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크리에이티브한 거 없어?'
현직에서 제일 많이 듣기도, 말하기도 했던 가장 무섭고도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 질문 앞에 서면 마치 세상에 없던 특별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오거든요.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보다, 타깃의 일상을 관찰하고 이미 존재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접점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공공캠페인에서 이러한 발견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사람의 행동을 움직이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생명을 지키는 영수증’과 ‘돌봄약봉투’ 캠페인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요소를 재발견해 사회적 관심과 실질적인 행동을 이끌어낸 사례입니다.

🧾이주배경아동 지원 캠페인 - 생명을 지키는 영수증
우리나라는 만 12세 이하 어린이라면 국적이나 체류자격에 상관없이 국가필수예방접종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데요. '2024 이주민 영유아 건강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아동의 국가필수예방접종률은 96.4%인 반면, 이주배경 아동은 55.2%에 그친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주배경 아동의 예방접종률이 낮은 주요 원인은 언어 장벽과 정보 부족으로 접종 시기와 병원 방문 절차 등의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인데요. 말 그대로 지원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초록우산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배경 아동을 위해 예방접종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이들 부모가 자국의 식재료와 육아용품 등을 구매하고자 지역 로컬마트를 자주 이용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물건을 구매하면 자연스럽게 손에 쥐는 영수증을 발견했죠.

초록우산은 수퍼연합회 등 관련 단체와 협업해 로컬마트에 다국어 안내문을 비치하고, 의료지원 사업을 소개하는 QR코드가 인쇄된 특별한 영수증을 배포하였습니다. 덕분에 실제 의료 사각지대에 있던 이주배경 아동 102명이 의료기관과 연계되었고, 이 중 80명이 건강검진과 예방접종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숨어 있는 가족돌봄아동 찾기 - 돌봄약봉투 캠페인
가족돌봄아동이란 고령이나 장애, 질병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돌보는 아이들을 말하는데요. 보호 받아야 할 나이에 가족을 돌보게 된 아이들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학업을 포기하거나 우울감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요. 더 안타까운 것은 주변에서 가족돌봄아동에 대한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거나, 당사자 역시 자신이 지원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초록우산은 2023년부터 가족돌봄아동 지원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그 첫 번째가 돌봄약봉투 캠페인입니다.

재단은 가장 먼저 숨어 있는 가족돌봄아동을 찾아내는 데 집중했는데요. 이들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일상을 관찰하였고, 가족돌봄아동들이 아픈 가족의 병원 진료에 동행하거나 약을 대신 챙기기 위해 약국을 자주 방문한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약국에서 자연스럽게 받아 드는 약봉투를 캠페인 매체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초록우산은 아픈 가족의 약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는 가족돌봄아동의 일상을 담은 약봉투를 제작했고 대한약사회와 협업해 전국 300여 개 약국에 배포했습니다. 약봉투를 받아 든 아이는 자신의 일상과 닮은 이야기를 통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주변의 어른들은 그동안 쉽게 알아채지 못했던 가족돌봄아동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타깃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생명을 지키는 영수증'과 '돌봄약봉투' 캠페인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닮은 점이 있어요. 바로 타깃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함으로써 캠페인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를 발견했다는 건데요. 로컬마트와 영수증, 약국과 약봉투라는 평범한 공간과 물건도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느냐에 따라 의미 있는 캠페인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걸 두 캠페인은 보여줍니다.
이 두 캠페인의 아이디어 실행력은 대외적으로 인정 받아 국내외 굵직한 광고제의 수상으로 이어졌는데요.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우리는 특별한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자꾸 멀리 바라보거나 남들이 모르는 새로운 매체를 찾으려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답은 타깃 일상 가까이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지금 당장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하다면, 타깃이 어디를 방문하고, 어떤 물건을 손에 쥐며, 어느 순간에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부터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 오늘의 한 줄 평
: 새로운 아이디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익숙해 미처 들여다보지 않았던 일상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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