도전의 ‘나비효과’편은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이 지속된다면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난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 나게 보여주었습니다.
멤버들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로 연결된 몰디브 리조트와 북극 얼음호텔로 휴가를 떠납니다. 이때 몰디브 팀이 더위를 피해 에어컨을 켜자 북극 팀이 머물던 공간의 히터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열기가 높아지면서 북극 얼음이 서서히 녹고, 녹은 물은 다시 몰디브 팀의 공간으로 떨어지죠. 처음에는 서로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웃어넘깁니다. 그런데, 외부에서 활동하던 멤버의 에너지 소비까지 더해지면서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어요. 결국 북극 호텔의 얼음은 무너져 내리고, 몰디브 팀의 공간은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진 상황이었지만, 당황하는 멤버들의 표정과 눈앞에서 변해가는 환경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미래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처럼 환경 캠페인은 때로 정교하게 다듬은 메시지보다 이미지 한 장면으로 오래 기억되기도 합니다. 얼음 위에 고립된 북극곰이나 플라스틱에 목이 낀 바다거북의 사진처럼요. 브라질 예술가 넬레 아제베두의 얼음조각 전시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그녀는 칠레 산티아고 한 대학 계단에 사람 형상을 한 얼음조각 1,000개를 설치 했어요.별다른 메시지 없이 뜨거운 태양 아래 서서히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느끼게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불과 3~40분 만에 사라지는 얼음조각들을 보면서, 3~40년 뒤에 지구 온난화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우리의 모습을 한 번쯤 상상해 보지 않았을까요
♻️ 라벨을 지웠더니, 브랜드의 가치가 보였습니다.
– 아이시스 무라벨 생수
코로나 이후, 일회용품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플라스틱 생산과 제조,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이 인체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결과들이 발표되면서 플라스틱 줄이기는 가장 시급한 환경캠페인 주제 중 하나로 부각됐죠.
기업들도 플로깅, 다회용기 사용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플라스틱 줄이기에 동참했는데요. 그중 롯데칠성의 아이시스는 ‘무라벨’이라는 제품 자체를 바꾸는 방식으로 플라스틱 줄이기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식음류 마케팅 관점에서 라벨은 상품 진열 시 브랜드를 가장 손쉽게 알릴 수 있는 기본적인 수단입니다. 따라서 라벨을 포기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에요. 그런데 아이시스는 분리배출의 편의성, 재활용률 제고, 플라스틱 사용량 절감 등을 앞세워 국내 최초로 무라벨 생수를 선보였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한 기업의 선택이 단순한 환경 캠페인을 넘어 시장과 제도의 변화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아이시스 무라벨’ 생수는 가치소비의 확산과 맞물려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이는 매출로 이어졌습니다. 라벨을 버렸더니 오히려 새로운 브랜드 가치를 얻게 된 거죠. 이러한 반응에 경쟁사들도 잇따라 무라벨 생수를 출시하였고, 올 초 온라인몰 및 대형마트 먹는 샘물의 무라벨 의무화라는 제도적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보통 환경 관련 제도는 정부에서 기준을 먼저 만들고 기업과 소비자가 따르는 방식으로 추진되는데, 무라벨 생수는 한 기업의 환경경영 방침이 소비자 선택을 거쳐 업계 전반의 새로운 기준으로 확산된 특별한 사례라 할 수 있어요.
🌿자연을 지키는 일이 나를 돌아보는 일이 된다면
- WWF UK 자연 처방전
WWF UK의 'A Prescription for Nature' 는 지금까지의 환경 캠페인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연의 중요성을 알렸습니다.

2024년 세계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진행된 이 캠페인은 하루 20분의 야외 활동만으로도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의 정신 건강을 치유하는 자연의 힘’을 강조했어요.
WWF UK는 도심에 “숲의 은신처”라는 주제로 한 체험 공간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잠시나마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자연을 의약품 라벨처럼 표현한 광고를 통해 ‘자연 처방전’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환경단체들은 ‘환경을 위해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편인데, “A Prescription for Nature”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이점을 보여준 캠페인이죠. 즉,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개인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말하기 보다, 자연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회복시키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왜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 것이죠.
🤔같은 환경이라도, 관점에 따라 방식은 달라집니다.
환경은 오랜 시간 반복해서 다뤄 온 주제인 만큼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공공캠페인 소재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같은 메시지라도 어떤 관점으로 풀어내느냐에 캠페인의 형태와 과정, 효과는 달라지죠.
‘무한도전-나비효과’와 얼음인형 전시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통해 기후위기를 체감하게 했습니다. 아이시스는 오래된 관행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시장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또한 WWF UK는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를 개인의 회복이라는 가치로 전환했습니다.
환경 캠페인은 때로는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게 만들고, 새로운 제품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보니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공감한다 하더라도, 지속적인 실천을 이어가는 게 쉽지 많은 않아요. 따라서, 환경을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우리의 선택이 환경과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얼마나 자신의 일처럼 느끼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방식의 환경 캠페인이 등장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환경을 위한 행동이 의무나 희생으로만 느껴지지 않고, 우리의 일상과 삶을 지키는 선한 선택으로 보이고 받아들여진다면 긍정의 나비효과가 이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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