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시즌 2는 뜨거운 화제를 몰고 돌아왔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던 주인공 문동은이 가해자들을 향한 처절한 복수를 위해 달려온 인생을 보여준다. 그녀가 가해자였던 박연진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 ‘그리운 연진에게’라고 시작하는 글은 복수를 위해 살아온 지난 세월과 어른이 되어서도 고통속에 갇혀서 모든 빛을 잃은 피해자의 언어가 새겨져 있다. 피해자의 편지는 고통스러운 폭력의 순간들과 상처의 증언으로 기능하면서, 제 3자로 하여금 개인의 고통의 서사에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이입하게 한다. 17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 폭력의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이름조차 잊고 자신의 삶에 부여된 부와 지위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프리카 속담에 “마을이 품어주지 않은 아이는 온기를 느끼려고 마을에 불을 지른다”는 말이 있다. 인간은 만성적으로 지위를 박탈 당하면 마음이 적대적으로 바뀌며 자기를 파괴한다. 게임에서 거부 당한 사람은 복수의 화신으로 돌아와 치명적인 폭력으로 다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도록 하는 법이다. 인간은 대형 유인원의 한 종으로 공동체에서 함께 일하고 생존하는 존재다. 그렇게 500세대에 걸쳐 정착한 공동체에서 살아왔고, 우리는 부족의 일원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과 연결되려는 본능이 있으며, 집단에 들어가서는 인정과 찬사를 받고자 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타인의 인정과 칭찬이 필수적이며, 이렇게 얻게 된 지위는 자원에 대한 통제력이 생기는 동시에 다양한 서비스가 따라온다. 인류의 성공은 바로 지위에서 나온다. 그래서 인류는 끊임없이 지위경쟁을 하며 인정투쟁을 벌인다.[1]
인간의 사회적 삶은 주로 많은 사람이 상징을 인지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서 일어나며 상징에 대한 지각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체성으로 통합한다. 서로 연결된 사람들을 친족으로 경험하며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을 받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게임이 일어나는 장소가 바로 그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지위 게임에서 밀려나는, 공동체에서 밀려나는 존재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2] 때로는 개인의 차원에서는 모든 기반을 몰수 당할 수도 있고, 생존을 위해 다른 이념의 영토로 망명하기도 한다. 난민이 되어버린, 거부 당한 개인은 다시 자신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상징의 우주에서 표류하며 자기를 구원하는 게임을 해야만 한다.
여기에 예술이 정치적이지 않으면 예술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내는 작가가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Ai Weiwei, 1959~). 그는 1990년대부터 표현의 자유와 난민의 삶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 왔고, 자유에 대한 억압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체포와 가택연금, 구속이 일상인 삶을 살아온 그는 시대현상을 관찰하고 세계의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미학적 언어를 구사한다. 중국의 정치 체제와 감시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낙인이 찍혀버린 작가는 2011년 81일간 구금되었고 4년 간 여권을 빼앗겨 자유를 박탈 당했다. 그가 여행하지 못했던 시기에 발표한 2014년의 프로젝트 @Large: Ai Weiwei on Alcatraz 를 소개한다. 지금은 관광명소가 되었으나 한때 악명이 높은 감옥이었던 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즈 섬에서 진행된 작업은 “감옥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당신이 받는 대우가 아니라 고립이다”라는 작가가 처한 상황에 연대하는 미국의 비영리 재단, FOR-SITE Foundation (for-site.org)에 의해 실현되었다.
알카트라즈 섬은 19세기 중반 미국 서해안 최초의 등대가 개설 된 군사요충지였고, 이후에는 가장 악명이 높은 연방교도소로 이용되었으며 탈출이 불가능한 섬으로 알려졌다. 1963년 폐쇄 후 19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운영되어 오고 있다. 이렇게 역사적인 장소에 사회에서 밀려난 목소리가 이미지, 사운드, 그리고 설치작업으로 재현되었다.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동안 섬을 방문할 수 없었기에 “표현의 자유”와 “정치” 그리고 "예술"이 극적으로 만나는 섬이 되어 작가의 목소리는 더 강하게 다가왔다.
이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작업 두 가지를 소개한다. <Trace>는 8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5주간 120만개의 레고 블록으로 만든 176명의 초상화다. 세계 각국의 정치범, 망명자, 양심수를 표현했으며 관객들은 디지털 키오스크에서 그들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었다. 각국의 알려지지 않았던 양심수들은 미국의 서부 해안의 섬에 감옥이었던 공간의 바닥에 내려앉아 현재 진행중인 인권과 언론의 자유, 그리고 권력과의 끊임없는 갈등을 드러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Yours Truly>라는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알카트라즈의 식당에 설치된 일련의 엽서들과 책상은, 방문객이 자유롭게 엽서를 선택해서 전 세계에 구금되어있는 양심수들에게 메시지를 직접 적어보낼 수 있었다. 엽서는 각국을 상징하는 꽃, 새의 이미지로 채워졌다. 이 프로젝트에 제시된 양심수는 총 22개국 116명. 사회 정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한 활동가들의 목록이다.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정부의 부당 정책으로 비난 받아왔고 합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구금되었다. 어쩌면 이들에게 엽서를 보내는 것이 그들을 더 위태롭게 할 수 있었기에 국제 앰네스티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관객들이 엽서를 쓸 대상을 선택하는 방법이었는데, 단지 엽서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기때문에, 혹은 제시된 인물들의 스토리를 읽고서 연대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주소가 적힌 엽서의 뒷면에 응원의 메시지를 적어내려갔다. 이 서신의 형태가 일방이 아닌 쌍방형 대화의 매개체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양심수로 복역했던 관객이 찾아와 연대의 뜻을 담은 엽서를 적어 내려가기도 했고, 양심수의 가족들로부터 답장이 도착하기도 했으며, 직접 방문해 가족의 얼굴 앞에서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는 점이다. 주목할 점은 이 장소에서 관객들이 스스로 누군가를 위해, 사회 정의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효능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3] 고립된 누군가를 지지하고 연대하며 우리 모두의 보편적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소통의 행위로서의 편지의 힘이 크게 발휘 된 프로젝트다.
현대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자기 보존을 위한 지위를 지켜내려고 매일 사투를 벌인다. 기만, 모욕감, 모멸감, 혐오와 수치심, 경멸.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은 공동체의 내면에 기생하며 힘을 발휘한다. 연대와 사랑, 연민과 동정과 같은 감정은 오히려 인위적인 방식, 즉 예술이라는 언어의 힘을 빌려서라도 사회에 이식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점점 더 고립 되어가는 개인에게 타인으로부터 도착하는 연대의 메시지는 오늘을 버티게 하고 잠시 안도하게 하게 할 것이다. 어쩌면 내가 소속 된 공동체가 아닌 바깥에서만 응원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질문도 던져본다.
<더 글로리>의 주인공 문동은도 자신의 복수를 마무리하며 그동안 알아차리지 못한 마음에 감사의 인사를 담아 편지를 보낸다. 대면할 때보다 어쩌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편지의 힘은 무엇이기에 이토록 인간적이며 우리의 일로 만들어주는 것일까. 각자의 신념의 차이로 또는 힘의 논리로 계속해서 내몰리고 격리되며 파편화 되어가는 개인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는 마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삶에 드리운 기나긴 그림자에 내려앉는 봄빛이 될 것이다.
“The misconception of totalitarianism is that freedom can be imprisoned. This is not the case. When you constrain freedom, freedom will take flight and land on a windowsill.” — Ai Weiwei
[1] 윌 스토, 문희경 옮김, 『지위게임』,흐름출판,2023, p.32.
[2] 위의 책, p.52.
[3] Cheryl Haines(For-Site Executive Founding Director) Edited by David Spalding, Yours Truly, 2018, Chronicle books, pp. 33-35, 이 프로젝트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Ai Weiwei: Yours Truly(2019), yourstrulydoc.org를 보라.
강은미 / PUBLIC PUBLIC 콘텐츠 디렉터
virginiak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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